brunch
매거진 독서노트

독서노트 : 나의 직업은 군인입니다

군인만이 말할 수 있는 군대 이야기

by CalmBeforeStorm

나의 직업은 군인입니다

김경연 | 예미 | 2022년 02월 15일


https://m.yes24.com/Goods/Detail/107005414


이 책은 군인의 삶을 현실적으로 조명하며, 군대 내의 변화와 도전 과제를 다루는 책입니다.

예비역 대령인 저자 김경연님은 군대의 진정한 모습과 직업군인이 마주하는 현실을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군인의 삶은 때로는 힘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루어지지만, 그 속에서의 헌신과 책임은 변함없이 강조됩니다. 책은 특히 군대의 본질적 역할과 사회적 시각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며, 군인이 가져야 할 사명감과 가치관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군대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군인의 직업적 본질에 대한 깊은 인식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 책 속의 문장 중 감명 깊은 내용을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 갓 도입된 최신 장비와 시설 등이 전부인 양 알려서는 안 된다. 2000년대부터 교체되기 시작한 침대형생활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우리 군도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갈 초급간부 모집 시, 공무원이나 일반직장보다 조금 좋은 몇 가지를유인책으로 쓰기보다는 어렵고 힘들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열악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


군인이 되기 전저자가 TV나 영화로 보던 사관생도와 장교들의 모습은 멋졌다. 깔끔한 제복을 입고 화려한 파티를 하며 전쟁터에서는 용감하고자신 있게 지휘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실제 육사 입교 후 체감은 달랐다. 훈육 장교들과 선배들은 과거보다 복지와 시설, 학교문화가 좋아졌다고는 했지만 태어나 처음 접하는 위계질서와 강압적인 분위기는 하루하루를 인내와 갈등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사실과 괴리가 있는 현실은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군대의 일들을 감추거나 숨길 수도 없다. 병영 생활저변의 일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외부로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선하거나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할 군대 문화에 대해 직업군인들은 말을 아낀다. 왜일까? 과학기술의 발전과 첨단화에 따라 전투력은 향상되고 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


군에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천일양병 일일용병千日養兵一日用兵’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를 써먹기 위해 천 일 동안 훈련한다는뜻이다. 이를 두고 군대를 비생산적인 소비집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전쟁이 없으니 필요 없다는 식으로 폄하하는이들도 있다.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군대를 경제용어로 비유하자면 보험이고 담보라 할 수 있다. 존재 목적 자체도 법에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군대인 국군의 이념과 사명은〈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맨 앞에 명시되어 있다.

자신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내 자식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은 편해야 하고 제대하게 되면 군기가 엉망이니, 훈련이 약하니 비판하는 데 앞장선다.


군에 있는 동안은 일반직장이나 사회보다 조금이나마 처우가 부실하거나 환경이 불비하면 개선하라고 여기저기 아우성을 친다. 큰 목소리는 주목을 받고 그들 사이에서 영웅시 되는 풍조를 조장한다. 그러다가 이러한 이해관계에서벗어나는 순간 태도가 또 돌변한다. 이런 양심 없는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인간의 본성인가? 품격 없는 소수의 이판사판식 아우성인가? 의문이다.


모병이냐, 징병이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국가와 국민을 담보로무모한 도박을 하는 것보다는 다른 담보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군대는 있어도 군대 내의 민주주의는 없다’라는 말처럼 직업군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소명의식과 가치관 등 변해서는안 되는 것과 기존의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수직적 권위 문화를 벗어야 하는 변해야 할 것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인권은말할 것도 없고 각종 수당, 복지 등은 일반적인 공무원 수준이나 대기업 수준에 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직무를 수행하는 데 관련되지않는 현재 간부들에게만 적용되는 혜택을 병사에게도 개방해야 한다.


