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8
초등학교가 끝나면, 교문 밖으로 뛰쳐나온 우리를 기다리던 먹거리들이 있었다. 동전 몇 개로 약간의 허기를 채워주거나 입을 즐겁게 해주던 간식들.
그럴 때 가장 많이 먹은 건 떡볶기일 테고 ‘보름달’ 같은 빵이나 ‘하드’라 불리던 막대 아이스크림도 가끔 먹었지만, 그런 건 지금도 자주 먹고 있어서 그런지 추억성은 거의 희석된 느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우리 세대 유년기의 대표적인 추억의 먹거리를 하나만 꼽자면 ‘달고나’가 아닐까 싶다. 국자에 설탕과 소다를 넣고 연탄불에 잠시 올려 두면 지글지글 녹으면서 달콤한 냄새를 확 풍기다가 나무젓가락으로 휘익 저으면 갈색으로 부풀어오르던 이미지를, 다들 머릿속에 또렷이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달고나는 그냥 먹기만 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강렬한 비주얼과 냄새와 맛과 함께, 꼬마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던 건 달고나의 ‘게임성’이었다. 설탕이 갈색으로 부풀어오르면 장사꾼(혹은 요리사 or 딜러!)는 그걸 기름 바른 철판 위에 탁 털어내고 도구를 이용해 납작하게 눌러 편 다음, 그 위에 다시 각종 틀을 대고 꾹 눌러 모양을 찍어냈다. 별 모양, 새 모양, 비행기 모양…
하지만 ‘꾹’ 눌렀을 리는 없다. 장사꾼은 달고나 틀을 아주 살짝 눌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틀 모양 대로 잘라내기 힘들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어떤 아이들은 뜨거울 때 마구 쳐야 한다며 엄지 검지로 튀기다가 더 엉망을 만들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침으로 조금씩 녹일 거라며 침이 줄줄 흐르는 입을 벌려 혀를 쑥 내밀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틀 모양 대로 깨끗이 잘라내면 달고나를 공짜로 한 개 더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은 아주 드물었고 우리는 “또 꽝 났어!” 하면서 늘 탄식을 내질렀다.
또 달고나가 ‘설탕을 녹여 만든 간식류’를 통칭한다고 볼 때, 문방구 앞에 다양한 모양으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노랗고 투명한 얇은 판도 달고나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검색은 안 되는 것 같다. 다른 이름이었나? 판형 사탕이라고 해야 할까?
그 노랗고 커다란 사탕을 사는 방법은 게임을 지나 도박 같은 데가 있어서, 빙고 같은 숫자판 위에 막대틀을 이리저리 놓은 다음 종이 쪽지를 뽑는 거였다. 정말 커다란 사탕이 걸리는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조그만 게 뽑히곤 했다. 투명 비닐 포장을 벗기고 잘라서 입에 넣어 보면 그냥 단맛뿐인 데다가 냄새도, 퍼포먼스도 없으니, 그다지 꼬맹이들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며 우리는 점차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더 신기한 먹거리들을 직접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로 백화점 푸드코트였다. 친구 하나가 “오늘 우리 백화점 갈까?” 하고 운을 띄우면 우르르 몰려 갔던 것 같다. 색색의 먹거리가 들어앉은 유리 상자, 즉 쇼케이스들이 줄줄이 놓인 통로를 다다다 달리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한 즐거움을 느끼던 기분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우리는 유년기에 게임으로, 도박으로, 탐험으로, 처음 음식을 사고 파는 방법을 배웠다. 그 시작은 단순한 물질들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고 변형되어 황홀한 냄새와 영롱한 오색으로 유혹하는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었던 게 아닌가도 싶다.
PS. 같이 글쓰기 하는 친구가 ‘판형 사탕’이 ‘잉어 엿’으로 검색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음식에도 글쓰기에도 함께하는 사람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