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6
얼마전 글쓰기 모임을 나갔다더니, 동료 하나가 요즘 에어프라이어로 통닭구이를 만드는 데 푹 빠져 있다고 자랑을 했다. 단돈 3만원인 기계값에, 기본 식재료 구입에 들어간 금액을 소소하게 나열한 다음, 완성된 통닭 사진을 보여주던 그의 얼굴은, 기계를 다루는 성취감에다가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첨가되고 돈을 아낀 뿌듯함까지 더해져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구시대의 애물단지 튀김기에 오븐의 개념을 합쳐, 눈부시게 진화된 요리 도구인 에어프라이어에 대한 열광을 최근 꽤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거기에 밥솥 기능까지 넣어야 하는 거 아냐? 분명 조만간 될 거야. 그때나 사야지. 죽이나 요구르트 제조 기능도 꼭 들어가야겠네.’
내가 어릴 때 나의 부모도 색다른 주방 기계 사는 걸 좋아했다. 물론 주로 엄마가 구매하고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그중에 특히 녹즙기에 빠진 엄마는 몇 년에 걸쳐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갈아대며 총 서너 개를 구매했던 것 같다.
처음엔 그냥 표준형 믹서만 사서 야채를 간 다음, 수동 착즙기에 베보자기를 깔고 갈린 야채를 넣어, 지렛대 형 손잡이를 꾹 눌러 내렸다.
그러다가 스크류처럼 생긴 둔탁한 날이 야채를 으깨는 동시에 즙을 짜내는, 미싱처럼 생긴 녹즙기가 있었다. 뒤쪽으로 나온 야채 건더기에는 아직 즙이 많이 남아 있어서, 엄마는 그걸 다시 수동 착즙기에 넣고 한 번 더 짜냈다. 그리고 신기술이 적용되며 녹즙기는 점차 전자동이 되어갔다.
나도 식탁에서 엄마를 도와 야채 조각을 믹서 구멍에 넣거나 착즙기에 눌려 찌부러진 야채 찌꺼기를 정리하며 같이 놀았다. 그러다가 납작하고 딱딱해진 야채 찌꺼기를 잠시 바라보며 생각했던 것 같다. ‘왜 이걸 먹지 않고 그냥 버려야 하는 걸까?’
조리 도구는 엄마만의 장난감은 아니었다. 아빠에겐 와플메이커가 있었다. 40년도 전이라 우리나라에 아직 와플이라는 간식이 알려지기 전, 아빠는 해외출장을 갔다가 괴상하게 생긴 메이커를 사왔다. 바둑판 모양의 요철이 위아래로 달린 둥근 기계. 그 사이에 호두 등을 넣은 묽은 밀가루 반죽을 붓고 뚜껑을 닫고 가열하는 거였다.
한동안 우리집 일요일 아침은 계속 와플이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아빠와 엄마는 설탕이나 기름의 양을 짐작으로 조절해가며 매번 다르게 와플을 구워보았다. 와플 기계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는 매번 기가 막혔지만, 노릇노릇 구워져 나온 빵도 대체로 맛이 괜찮았지만, 한 개 이상 먹기는 느끼했다.
열 번을 채 해먹지 못하고 우리 식구들이 싫증을 낸 와플 기계는, 그 후로 오랫동안 벽장 속에 박혀만 있다가 사라졌다. 아마 이사 때에 버리지 않았을까? 내가 알기론 와플메이커가 벽장에 들어간 이후 다시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