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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Jan 27. 2020

생애 첫 외식과 체리 피커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7


내가 어릴 땐 가정에서 외식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살던 서울 변두리 주택가엔 아예 주변에 식당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도 집에서 먹는 밥을 제일 좋아하는 아빠 때문에, 난 어린 시절 거의 외식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아빠는 시내 한복판의 직장에서 점심을 계속 사먹었을 테고, 저녁에도 회식이 많았을 것이다.


내가 난생 처음 외식을 하던 날, 난 집 밖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던 것 같다. 아마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이나 아니면 들어간 직후였을 것 같은데, 외식의 이유는 정확히 생각 나지 않는다. 아마 우리와 고모처럼 친하게 지내던 분의 환갑이었던 것 같다.


나의 첫 외식 장소는 무려 롯데호텔 뷔페였다.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도 비싸서 가본 적 없는 명동의 롯데호텔 뷔페. 외식이라곤 해본 적 없던 꼬마에게 그곳은 신세계였다.


난생 처음 보는 음식들이 줄줄이 늘어선 긴 통로를 살금살금 걸어다니며 하나씩 가져다가 맛을 보았다. 예쁜 모양만큼이나 살살 녹는 요리도 있었고 괴상한 향이 나서 코를 싸쥐게 된 음식도 있었다.


하나씩만 먹어보는 데도 무척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배도 불러 버려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해하고 있는데, 아빠의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아빠의 접시에는 내가 미처 못 본 음식들이 여러 가지 놓여 있었다. “어? 아빠, 난 그런 거 못 봤는데, 어디서 가져온 거야?”


아빠는 자랑스런 미소를 지으며 뷔페 테이블을 가리켰다. “음식들 위나 옆쪽에 잘 보면 있어.”


나는 아빠를 끌고 뷔페 테이블에 가서 희귀한 식재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건, 중국 요리 한 켠에 장식으로 놓인 파슬리, 치즈 접시 옆에 살짝 숨겨져 있던 올리브, 커다란 케이크 맨 꼭대기에 딱 몇 개만 올려놓은 라즈베리 같은 것들이었다. 지금이야 흔해진 식재료지만 40년전의 이국적 식재료들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 나는 ‘음식과 계급’에 대해 생각했을 것 같다. 아빠는 나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기분, 아빠가 나보다 훨씬 좋은 음식들을 먹고 다니며,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짐작.


지금 생각하면 아빠는 cherry picker(체리를 집어먹는 사람)였다. 여럿이 함께 먹는 음식에 장식으로 놓인 것들은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모두가 마지막까지 양보해야 하는 법인데, 그걸 먼저 얌체처럼 빼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사회적 재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명칭이지만, 아무나 체리 피커가 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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