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꿈을 현실로 만드는 힘, 비전
나는 포기를 모른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저 / 정지현 역| 현대지성| 2024년 0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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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책 “나는 포기를 모른다”(원서 Be Useful : Seven tools for life) 는 그의 삶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서전적 저서입니다. 이민자로서 미국에 건너온 아놀드는 보디빌딩 챔피언, 할리우드 배우, 성공한 사업가, 환경 운동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결과입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인생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등장합니다. 아놀드는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수많은 난관과 실패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과정을 통해 더 강해졌다고 설명합니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는 이를 극복하는 것을 즐겼고, 그 덕분에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책의 독자에게 영감을 주며, 독자 스스로를 돌아보고 독려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자기계발과 성취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삶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도전,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어우러진 영감의 원천이다. 스포츠와 배우, 엔터테인먼트계의 거인을 넘어,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도전의 화신으로 살고 있다. 이민자로서 비전과 열정, 그리고 압도적 카리스마를 무기로 미국에 건너와 일군 그의 성공 스토리는 아메리칸 드림의 현대적 상징이 되었다.
세계 보디빌딩 챔피언에서 할리우드 액션 히어로로, 다시 성공한 사업가와 환경운동가, 자선가, 베스트셀러 작가를 거쳐 캘리포니아 제38대 주지사에 이르기까지, 그의 다채로운 인생 여정은 한 인간의 잠재력이 얼마나 무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947년 오스트리아 탈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20세라는 믿기 힘든 나이에 최연소 미스터 유니버스 타이틀을 거머쥐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68년 할리우드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5번의 미스터 유니버스, 7번의 미스터 올림피아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뒤 연기에 도전했다. 영화계에서도 그의 독보적인 존재감은 빛을 발했다. 1982년 《코난 더 바바리안》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1984년 《터미네이터》를 통해 SF 액션 장르에서 새 역사를 썼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30억 달러가 넘는 놀라운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그를 세계적인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2003년, 전례 없는 주민소환투표로 캘리포니아 제38대 주지사에 당선된 슈워제네거는 정치인으로서도 혁신적인 리더십과 탁월한 업적을 보여주었다. 특히 재생에너지와 첨단기술, 환경보호 분야에서 캘리포니아를 세계의 선두주자로 이끈 것은 그의 선견지명을 증명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모르는 아놀드의 진정한 열정은 나눔에 있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재산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애프터스쿨 올스타즈’의 회장으로서, 그리고 스페셜 올림픽의 열정적인 지지자로서 그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주지사 임기 후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R20 기후행동지역’을 설립해 지구를 위한 싸움에 앞장서고 있다.
그해 말에 이르러 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바닥이었다. 완전한 밑바닥은 아니지만 예전에도 와본 적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깜깜한 구덩이 속에서 진흙탕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얼굴을 닦고 다시 천천히 구덩이를 기어올라가야 할지, 아니면 그냥 포기해버려야 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그 사건으로 정치계를 떠난 후에 진행하던 영화 프로젝트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 일대기를 바탕으로 제작한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모았던 만화책 프로젝트도 무산되고 말았다. 언론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공격했다. 보디빌더와 배우, 주지사로 이어진 3막의 인생이 끝장났다고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나 잘나가던 사람의 추락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에 관한 기사를 접한 적 있다면, 내가 결국에는 포기하지 않는 쪽을 택했음을 알 것이다. 사실 나는 다시 위로 기어올라가야만 하는 시련을 즐긴다. 시련이 있어야 성공도 있는 법이고, 시련을 딛고 거둔 성공은 더없이 달콤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최고였다. 무엇보다 놀라웠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기에, 뭔가를 이해하고 싶을 때마다 늘 하던 대로 했다. 잠시 멈춰 상황을 분석한 것이다.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살펴보니, 세상에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며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전문가들은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살기 좋은 시대는 없었다고 말하지만, 불행을 느끼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역사적으로 전쟁, 질병, 가난, 억압이 지금처럼 적었던 적은 없다. 이는 자료로 입증된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또 다른 지표가 있다. 좀 더 주관적이라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뉴스나 라디오, 소셜 미디어를 접하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즉 고립감, 무가치함, 절망을 호소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여성들은 자신이 부족하거나 예쁘지 않다고 말하고, 젊은 남성들은 무력함을 토로한다. 자살률과 중독률은 높아만 간다.
