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14
어느날 엄마가 시장에서 병어를 사왔다. 아니 나랑 같이 시장에 가서 병어를 골랐던가? 어쨌든 유난히 통통하면서도 납작한 그 생선을 엄마는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요놈은 싱싱하네. 회를 떠야겠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때였던 나는 회를 거의 먹어본 적이 없었다. 요즘이었다면, “앗, 시장에서 죽은 생선을 사서 회를 뜨면 어떻게 해?”라고 반발했겠지만, 나는 그냥 멍~ 했을 뿐이다.
부엌 도마 위에서 엄마가 생선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별거는 없었고 그냥 지느러미만 떼고 뼈째 몸통을 썰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에게 한 조각을 집어주었다. 얇은 타원형 살 가운데에 뼈가, 그 양쪽에 가시가 날개처럼 박혀 있었다. 그냥 입에 넣어서 한참 씹으니 고소해졌다. 마지막까지 씹히지 않는 껍질과 뼈와 가시가 조금 남았다. 엄마가 그건 그냥 뱉어내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에는, 우리가 현재 주로 먹는, 살아 있는 생선을 바로 죽여서 뜨는 ‘활어회’뿐 아니라, 죽은 지 시간이 꽤 지나서 먹는 ‘선어회’가 있었다. 오히려 죽은 지 24시간이 지난 생선으로 뜨는 선어회가 감칠맛이 더 높다고. 다만, 기생충과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죽인 즉시 피를 빼고 내장을 제거했어야 하며 그 다음엔 저온에서 숙성을 시켜야 한다는 데, 그때 그 병어회는 그런 과정을 거쳤던 걸까?
그때의 엄마보다도 훨씬 나이가 든 후에도 나는, 회를 뜨기는 고사하고 생선을 손질해 본 적도 거의 없다. 잘 손질 및 토막 난 냉동 조각을 사다가 구워먹는 게 고작이다. 예전에 한 번 일본 사람이 쓴 각종 생선 및 해물 손질법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해 보려다가, 부실한 내용과 엉망인 편집에 실망하고 포기한 적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생선 손질법을 배우게 되는 일은 없겠지.
그게 아쉬워서인지 가끔 그 옛날 엄마의 병어회 생각이 난다. 자주 있었던 일도 아니고 거의 한 번 있었던 일인 것 같은데도 말이다. 그리고 병어라는, 입은 조그맣고 몸은 세모난, 납작하고도 통통한 생선을 보면, 꽤 반갑고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