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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Aug 07. 2019

프라이팬에 구운 카스테라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1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음식은 아마도 엄마가 만들어준 '실패한 카스테라'인 것 같다.


우리가 반지하 집에서 셋방 살던 시절, 엄마는 어린 나에게 카스테라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벽 위쪽에 가로로 길게 난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어둑한 부엌에서 요리하는 엄마를 지켜보던 기억이 난다. 신식 부엌은 아니고 옛날식 부엌, 즉 시멘트 아궁이 같은 것도 남아 있으며 석유 곤로 같은 것을 주로 사용하던 부엌이었다.


카스테라 반죽을 만들던 과정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카스테라를 굽던 과정은 선명히 떠오른다. 손잡이가 위로 솟은 까만 프라이팬에 종이를 둘러 꼭꼭 눌러 깔고 기름을 바른 다음, 엄마는 조심스레 반죽을 따라넣었다. 그리고 석유곤로에 아주 작은 불만 피워 천천히 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을 충분히 줄이지는 못했나보다. 가장자리 종이가 타기 시작하면서 부엌에 달콤한 냄새가 번졌다. 바닥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조바심을 내며 젓가락으로 카스테라 반죽의 한가운데를 콕 찍어본다. 아직 덜 익었다.


나중에 엄마는 결국 밑은 타고 위는 약간 덜 익은 '동그란 카스테라'를 프라이팬에서 꺼냈다. 우리는 종이에 눌어붙은 빵을 긁어먹었다. 엄마는 "실패다. 그렇지? 그래도 맛있지?" 하고 말했고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년이 지나 우리 가족은 서울 남서쪽 변두리 택지에 단층집을 지어 이사했고 그 집에는 신식 싱크대는 물론 오븐까지 설치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완벽한 카스테라를 구워냈다. 어쩜, 파는 것과 맛은 물론 모양까지 똑같았다.


엄마는 한두 번 더 만들더니 재미가 없는지 더 이상 카스테라를 만들지 않았다. 나도 별로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사먹는 거랑 똑같은데 굳이 엄마한테 만들어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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