똑같은 군복을 입고도 아직은 그 명예를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이 있음이 다행이다. 단순히 겉치레만 하는 소수의 사람 때문에 묵묵히본연의 임무에 전념하고 있는 군인들까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권력에 굽신거리고 돈에 굽신거리고계급장 하나 더 달려고 굽신거리는 행사에 동원되는 병사들의 시선을 두려워해야 한다. 아무리 군을 홍보해도 이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굽신거리는 군인이 있는 한 그 목적을 얻기는 요원해 보인다.


요즘 군복 입고 회식하거나 출퇴근하는모습을 보기 쉽지 않은 것은 누구 때문일까?
전장에서 장군이나 이등병이나 총알은 피해서 가지 않는다. 다 똑같은 전투원이다. 이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미군은 이를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실천하는데 우리는 말로만 행한다. 미군은 이병도 핸드폰을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우리 군도이렇게 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뿐이다. 그러나 그 반응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사람들의 본성인가? 좀 힘 있는 사람이 도와주면 보이는 게 없는 걸까? 참 안타까웠다. 나이 20살 넘은 성인이라면 누구 찬스를 쓸필요 없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도 많고 복잡하겠지만 가장 쉬우며 단순한 방법은 주변에서 뭐라 하든 ‘내 일, 내 역할은 내가하는 것’이 도리이다. 선배 찬스, 옛 지휘관 찬스, 상급자 찬스, 엄마 아빠 찬스 등 여러 찬스도 있지만, 진정한 찬스는 받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한다.


외국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우리 말로는 ‘골 찬스를 만들다’, ‘기회를 만들다’인데우리와 다르게 표현한다. ‘Make a chance’가 아니라 ‘Create a chance!’이다. “기회를 창조하라!”


“가까이 있는 사람, 하루 중 가장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


“병영 부조리는 잘못된 것이다. 불의에 침묵하며 참거나 모른 척한다고 해서 죄가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공범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뭔가를 바꾸려면반드시 희생이 따른다. 그것이 싫다면 너도 똑같은 놈이다.”


“물을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한국 속담으로, 불교 문헌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적힌 구절인‘우음수성유 사음수성독牛飮水成乳蛇飮水成毒’에서 유래한 속담이다. 직역하면, ‘소는 물을 마시고 젖을 만드나 뱀은 물을 마시고독을 만든다’이다. 이것이 약간 변형되어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같은 물이라도 벌이 먹으면 꿀이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쿠르드족 출신 터키인 사이드 누르시의 말도 있다.


사람의 영혼은 볼 수가 없다. 감추고 속이는 것이 너무 많다. 때로는 흰색, 검은색, 노란색 등 색옷으로, 또는 젊음이나 늙음을 이용할 수도 있다. 마치 화려한 꽃무늬로 위장한 뱀이 자기가 꽃인 줄 착각하는 것 같다. 짙은 화장을 자신의 민낯과 헷갈리는 사람을 잘 구별해야 한다. 뱀인지? 벌인지? 소인지? 선의를 뱀처럼 받아들이면 물조차얻어먹기 힘들다.


뱃속이 꼬인 배알로 가득 차 있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먹여주어도 독보다 더한 것만 나올 뿐이다. 이런 영혼을가진 이의 말은 독보다 무섭다. 조심하고 또 삼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꽃무늬로 치장했더라도 뱀은 뱀이다. 어찌 보면 다행이라생각도 된다. 만약 이런 것에게 물이라도 먹였더라면 아마 물려서 온몸에 독이 퍼졌을 수도 있을 뻔했다. 삐딱한 영혼의 입에서나오는 말은 독보다도 무섭다!


“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다.” (욥기 13장 5절)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언 10장 19절)


사실대로 따지고 보면 군대 급식비는 적지 않다. 하루 8,790원이라는 급식비가 적다고 할 수 있는가? 순전히 원재료 값이다. 보통가게를 운영할 때 음식 재료 값은 음식 값의 35%로 잡는다. 즉, 음식 값이 1만 원이라면 재료 값은 3,500원이다. 하루 세 끼를먹는다고 하면 1만 500원이므로 군대 급식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한 끼 1만 원짜리 밥을 먹는 셈이다. 그런데 왜 자꾸불만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높아지는 걸까? 의문이다.