내가 매일 헬스장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그들이 호소하는 감정은 내가 2011년 공직에서 물러나고 인생이 무너졌을 때 느꼈던 것과 똑같았다. 그들에게 조언과 격려를 해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때마다 내가 매우 친숙한 도구들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내가 60년간 개발하고 인생의 3막에 걸쳐 성공적으로 활용해온 도구들이었다. 10년 전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암흑에서 기어 나오기로 결심하고 불러냈던 것들이기도 했다.
사실 이 도구들은 혁명적이진 않지만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언제나 효과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것들이 행복하고 성공적이며 쓸모 있는 삶의 청사진 또는 로드맵이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떻게 갈 것인지를 아는 것, 그 목표를 위해 기꺼이 노력하려는 의지, 내가 선택한 길의 가치를 타인에게 알리는 것 등이 포함된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방향을 트는 것, 열린 마음으로 주위에서 배움을 얻어 새 길을 찾아가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 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Be Useful”은 아버지가 내게 해준 최고의 조언이다. 처음부터 강렬하게 와닿아 늘 가슴속에 간직해왔던 말이다. 이 책에 담긴 나의 조언도 독자들에게 그렇게 되길 바란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원동력이 된 것이 ‘쓸모’였고, 그 결정에 사용한 도구를 정리해준 것도 쓸모였다.
보디빌딩 챔피언, 백만장자, 정치인이 되는 것 모두 내 목표였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진짜 동기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 ‘쓸모’의 의미에 동의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당신이 생각하는 쓸모의 의미도 나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조언의 목적은 정답을 주는 게 아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게 아니라, 만드는 법과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진정한 조언이다. 아버지는 내가 지금처럼 세상이 무너졌다고 느끼던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그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쭤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라면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라, 아놀드.”
아버지의 가르침을 기리고 세상에 널리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썼다. 그 시간들은 바닥에서 다시 일어나 인생 4막을 써내려가기 위해 분투한 나날들이었다. 내가 삶의 모든 단계에서 활용해온 이 도구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유용할 것이고, 원하는 삶으로 가는 믿음직한 나침반이 모두에게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 책을 썼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모가 있어야 하니까.
너무도 많은 사람이 인생의 길을 잃었다. 분명한 목적지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전체의 70퍼센트는 자기 일을 싫어하고 인간관계에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웃음기 없는 얼굴, 생기 없는 삶. 에너지도 없고 자기 자신을 쓸모없다고 느낀다.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르는 길로 떠밀린 것처럼 무력감만 가득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사람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어쩌면 당신 자신도 그럴지 모른다. 걱정 마라. 당신은 고장 난 것이 아니다. 다만 인생의 비전이 아직 명확하지 않을 뿐이다.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막연한 상상만으로 살다 보니 그런 것이다. 이 문제는 바로잡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변화는 선명한 비전에서 시작되니까.
비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다. 분명한 비전이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자세히 그려볼 수 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비전과 계획이 없으면 방황하기 마련이다.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라고 자문하면서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왔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내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이런 삶을 선택했을 리 없어!”라며 애써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선택권이 없었다고 변명하지 마라
하지만 아무도 당신에게 그 사람과 결혼하라고, 치즈버거를 계속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 일을 선택하라고 떠밀지 않았다. 수업을 빼먹거나 운동을 그만두거나 교회 나가는 것을 막은 사람도 없다. 8시간 푹 자는 대신 매일 밤늦게까지 게임이나 드라마 시청을 하라고 충동질한 사람도 없다. 끝까지 맥주를 마신 것도,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한 것도 온전히 당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의 모습이 그저 어쩌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됐다고 굳게 믿는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자신이 태어날 환경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나 역시 냉전 초기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엄격하고 매질도 서슴지 않던 아버지. 하지만 난 그런 아버지도 깊이 사랑했다. 좀 복잡한 이야기다. 아마 당신의 이야기도 단순하진 않을 거다.
