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2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한국의 1980년대는 미국의 1960년대와 같은 경제 성장의 황금기였다.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의식주가 풍요로워지고 중산층의 자산 역시 쑥쑥 불어나기 시작했다. 주방에도 냉장고뿐 아니라,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오븐이라든지 믹서기 같은 가전제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집도 마찬가지였다. 중산층 핵가족의 가정주부였던 나의 엄마는 조리 도구와 요리책을 사들이고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선진국 중산층 주부의 모습을 흉내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카스테라 다음으로 기억나는 엄마의 요리는 믹서기를 이용한 '레몬 마요네즈'였다.
지금 생각하면 레몬은 수입 과일이라 비쌌을 텐데 진짜 레몬은 아니라 수입 레몬 주스였나 싶기도 하다. 바나나 한 개가 1만원, 바나나 한 송이는 10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어느날 아빠가 길에서 파인애플 장수가 5000원! 이라고 외치기에 얼른 가서 돈을 건네고 나니, 이쑤시개에 꽂은 작은 파인애플 조각 하나를 건넸다고 했던 시절이다.
어쨌든 엄마는 집에서 직접 마요네즈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달걀을 조심스레 반으로 갈라서 노른자를 흰자와 분리했다. 나랑 동생도 옆에서 거들다가 몇 개 망쳤다.
30개가 든 달걀 한 판의 노른자를 모두 모아 믹서에 넣고 휘젓듯이 갈다가 기름을 조금씩 넣어주면 진득한 노란 액체가 희한하게도 흰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식초를 넣어야 하는 시점에서, 대신 엄마는 레몬즙을 넣었다.
홈메이드 레몬 마요네즈는 상큼하고 너무 맛있었다.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다음날 방과후에 친구들을 데려와서, 어제 만든 레몬 마요네즈를 식빵에 발라 몽땅 다 먹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엄마는 "허걱 이거 너희가 다 먹어버린 거야?" 하면서 소리쳤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