윗사람을 만나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게 자연스레 넘기는 건 부하로서 최고의 일이다. 하지만 불시에 자기 마음대로 오는 상급 부대순찰자의 기분을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보고報告란 ‘일에 관한 내용이나 결과를 말이나 글로 알림’이라 한다. 군에서 인식되는의미는 아랫사람이 상급자에게, 하부 조직에서 상부 조직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보고를 통해 결심, 승인을 받거나 이해를시켜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의 것이 뒤따른다. 어떤 형태이든 결과가 없는 보고는 불필요한 것이고 무의미한 노력 낭비일 뿐이다. 이정도로만 결과가 나와도 문서작성 연습한 셈 치거나 논리적 사고 절차를 통해 상·하 간에 소통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있다. 보고를 통해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깨지는 일도 있다. 상급자는 충분하고 자세한 지침을 주었다고생각하며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하를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으로, 하급자는 지침이 헷갈리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급자로 여기게 되면 최악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부대의 성패는 지휘관에게 있다. 부대를 단결, 화합하게 해야 한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에 나오는 말이다. 자격이 없는 지휘관, 상급자는 스스로 이 말들을 곱씹어 봐야 한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성품이나 리더십에 문제가 있거나 직무능력이 없는 것이다. 어느 스포츠 잡지에서 감독들을 상대로 설문을 했던 결과가 떠오른다. “마음에 드는 선수만으로 팀을 구성할 수는 없다. 감독은 팀원의 특성을 꼼꼼히 파악하여 모두의 장점을 극대화함으로써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우리 젊은 청춘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데 합리적인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사후 보상이라도제대로 되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은 많으나 참을 뿐이다. 그리고 반성도 많이 한다. 소위 때부터 병사를 볼 때는 두 가지 마음이 부딪쳤다. 하나는 전쟁에 대비하는 전투력으로 강하게 훈련하고 현행 임무를 위해 엄격하게 기강을 유지해야 할 대상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아무런 대가나 보상 없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존경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내가 저 입장이라면 과연 참고이겨낼 수 있을까?’


복잡한 머리도 식힐 겸 병사들의 월급을 현행 법률을 기준으로 한번 정리해보았다. 깜짝 놀랐다. 구체적인 수치로 측정해보니 깊이반성하고 더욱 그들을 존경하고 잘 지도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최저임금법을 기초로 단순하게계산해보았다. 최저시급(9,160원)에 한 달 법정근로시간 209시간을 곱하면 최저임금은 191만 4,440원이 된다. 여기에 1일16시간, 법정공휴일·대체휴일 등 노동법상 연장근로 시 임금의 1.5배, 휴일은 2배를 적용해보면 각각 월 659만 5,200원, 351만7,440원이 되어 수당 없이도 월 1,202만 7,080원이 된다.


1년간 연봉은 1억 4,432만 4,960원, 18개월 복무 시는 2억 1,648만7,440원이다. 물론 위의 시간에 휴가도 있고 밤에 취침시간도 포함되어 있지만 군 생활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큰 상수는 되지 않을것이다. 수해, 폭설, 산불 등이 발생했을 때 각종 재난 지원 등 고된 일을 포함하면 어떻게 될까? 부대 내 각종 작업이나 생활공간청소 등은 포함하지 않아도 엄청난 인건비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또 포함하지 않은 것이 있다. 구속당한 자유의 가치는얼마나 될까?


“우리는 모두 구속된 상태로 누군가의 자유를 지켰다.” 사실은 ‘우리’에서 출퇴근하는 간부들은 약간 제외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일과후에도 업무를 하고 대기태세를 유지하며 원하지 않는 지역으로 가서 살아야 하기도 한다. 휴가가 아니면 특정 지역을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러나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보다는 부자유스럽다 해도 출퇴근도 없이 병영 생활을 하는 병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정도의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職業이 나그네인 것 같기도 하다. 나그네란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이라고 한다. 군인 직업의특징 중 하나인 잦은 이사만을 부각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TV 뉴스를 보며 출퇴근 시간의 꽉 막힌 도로만을 보고‘서울은 교통지옥이다, 어떻다, 저떻다’ 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 지나친 억지일까? 직업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로 정의된다. 그런데 나그네가 직업이라 말하니 갸우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직업군인의 몇 가지 특징을 이해하기 쉽게 빗대어 말한 것이다.


