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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Nov 11. 2021

탄생 열매 딸기와 생일 싫어 병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19

언젠가부터 생일이 싫어졌다. 정확히 말해서 생일을 챙기는 게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사람인데, 사람이 하는 일이 인위적이어서 싫다고 하면, 말이 좀 이상해지지만, 어쨌든 생일을 기념하는, 나의 민족을 포함한 꽤 많은 문명의 풍습이 못마땅해졌다는 말이다. 이 이 지구 어딘가엔 생일을 챙기지 않는 민족, 어족, 부족이 있을 텐데, 그들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일을 챙기는 풍습이 불편하다고 하자, 글벗 하나가 물었다. 어릴 때 생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냐고. 그래서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봤는데, 언제부터 생일이 싫어졌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난 것은,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생일을 좋아하고 기대했던 적이 분명 있었다는 거였다.


내 생일은 정확히 딸기가 열리는 계절이었다.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요즘 딸기는 가을에도 나오지만 주로 2월이 제철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1월이던가.. 내가 어릴 때의 딸기는 늦봄에, 내 생일에 딱 맞춰 나오는 과일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네 탄생 열매는 딸기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올해도 네 탄생 열매가 나오기 시작했네!” 하면, 가끔 여유가 될 때면 내 생일에 직접 딸기 케이크를 만들어주거나, 딸기를 한 상 가득 차린 잔치를 열어주곤 했다. 


그런데 요즘 왠지 초봄이 되면 호텔마다 딸기 부페를 열기 시작했다. 딸기가 많이 생산되고 또 유통 기간이 짧으니까 빠른 기간에 소비를 하려 파티 분위기가 벌어지는 걸까? 어떤 일본인에게서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잊을 수 없는 걸 하나 꼽으라면 딸기 맛’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아마 한국의 봄 햇살이 강해서 그런 것 같다며..


요즘도 나는 딸기를 제일 좋아하는 과일로 꼽는다. 하지만 어쩐지 예전과 같은 감흥은 없고 그리 많이 사먹지도 않는다. 제철이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다양한 과일도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집에 늘 딸기 화분 몇 개는 꼭 두고 애지중지 키운다. 잘 죽는 편이라 모두 없어질 위기에 처할 때도 있지만, 그러면 제철이 아니더라도 교외 지역 화원들을 헤매다니며 우수리 남은 딸기 화분을 꼭 찾아내고야 만다. 

베란다에서 키우느라 햇빛이 약해서인지 열매가 잘 달리지 않지만, 가끔씩 조그만 열매가 결실을 맺어 빨갛게 익을 때면 그 향기와 맛은 정말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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