남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우린 과거를 되돌릴 순 없다. 하지만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금껏 겪은 모든 일에는 이유와 배경이 있다. 그러나 선택권이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언제나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다만 그 선택지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비교하고 판단할 대상조차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명료한 비전이 필요하다. 확실한 비전은 어떤 결정이 옳고 그른지를 가려준다. 원하는 삶에 다가가게 하는지, 멀어지게 하는지가 기준이 된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꿈꾸는 미래를 더 선명하게 그려줄까, 흐릿하게 만들까? 행복하고 성공적인 사람들은 목표에서 벗어나게 하는 나쁜 선택들을 철저히 피한다. 그 대신 비전을 구체화하고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하는 일에 집중한다.
사소한 일상사부터 인생의 갈림길까지, 그들의 선택 원칙은 한결같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단 하나다. 원하는 미래가 뚜렷한지, 거기로 가는 치밀한 계획이 있는지 그리고 그 실현이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확실히 인정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선명한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작은 것부터 쌓아 올려 점차 크고 또렷한 그림을 완성해가거나, 애초에 거대한 비전을 세워놓고 마치 카메라 렌즈를 조절하듯 점점 초점을 맞춰가는 것이다. 나는 후자였다.
웅장한 사운드 속에 펼쳐지는 거대하고 눈부신 나라, 미국. 감수성 예민한 어린 시절의 내게 미국은 꿈을 위한 강력한 흥분제였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서 그 흥분감은 오래도록 가시질 않았다. 확신이 들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저기야. 그런데 미국에서 뭘 하고 살지? 알 리가 있나. 너무 막연하고 모호했다. 이미지 자체가 흐릿했다. 고작 열 살짜리가 뭘 알겠는가? 후에 알게 되었지만, 강력한 비전은 종종 이렇게 시작된다. 어린 시절 막연한 동경에서, 외부 영향에 물들기 전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서퍼 개럿 맥나마라는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세 살 때로 돌아가 그때 좋아했던 것을 떠올려보라”고 조언한다. 그것을 업으로 삼는 방법을 찾고 로드맵을 그려 따라가라는 것이다. 그는 비전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쉽진 않아도 단순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예전에 좋아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되니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 열정이 첫 번째 비전의 단초가 되어준다.
내 경우 미래상이 선명해지면서 보디빌딩을 중심으로 계획이 구체화되었다. 10대 시절, 조 웨이더가 창간한 보디빌딩 잡지 표지에 실린, 미스터 유니버스 레그 파크Reg Park를 보게 되었다. 그해 여름, 레그가 헤라클레스로 출연한 영화 《헤라클레스와 포로들》Hercules and the Captive Women도 봤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영국의 가난한 노동자 출신으로, 보디빌딩을 통해 미스터 유니버스가 되고 배우로 변신했다.