군인이라는 직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결론은 심플하다. “군인은 구속된 상태로 누군가의 자유를 지킨다.”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며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 평가나 시각이 불편할 때도 적지 않다.


군에 잠시 머물다 가거나 외부로 보이는 껍데기로만 판단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초등학생 때 위인전, 영웅전에 나오는군인 이야기에 심취해 군인이 되었고, 그 생활을 한 30년 해보니 그 알맹이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면서, 또 한편 잘 모르겠다는것이 결론이다. 그래도 군인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굳이 묻는다면, “다 똑같은 직업이다. 단지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자기희생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부분 직업은 무엇인가를 생산하거나 그 결과를 가늠할수 있지만, 군인의 그것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가치를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서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공기라고 할까? 없으면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는 것,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게 아무런 대가나조건 없이 골고루 나누어주는 것. 죄를 지은 사람이나 부도덕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그들이 내뿜는 혼탁한 먼지도 끌어안는다.


군대는 기회와 성공의 보물창고이다. 들어오기 전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군복을 입는 순간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서는것이다. 그전 것은 완전히 리셋된 상태이다. 30년 이상을 달리기 위한 출발선에 서 있는 것으로 생각해도 된다. 그 선까지 어떻게왔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돈 많고 많이 배운 부모가 좋은 차로 태워다 주었건, 차비가 없어 먼 길을 혼자 힘들게 걸어왔건 거의차이가 나지 않는다. 약간의 차이라 해도 군복을 입고 나면 똑같은 출발선이다.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뿐이다. 그 긴 마라톤을 미리 준비하고 충분히 준비운동을 한 여유 있는 사관학교 졸업자 중에도 완주를 못 하는 경우가 있고, 한번도 달리기를 해보지 않은 채 병사로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출발하는 모습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 30년을 이런 저런사람들과 같이 뛰어보니 어떤 모습으로 시작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가 중요했다. 웃으며 가느냐, 찡그리며 가느냐, 얼마나 멀리 가느냐를 결정짓는 열쇠이지 않나 싶다. 꼭 오랫동안 멀리 뛰어야 성공했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대장들은 대부분 40대에 접어드는 나이다. 군 생활도 15년 정도는 한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눈치도 보통은 아니다. 갓 임관한간부들 얼굴만 봐도 척하면 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나 소령 때 참모 생활을 밤낮으로 하며 업무는 물론 상급자와 코드를맞추기 위해 마음고생들을 실컷(?) 한 사람들이다. 그 과정을 잘 극복하고 중령으로 진급을 한 것이다.


어떤 후배가 해준 말이다. 상급자의 얼굴, 목소리, 심지어 숨소리조차 싫더란다. 출근도 하기 싫고 자꾸 피하고만 싶었다고 한다. 인지상정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억지로 바꿔 먹고 좋아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연극을 한다 생각하고 배우처럼 해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님 빨리 보고 싶다!”를 세 번 반복하고, 세면대 거울 옆에 ‘존경하는○○○님!’이라는 글귀와 사진도 붙였다고 한다. 사무실 책상, 수첩 안에도 이런 것들을 적어놓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진짜로 좋아지더란다. 그 상급자도 이상하게 잘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인간적으로 스스럼없는 사이로 발전해서 이렇게물어보았다. “왜 저를 이렇게 좋아하십니까?” “그냥 너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누구를 불편해하고 싫어하면 그 사람도 자기를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그렇다. 타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투덜거리기보다는 나부터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먼저이다. 군인도 사람이고 사람은 다 그런 것이다.


