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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Aug 22. 2019

할머니의 채 썬 야채와 쇠고기 반찬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4

할머니는 셋방을 살았다. 그것도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분밖에 안 걸리는 동네에서 조그만 부엌이 딸린 방 한 칸짜리 셋방에서 살았다. 엄마, 아빠와 나, 동생은 작으나마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았는데 말이다.


우리 네 식구는 일요일마다 할머니를 보러 갔다. 일요일 오전에 성당에 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할머니네로 갔다.


할머니는 개신교회에 다녔다. 교회에 일찍 갔다와서 부랴부랴 돌아온 다음, 좁은 부엌에서 우리 네 식구에게 대접할 점심을 준비했다.


우리가 도착하면 할머니는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어른 세 명과 아이 두 명은 좁은 방 안에 둥근 소반을 놓고 옹기종기 밥을 먹었다.


할머니가 해놓은 반찬은 야채를 아주 조그맣게 썰었고 모두 쇠고기가 조금씩 들어갔다. 오이를 얇고 둥글게 썰어서 볶은 쇠고기를 조금 넣고 무친 것, 호박을 가늘게 채 썬 다음 역시 가늘게 썬 쇠고기를 넣고 같이 볶은 것, 당근을 가늘게 썬 다음 다진 쇠고기를 약간 넣고 볶은 것, 감자와 양파와 고추를 작게 깍둑 썰고 조금 큰 쇠고기 조각을 몇 개 넣은 다음 끓인 고추장찌개 같은 것들이었다.


작게 토막을 내거나 얇게 채 썬 야채들은 씹기가 편했고 모든 음식에 빠짐없이 넣은 쇠고기 살점과 육즙은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쇠고기 값도 그렇지만, 투박하게 대충 자르는 요리보다는, 아무래도 돈과 시간과 솜씨가 더 필요한 요리였다. 양도 적고 크기도 자그마해서 소꿉장난 같은 느낌도 주긴 했다.


나는 할머니 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자랑스런 미소를 지었다. 엄마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늘 투덜거렸다. 아까운 쇠고기를 어울리지도 않게 아무데나 다 넣는다고 했다. 야채들을 너무 조각조각 내서 본래 맛도 다 죽고 영양소도 파괴된다고 했다.


커서 성인이 된 후에, 홍대앞 놀이터 옆에서 BaB라는 상호의 밥집을 발견했다. 옛날 할머니와 똑같은 방식의 야채 반찬들을 주로 내놓는 백반집이었다. 한동안 기회만 있으면 그곳을 갔다. 야채는 미세하도록 가늘게 썰려 있었고 비록 양은 더 적었지만, 다진 쇠고기가 여기저기 첨가돼 있었다. 사람들은 입맛을 다시며 야채 반찬을 집어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게 '경성식' 반찬 만드는 법이었나도 싶다. 할머니는 서울 토박이였고 엄마는 아니었으니까.


수년이 지나 그 가게도 없어지고, 우연히 이대앞에 갔다가 BaB라고 씌어진 그 밥집를 다시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서 백반을 시켰다. 예전처럼 야채 반찬을 위주로 내놓긴 했지만, 더 이상 조그만 고기 조각들은 들어가 있지 않은, 그냥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짠지 류의 야채 반찬이었다. 고기는 별도로 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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