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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Aug 17. 2019

일요일의 크로렐라 라면과  아카시아꽃 튀김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3

사실 나에게 '우리 엄마 특제 요리' 하면 우선 떠오르는 건 '아카시아 튀김'이다.


엄마는 집안일을 정력적으로 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손이 커서 엄청 많은 다양한 요리를 뚝딱 해서 온식구를 거둬 먹이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고, 본인 표현대로 "기신기신 움직이며" 하루 세끼도 겨우 해내는 편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가정에서 외식을 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고 주택가에는 음식점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일요일 점심이 되면, 엄마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니까, 우리집에선 항상 '크로렐라 라면'을 먹었다.


아는 사람은 알 거다. 한국야쿠르트에서 웰빙 라면으로 개발해 한때 꽤 인기를 끌었던 상품으로, 면발에 녹색 점이 박혀 있고 국물도 푸르딩딩했더랬다. 그때는 웰빙이라는 말이 없었지만, 라면을 건강하게(?) 먹는 법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일찍부터 존재를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랬던 엄마지만 종종 갑자기 의욕에 넘쳐 듣도 보도 못한 요리를 (한참을 걸려) 해낼 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독특했고,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해마다 반복해서 했던 요리가 아카시아 튀김이다.


해마다 봄이 무르익고 여름이 성큼 다가오면 우리집 뒷동산에 나무들마다 탐스럽게 매달려 짙게 풍겨오던 꽃향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 올해도 아카시아 꽃이 피었구나.. 그럼 튀김을 해야지!'


얼마전에도 파주 헤이리에 갔다가 꽃 무게에 쓰러지다시피 한 나무 곁에서, 아카시아 꽃 송이들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잔뜩 따서 담는 여인을 본 적이 있다. 그녀도 튀김을 해먹으려던 것일까?


아카시아 꽃은 조그만 포도송이처럼 생겼다. 보라색 포도 대신 하얀색 꽃들이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그 꽃송이를 통째로 튀겨서 먹는다. 묽은 튀김옷 반죽을 만들어 꽃송이째 담가 살짝 묻힌 다음, 끓는 기름에 넣어 튀기면 그만이다.


바삭거리는 튀김옷이 입혀진 꽃송이를 그대로 베어물면 꽃향기가 입안에 확 퍼진다. 꽃 속의 꿀 덕분에 맛도 달콤하고 야채 같은 알갱이가 씹히는 식감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꽃만 발라먹고 질긴 줄기는 남겨야 한다. 마치 포도송이를 통째로 입에 넣고 포도 알만 훑은 다음, 줄기는 입 밖으로 빼내는 기분으로 말이다.


그리고 사실... 두어 송이 이상 먹으면 왠지 더 이상은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역겨운 음식도 아니고 질린 것이랄 수도 없고, 그냥... '두 개 먹으면 딱 됐고 더 이상은 먹을 수 없어!'랄까. 엄마도 그걸 잘 알기에 한 식구 당 3송이 이상은 절대 튀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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