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13
중학교 때 나랑 친구가 되었다가 고등학교도 같은 곳에 들어간 H. 새침한 성격이어서 여러 친구들과 왁자하게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KFC 상품권을 몇 만원씩 들고 와서 우리를 데리고 시내로 나갔다.
지금으로부터 몇십전, 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한 번도 패스트푸드점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미국에서 들어온 그런 멋진(?) 간식점은 시내 중심가에나 있었고, 서울 변두리에 살던 나 같은 소녀들이 쉽게 다니던 곳은 아니었다.
처음 H를 따라 다른 애들과 KFC를 갔을 때 다들 머리 위의 눈부신 메뉴판을 보며 주눅이 들어 멍하니 서 있던 기억이 난다. H는 우리를 제치고 슥 카운터로 다가가 능숙하게 주문을 했고 상품권을 내밀어 결재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너무 멋져보였다. 아마 닭튀김이라는 음식도 그때 처음 먹어보았을 것이다. 집에서 먹는 엄마의 닭 요리는 백숙 아니면 볶음탕이었으니까.
우리는 H가 받아온 음식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며 설명을 들었다. 온통 종이와 플라스틱에 싸인 포장부터가 낯설었다. 특히 고소하기 짝이 없는 폭신한 빵을 ‘비스킷’이라고 부르는 데는, 슬쩍 빈정이 상할 정도로 의아했다.
H가 또래에 비해 좀 성숙하고 H네 집이 소비 문화에 익숙한 편이기도 했지만, H가 친구들에게 한턱 낼 KFC 상품권이 가끔 생겼던 건 그녀의 아버지가 두산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색해보니 2014년에 KFC를 마지막으로 대기업 두산은 OB 등 식품 계열사를 모두 매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H 덕에 패스트푸드라는 신세계를 경험한 지 얼마 안 돼, 큰아빠 댁에 갔다가 KFC 로고가 찍힌 하얗고 커다란 종이 그릇이 굴러다니는 걸 보게 되었다. 우리는 친척들 중에 큰아빠 네와 가깝게 살고 친하게 지냈는데, 그 동안은 아마 보아도 뭔지 몰랐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KFC의 ‘버킷’이었다. 치킨 메뉴 중에 제일 비싼 것, 즉 8조각짜리를 사면 거의 대야 크기의 종이컵, 즉 하얀 바탕에 빨간 로고가 찍힌 둥근 종이 그릇에 담아서 준다.
하지만 그 그릇을 처음 본 나는 “앗, 저거 KFC네? 저런 종이 그릇이 다 있어?” 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그러자 사촌언니는 “응, 저거 치킨 버킷이잖아” 하고, 내가 얼마 전에야 처음 가본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의 전문 용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그걸 모르는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큰아빠가 퇴근하면서 종종 치킨 버킷을 사온다고 했다. 우리 아빠는 그런 거 사온 적 없는데… H네 집이 소비 문화에 밝은 게 아니라, 우리 집이 소비 문화에 어두운 거였다는 충격이 밀려왔다. 혹은 우리 아빠는 집에 그런 걸 사올 애정이 없거나. 나는 즉시 집에 가서 따졌다. 엄마의 대답은 ‘절약해야 잘 살지’였고 아빠의 대답은 ‘밖의 음식은 몸에 안 좋다’는 거였다.
물론 나는 그 이후 KFC를 가끔 사먹었다. 심지어 한때 나홀로 생활에 심취했을 때는, 운동을 갔다가 나오면서 맥주까지 팔게 된 동네 매장에 들르는 게 낙이었던 시절도 있다. 텐더 스트립 두 조각과 플라스틱컵에 담긴 생맥 한 잔을 들고 창가 일인석에 앉아 어두워가는 사거리를 내다보면서 쓸쓸하고 보람찬 하루를 마무리했다.
얼마전에는 40년 인생 처음으로 집에서 KFC 배달을 시켜보았다. 늘 혼자 가서 먹느라 주문할 수 없던 치킨 8조각을 드디어 시켰더니, 30년 전과 똑같은 디자인의 버킷에 담겨와서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내용물을 다른 곳에 비운 후 하얀 종이 그릇을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봄을 맞은 동네 화원에서 호박 모종을 사다가 흙을 담고 심었다. 호박 열매를 따먹을 기대는 별로 없지만, 호박잎이라도 따서 데쳐 먹을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