순간 깨달았다. 내 미국행 티켓이 여기에 있음을. 당신의 길은 다를 것이고 목적지도 다를 것이다. 직업을 바꾸거나 이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취미를 업으로 삼거나 평생의 소명으로 여길 대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건 비전과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헬스장에 오는 사람들
헬스장을 가보면 종종 탁구공처럼 이 기구에서 저 기구로 떠도는 사람들이 있다. 제대로 된 운동 계획이 없다는 게 단번에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눈다. 늘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헬스장에 오는 목표가 뭔가요?” 내가 묻는다. “몸을 만들려고요.”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훌륭한 목표네요. 그런데 왜 몸을 만드시는 겁니까?”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몸’을 만드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보디빌더의 몸은 암벽 등반가에게, 마라토너의 몸은 레슬링 선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근육은 암벽 위에서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장거리 달리기 선수의 근육은 레슬링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 사람들은 당황해 말문이 막힌다. 내가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답을 더듬거리며 얘기하다 결국 솔직해진다. “의사가 고혈압 때문에 살을 9킬로그램 빼라고 해서요.” “해변에서 멋진 몸매를 뽐내고 싶어서요.” “어린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려면 체력이 필요해서요.” 모두 좋은 대답이다. 이제 도와주기가 한결 쉽다. 비전에 초점을 맞추면 구체적인 방향이 잡히고, 목표 달성에 가장 효과적인 운동에 매진할 수 있다.
이처럼 보디빌딩에도 클로즈업이 관건이다.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물론, 체육관에서 밟아야 할 단계들도 하나하나 다르다. 1968년 가을, 조 웨이더의 지원으로 21살에 미국에 건너와 베니스 비치Venice Beach의 골드 짐Gold’s Gym에서 운동할 때, 나는 이미 미스터 유니버스를 비롯해 프로 데뷔 후 여러 타이틀을 거머쥔 상태였다. 그 타이틀들은 내가 목표를 향해 내디딘 발걸음이었고, 덕분에 조의 눈에 띄어 미국에 올 수 있었다.
오직 당신만이 원하는 삶을 만들 수 있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뭘 원하는지 아직 모른다고 해도 괜찮다. 지금부터 찾아나서면 된다. 앞으로의 선택이 중요하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 작은 목표를 세워라. 당장은 크거나 대단해야 할 필요도 없다. 조금씩 나아지고 작은 성공을 쌓는 데 집중하라. 운동 목표도 좋고 식단 목표도 좋다. 인맥 쌓기나 독서 또는 집 정리가 될 수도 있다. 좋아하거나 끝내고 나면 뿌듯함이 느껴지는 일들로 시작하라. 그런 일들을 작은 목표로 삼아 매일 해내면서 당신의 관심사가 어디로 향하는지 눈여겨보라. 어느새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이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루의 목표가 자리 잡으면 주간, 월간 목표로 넓혀라. 큰 그림에서 좁혀오는 대신, 작은 것에서 시작해 점점 시야를 넓히는 거다.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도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바로 그때, 두 번째 일을 실행하라. 디지털 기기를 치우고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좁고 짧아도 괜찮다. 그래야 영감이 깃들고 발견이 일어난다.
사실 말처럼 쉽진 않다. 살다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나이 들수록 삶은 복잡해진다.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매일 매주 작은 목표까지 실천하려니 더욱 벅찰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만 힘들다. 진짜 힘든 건 당신이 싫어하는 삶을 계속 그렇게 사는 거다. 그에 비하면 시간 내기란 공원 산책 정도로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실제로 공원 산책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상가, 지도자, 과학자, 예술가, 기업가 들은 산책하다가 중대한 영감을 많이 얻었다. 베토벤은 악보 종이와 연필을 들고 산책했다.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는 집 근처의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글을 쓰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학생들과 긴 산책을 하면서 강의하고 학생들의 생각도 자극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걸으면서 얻은 생각만이 가치 있다”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 대학의 교정을 걸어 다니면서 우주에 관한 이론들을 정리했다.
그런가 하면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걷기로 창조적 시공간을 확보하는 묘미를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천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걷기가 창의성과 혁신,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건 누구나 경험하는 사실이다. 2014년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산책하며 창의적 과제를 수행한 참가자 전원의 사고력이 향상됐음을 발표했다.
