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해야하는 단 한가지, '선택'

지나보니 별것 없었다. 그게 끝이고 새로운 시작이더라.

by 티벳여우


'이제 진짜 한계다, 더는 못하겠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 저절로 나오는 말이다.

이를 기점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 상황을 더 견뎌볼 것인지, 아니면 아에 환경을 바꿀것인지. 그러나 이미 에너지가 고갈되고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클 것이기에 환경 자체를 바꾸는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이미 겪었고 또 겪고 있다.


그러나 환경을 바꾼다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바꿀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오히려 더 답답한 마음이다.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 관계된 누군가가 내가 바꾸고 싶은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막막하게 느껴진다. 빛 한 점 드리우지 않는 검은 상자에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사막의 선인장은 강인하게라도 보이지만 난 그렇지도 않아서 마냥 사막에 버려져 시들어가는 풀떼기 같다. 그러다보면 다시 제자리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환경을 바꿔보고 싶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진퇴양난'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도달하게 된 원인을 거슬러 가다보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고 사소한 문제들이 얽히고설켜서 비롯된 경우가 대다수다.


예를 들면, '오해'다.

오해는 간접적인 전달 상황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아무런 의도없이 했던 내 한 마디의 말, 그 말은 부풀려지기도 하고 어그러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 왜곡과는 별개로 실제보다 더 실제가 되어 있다.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그리고 사전경고 없이 결과적 질문인 '왜 그랬느냐'에 대한 답변을 추긍받는다. 지금 마주한 상황에 대한 근원적인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해명을 하더라도 소용없다. 지금의 상황은 이미 가늠되지 않고,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진실로 포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왜 이렇게 됐지? 어디에서 부터 잘못된 거야?' 등의 과거론적 자문은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흘려 보내는거다. 자신이 부풀리고 어그러트린 말이 아니고, 자신이 한 오해도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굳이 해명할 이유도 없고, 굳이 해명할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부득이 꼭 해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아주 간결하게 핵심만 말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에는 생각의 초점을 자신에게 맞춘다.

선택의 순간이다. 그 상황을 더 견뎌낼 것인지, 아니면 환경 자체를 바꿀것인지. 어떤 선택이든 해야한다. 아니 어쩌면 진작 했어야 할 선택을 하지않고 끌고왔던 것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순간부터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겠다는 다짐도 포함되어야 한다.

바로 그 순간이 TV에서 보고, 글로만 읽고, 머리로만 이해했던 '자기주도적인 삶'을 선택하는 시간이다. 그 순간은 지금까지 지난온 삶의 축적이 아깝거나,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의 순간이 되면 알겠지만 생각보다 큰 충격은 없다. 많이 들어봤겠지만, 오히려 다른 문이 열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에 어떤 선택을 하던 신중하게 하되, 간결하게 하고 그 선택한 삶을 후회하지 않도록 또 잘 살아가면 된다.


지나보니 별것 없었다. 그게 끝이고 새로운 시작이더라.

더 견디더라도 지금까지 축적된 너저분했던 시간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고, 환경 자체를 바꾸더라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는 삶, 그 시작일 뿐이다.


그러니 힘들 때는 선택하라.
미루지 말고, 신중하면서도 간결한 선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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