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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Nov 29. 2019

조개 관자와 오징어 입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5


내가 어릴 때, 조개를 먹으며 엄마는 늘 말했다. 

“너희 외할아버지는 조개 관자를 먹지 않는 인간과는 상종을 말라고 하셨어.” 

외가는 섬이었고, 엄마는 바닷가와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국에서 바지락을 건져 먹을 때나 홍합찜을 먹을 때도, 조갯살이 빠져나간 조개껍질을 손가락으로 꼭 붙잡은 채, 거기 붙어 남아 있는 관자를 살살 긁어서 떼어 먹은 다음 깨끗해진 조개껍질만 버려야 했다. 


관자란 조개의 양쪽 껍질에 붙어 있는, 조개껍질을 닫을 때 쓰는 근육이다. 껍질이 2개인 모든 조개에 존재하지만, 아주 조그마한 그 근육살들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은 보통 ‘관자’라고 하면 커다란 키조개에서 썰어내어 먹기 편하고 식감도 좋은, 간장 종지만 한 동그란 단백질 덩어리를 다들 떠올릴 것이다. 그냥 구워 먹기도 하고 파스타에도 넣고,,, 그런데 키조개의 본체, 즉 다양한 살들이 복잡하게 섞인 몸통은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버리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대부분의 조개들, 작은 조개들은 당연히 그 몸통을 먹는다. 열을 가해 익힌 조개가 양쪽 껍질을 쫙 벌리면 사람들을 조갯살만 쏙 빼먹고 조개 껍질에는 잘 떨어지지 않는 조그만 관자 두 개가 그대로 붙은 채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글쓰기 모임의 리더가 자기도 조개 관자 안 먹는 사람이 있으면 꼭 지적한다고 말했다. 아마 그녀의 성정상, 살짝 지적은 하되, 꼭 긁어먹으라고 강요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모임 동료 가운데도 먹는 거 버리는 걸 안 좋아한다거나, 새우 머리를 버리지 않고 굽거나 튀겨서 먹는 걸 좋아하며, 삶거나 찐 새우도 속을 쭉쭉 빨아 먹고 나서야 버린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나왔다. 


하지만 한 동료는 비슷한 일화로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대든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와 밥을 먹다가 남겼더니 할아버지가 “농부들이 한 알 한 알 키운 쌀인데 미안하지도 않냐”고 했단다. 


그래서 그는 “돈 주고 산 건데 미안할게 뭐 있나? 미안하면 돈 주고 이걸 사온 엄마한테 미안하지”라고 했단다. 


저 이야기를 들은 나는, 저렇게 자본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해괴한 괴변인 논리를 가끔 펴는 어떤 친구가 생각이 났다. 


어쨌든 글쓰기 모임 동료도 그렇고 나의 친구도 그렇고, 저 세계관은 어쩌면 계급적인 문제가 연관돼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예전에는 오히려 밥상을 받고 나서 음식을 많이 남겨야 아랫사람들이 물려 받아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계급 사회의 ‘상물림’ 관습이다.


다른 내 친구도 식사를 할 때 거의 늘 음식을 남기며 주장하곤 했다. “위에 부담을 주느니 차라리 음식을 남기는 게 나아.” 그러면서도 음식을 적게 시키는 법은 없이, 늘 주문은 넘치도록 풍족하게 하는 친구다. 


물질적 풍요가 극에 달한 현대 사회에서 비만과 위장 장애를 피하고 사교 생활을 원활히 해나가기 위해서는 '절약의 습관'보다는 ‘남기는 습관’이 상용 윤리가 된 건지도 모른다. 


조개 관자를 먹지 않는 자와는 상종을 말라던 아버지의 교훈을 알뜰하게 실천해온 나의 엄마도 풍요의 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원칙은 조금 바뀐 것 같다. 언젠가 외갓집 식구들이 모였을 때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 말이다. 


“우리 그때 마른 오징어를 먹고 있는데, 너희 삼촌(엄마의 남동생)이 글쎄 오징어 입을 떼어서 나를 주면서 ‘누나 이거 좋아하지? 먹어~’ 그러는 거 있지! 참 내, 옛날에 아들들만 오징어 몸통을 먹이려고 하니까 아무도 안 먹는 오징어 입이라도 내가 얻어먹으려고 그거 좋아한다고 한 건데, 그걸 그렇게 기억하고 있더라.”





PS. ‘오징어 입’이란 흔히 ‘눈’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다리 사이 달린 조그만 동그란 살덩이로 까만 이빨 두 쪽을 감싸고 있다. 근데 요즘은 닭껍질 등 틈새 (괴식) 먹거리 개발 붐과 함께 오징어입도 별미로 팔리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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