‘정확한’ 목표와 ‘비슷한’ 목표는 우승과 패배만큼 천지 차이다
책상 앞에 앉아 1월 6일 연설을 하는 내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마치 머릿속 영사기가 돌아가듯 선명했다. 언제나 그랬다. 내 삶의 거대한 비전은 모두 그런 식으로 뚜렷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어릴 적엔 미국에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난 미국에 있었다. 햇살이 피부를 감싸고, 모래가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감각이 생생했다.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까지 느껴졌다. 그때까지 난 바다는커녕 파도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고향 마을 그라츠를 벗어나면 바로 나오는 인공호수인 탈러 지Thaler See의 깊은 물 속으로 돌을 던져 일렁이는 물결을 봤을 뿐이었다.
막상 캘리포니아에 가보니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장단점이 있었지만(모래는 정말 별로였다), 어쨌든 애초에 날 서부로 이끈 건 머릿속의 생생한 이미지였다. 보디빌딩에 빠졌을 땐, 챔피언의 꿈이 단순한 염원이 아니었다. 그건 명확한 비전이었다. 보디빌딩 잡지에서 본 레그 파크 같은 이들의 우승 사진에서 힌트를 얻었다. 시상대 최고 높이에서 트로피를 든 내 모습이 선명했다. 아래에선 다른 선수들이 부러움 반 감탄 반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억지 미소와 경기용 팬티 색깔까지 보였다. 기립박수 치는 심사위원들, “아놀드! 아놀드! 아놀드! 아놀드!” 연호하는 관중들도 생생했다. 이건 공상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기억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연기에 도전할 때도 비슷했다. 데뷔 전부터 영화 포스터와 극장 간판에 내 이름이 적힌 모습이 선명했다. 내가 사랑한 영화 제목 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존 웨인, 숀 코너리, 찰스 브론슨 같은 이름이 올라 있듯 말이다. 처음엔 제작진들이 ‘슈워제네거’가 쓸데없이 길고 발음하기도 힘드니 ‘스트롱’ 같은 간단한 이름으로 바꾸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상상하고 있었다. 영화 제목 위에 ‘아놀드 슈워제네거’라는 이름이 근사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정계에 입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래전부터 내가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며 보람을 느꼈다. 스페셜 올림픽(지적 장애인들을 위한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 — 편집주) 선수들, 방과 후 프로그램을 통해 위기의 청소년들을 지원했다. 1990년에는 영광스럽게도 대통령 직속 체력 및 스포츠 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체육 발전을 위해 미 전역 50개 주를 모두 방문했다. 그 과정에서 내 영향력이 커질수록 더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정계 진출도 그 일환이었다. 공직 출마는 예전부터 고려해왔지만, 정확히 어떤 형태일지는 불분명했다.
비전에 초점이 없었던 거다. 상원의원? 거액 기부자? 시장직을 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힘들기만 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그 자리를 누가 원한단 말인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이 데이비스Gray Davis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엉망진창이었다. 주민과 기업이 줄줄이 떠나고, 순환 정전rolling blackout(지역별로 순차적으로 전력을 차단하는 정책 — 옮긴이) 사태에 세금 폭등까지. 끊이지 않는 악재에 나도 화가 치밀어 재신임 투표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주민소환이 기정사실화되자, 갑자기 비전이 선명해졌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의 주지사 집무실 책상에 앉아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 협상하고 주민들을 위해 일하며 캘리포니아를 정상 궤도에 돌려놓는 내 모습이 보였다. ‘출마해야겠다. 그리고 반드시 이길 것이다.’ 마음속 이미지가 너무도 생생해서, 그대로 액자에 끼워 벽에 걸어도 될 정도였다.
인정한다. 『시크릿』 같은 책에서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처럼 믿기만 하면 무조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상상‘만’으로 소망이 ‘저절로’ 현실이 된다는 게 아니란 말이다. 이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계획을 짜고 노력하고 배우고 실패하고, 또 배우고 또 노력하고 또 실패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게 인생의 법칙이다. 비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원하는 삶을 살 가능성을 높이고 싶다면 그 비전을 머릿속에 아주 선명한 그림으로 새겨야 한다는 의미다. 그림이 보여야 한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이 효과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시각화의 달인이다. 거의 모든 종목의 최상위권에서 챔피언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시각화 능력이다. 전설적인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마이클 펠프스가 10대 시절부터 한 바퀴를 돌 때마다 0.1초씩 단축을 상상하며 훈련한 것은 유명하다. 호주 골퍼 제이슨 데이는 샷 전에 잠시 물러서서 눈을 감고 공을 치는 모습을 떠올린다. 자세 잡고, 스윙하고, 공이 원하는 곳에 떨어지는 광경까지.