군인 머리는 짧아야 할까, 길어야 할까? 우리 주변에서 두발에 특정한 제한이 있는 직업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먼저떠오르는 것은 스님들의 삭발이다. 그들에게 머리카락은 ‘번뇌와 세속의 인연’을 상징한다. 반면 같은 성직자인 신부나 목사 등은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님들은 왜 삭발할까?


그 기원은 싯다르타가 출가하면서 “치렁치렁한 머리칼은 사문 생활에들어가려는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라며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른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머리카락은 무명초無明草라고 불리기도 하며 번뇌와 망상을 상징하고, 삭발은 머리카락과 함께 잡념, 세속의 인연과 번뇌를 끊겠다는 의지의표현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예는 일본의 고등학교 야구선수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학교에 두발 자유화 조치가시행되었지만, 선수들은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스스로 삭발한다고 한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선수로서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더욱 열심히 연습하기 위해 마음을 잡고 의지를 곧게 하려는 것으로생각된다. 그래서 짧은 머리를 스포츠형 머리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군인이 총으로 무장한다면, 군인정신은 군가로 무장하는 것 같다. 교회에서 들리는 찬송가, 사찰에 퍼지는 목탁 소리와 불경 읽는소리, 군대에서 들리는 군가 소리가 가지는 본질은 무엇일까?


전쟁이 시나리오대로 될까? 맞는 말이다. 서양의 한 전쟁사 연구가는 말했다. “전쟁 계획은 첫 총성과 함께틀어진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가 가져야 하나요, 아니면 지금처럼 다른 나라에 맡겨야 하나요?” “일본은 좋은 나라인가요, 나쁜나라인가요?”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을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국가 차원의 중요 사항에 대한 판단에서 개인의 성향이나 기호, 호불호가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 사고체계와 시각, 마인드의 프레임 설정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쉬운 것부터 접근하면, 국가 차원에서 타 국가를 대할 때는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가 본질이 아닐까? 좋은 나라가 어디 있고, 나쁜 나라가 어디 있는가? 초등학교 수준도 안 되는 사고방식이다.


북한이 좋은 나라인가? 북한은 우리의 생존을 직접 위협하는 실존적 집단이다. 현대적기준으로 국가라고 할 수도 없다. 6·25전쟁뿐 아니라 그 이후 수많은 크고 작은 도발로 우리의 존재를 위협해왔다. 가까이는 표류한공무원 살해, 천안함 피격, 금강산 관광객 피살, 연평도 해전, KAL기 폭파, 아웅산 테러, 수많은 납치, 무장간첩의 만행 등 그 예를들기에도 벅차다. 이런 걸 나열하면 ‘나쁘다’는 표현이 떠오르지만, 본질은 우리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위협하는 변함없는 존재라는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가슴 아픈 사례가 있었다. 우금치 전투牛禁峙戰鬪로, 동학농민운동 때인 1894년 12월 5일 농민군이 결정적으로 패배한 전투이다. 농민군 2만여 명이 일본군 200여 명이 포함된 조일 연합군 2천여 명에게 대패한 전투이다. 농민군은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무장이라고는 최대 사거리 400m, 최고 발사속도 분당 2발, 심지에 불을 붙여 쏘는 화승총이었다. 그마저도 소수였고 대부분은 죽창으로 무장했다. 지휘체계와 전술교리도 없는, 훈련을 받지 않은 사기만 충천한 군대였다.


이에 반해 상대는 독일제 크루프 야포, 사정거리 1,800m, 분당 12발을 쏠 수 있는 최신형 영국제 스나이더 소총, 일본이 자체개발한 무라타 소총, 미국제 개틀링 기관총 등 당시로서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체계적인 군대였다. 이러한 군대에 대하여 밀집대형으로 반복적으로 행해진 돌격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사망자가 15,000:0이었으니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였다.


붉은 천으로 장식한 가마를 타고 지휘한 전봉준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농민들의 높은 기개로 수십 차례를 돌격하는 등 승리에 대한 의지는 높았으나 전장의 냉혹함은 분명했다. 정신승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 참혹한 결과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독서노트 : 오십이 된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