여러 차례 세계 정상에 오른 F1 드라이버 제바스티안 페텔은 예선 레이스 시작 전, 차에 앉아 눈을 감고 회전과 기어 변경, 가속과 제동, 코너링 등 모든 과정을 머릿속에 그렸다. 요즘 F1 드라이버라면 누구나 실제로 핸들을 잡은 듯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서킷 전체를 상상 속에서 주파한다.
그들이 시각화에 진심인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정상급 경쟁이 그만큼 혹독하기 때문이다. 최고 반열에 오르려면 기본적으로 엄청난 노력과 기량, 훈련이 필요하다. 재능과 열정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열렬히 바란다고 해서 우승을 장담할 수 없다. 정상에 선 자신을 떠올려야 한다.
세계 최정상 종합격투기 선수들은 연습할 때 3~5라운드 스파링이 끝나면 일어나 두 팔을 번쩍 들고 매트를 돌며 승리를 자축한다. 다가올 경기의 결과를 미리 담아두는 것이다. 스포츠 심리학자 돈 맥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에 그려진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이루려는 목표가 선명해야 한다. 행동에 앞서 청사진을 그리는 게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원하는 성공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큼 중요한 건, 원치 않는 성공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는 일이다. 원하는 삶의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흐릿하면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가짜 버전을 손에 쥐고, 정작 올바른 길에서 벗어날 위험이 크다. 성공을 분명히 정의 내려야 비전이 선명해진다. 내 경험상 그 선명함은 평정심을 가져다준다. 거의 모든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게 해주니까.
1974년 미스터 올림피아 5연패 직후, 피트니스 비즈니스의 개척자 잭 라랜Jack LaLanne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각종 운동기구를 발명했고 ‘헬스클럽’이란 개념 자체를 만든 사람이었다. 당시 그가 운영하던 클럽만 200개가 넘었는데, 나더러 광고 모델 겸 홍보대사를 맡아달라며 연간 20만 달러를 제안한 것이다.
지금도 큰돈이지만 1974년에는 더욱 그랬다. 세계 최고 보디빌더가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이 기껏해야 5만 달러 안팎이었으니까. 엄청난 제안이었지만 나는 즉각 거절했다. 헬스클럽 프랜차이즈 광고모델은 내 비전에 들어맞지 않았다. 부끄럽거나 격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체력 단련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잭 라랜은 영웅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내가 향하던 ‘배우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걸 알았기에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엄청난 부와 명성을 단박에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게 내 비전에 방해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비전이 조금이라도 흐릿하거나, 성공에 대한 정의가 분명치 않으면 다가오는 기회와 도전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는 건지, 그저 비슷한 건지, 그 ‘비슷함’으로 만족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이 있어야만 눈앞의 선택이 어디에 속하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비슷해 보여도 펩시와 코카콜라, 하와이와 괌 여행은 분명 다르다. 하와이와 괌은 모두 환상적인 날씨로 유명한 태평양 섬이고 달러를 사용하지만, 포시즌 호텔은 한 곳에만 있다.
스포츠에선 그 격차가 더욱 가혹하다. 정확한 목표와 비슷한 목표는 우승과 패배만큼 천지 차이다. 질 생각으로 경기하는 사람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정확히 원하는 그것을 겨냥해야 한다. 삶에는 리허설도, 연습도, 예행연습도 없다. 딱 한 번뿐인 실전이다. 그러니 미리 명확히 그려내고 확실하게 성취해야 한다.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승자인가, 패배자인가? 행복한 얼굴인가, 불행한 얼굴인가? 비전을 품은 사람인가, 길 잃은 사람인가? 쉬운 질문을 하나 더 하자. 당신의 눈동자는 무슨 색인가? 파란색인지, 갈색인지 묻는 게 아니다. 다시 묻겠다. 당신의 눈은 정말 무슨 색인가? 어찌 보면 결코 쉬운 질문이 아니다.
대다수는 이 질문에 머뭇거린다. 거울 보기를 꺼리니까. 설령 보더라도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다. 너무 불편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거울 속 모습은 마음속으로 그리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려면 아무리 껄끄러워도 날마다 거울을 봐야 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려면 매일 자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상상 속 내 모습과 거울 속 내 모습이 일치하는지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의 선택이 내 비전과 맞아떨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무용지물이 되지 않으려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자기 자신과 목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주변에 휩쓸려 삼켜질 가능성이 크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는 명료하다. 자기 인식과 비전의 선명도를 보면 안다. 좋은 이들은 이루려는 바를 구체적으로 알고, 비전을 모든 선택의 잣대로 삼는 절제력이 있다. 그들은 거울 속 자신을 수시로 확인한다.
비전은 우리와 함께 변화하고 진화한다. 좋은 사람들은 거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 나쁜 이들은 거울을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는 양 피한다. 대개 진정한 비전을 오래전에 잃어버리고, 인위적이고 이기적인 가짜 비전에 사로잡혀 그것으로 살아갈 뿐이다. 목표를 명확히 하려 애쓰지도,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애초에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런 부류는 오로지 돈을 위해 금융가로, 유명세를 위해 할리우드로, 권력을 위해 정계로 뛰어든다. 처음 떠올린 큰 그림이 통했기에 더 깊이 파고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중시했던 한 가지 면에서만 성공했다. 어쨌든 성공했으니 문제없다고 여긴다. 설령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봐도 고치려 들지 않는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계속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공직자이자 자선가로 살아온 지난 20년간, 내게 거울은 곧 유권자들의 표요, 지지율이자 통계이고 데이터였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로서, 대통령 직속 체육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기후운동가로서 숫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와 내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과 표와 행동으로 드러낸다. 나를 불신하는지 믿는지를 표명하는 방법이다. 데이터가 쏟아지고 지표가 변화하는 순간, 내 비전이 현실성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 할리우드에서 보낸 20년간 카메라와 스크린은 나의 거울이었다. 작품에서 구현하고픈 연기에 대한 비전은, 500석 어두운 극장의 9미터 스크린에 투영된 실제 내 모습만큼이나 중요하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고해상도로 완벽히 초점을 맞춰 초당 24컷을 찍어낸다. 《터미네이터》에서 내 출연분은 21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내 모습은 3만 장 이상의 선명한 이미지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내가 그 장면들을 목표한 대로 연기했다고 아무리 뿌듯해해도, 관객들도 그렇게 느껴야만 성공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야 그 영화에서 배우로서의 비전을 이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인생에 정점이나 특별한 순간만 있는 게 아님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기억에 남거나 앨범에 실릴 장면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사이사이도 모두 인생이다. 포즈 잡는 순간뿐 아니라 그다음으로 넘어가는 시간도 인생이다. 인생은 기나긴 공연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다면 사이사이의 작은 순간까지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사실 다큐멘터리 첫 장면에선 카메라 앵글 때문에 안 보이지만, 연습실 벽면 두 군데가 온통 거울로 둘러싸여 있었다. 무용수들 역시 보디빌더들처럼 안다. 자신을 정직하게 직시하지 않고선 성장이 없음을. 머릿속에 선명히 그린 목표를 위해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으면 발전할 수가 없다.
인생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불가능해 보이고 미친 듯한 비전을 실현하려면,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어떻게 비치는지 직시해야 한다.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라는 게 아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길 두려워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