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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Nov 14. 2021

까다롭게 요거트를 찾다가 직접 만들다가 대체하기까지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20

어린 시절엔 어딜 가나 야쿠르트가 흔하게 있었고 커서는 요즘에도 특정 한식당에 가면 가끔 야쿠르트를 나눠준다. 그것도 요거트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긴 하지만 사실 각종 첨가물과 향신료를 넣어서 만든 탄산음료에 더 가까우니까.


우유에 유산균만을 넣고 미지근한 온도에서 발효시켜 만드는, 오래된 서양의 음식으로서의 요거트는 새천년이 시작된 이후에야 '내' 눈에 포착되지 않았을까 싶다.


헬리코박터, 위건강, 장건강, 라씨, 뮤즐리 등의 키워드로 발전돼가던 요거트의 세계를 보며, 그런가부다 했던 내가 처음 요거트라는 녀석에게 매혹된 건 미국 엘에이에 세 달 정도 살게 되었을 때였다.


한창 친환경이니 생협이니에 관심을 가지게 된 무렵이기도 해서, 우연히 살게된 집근처에서 Whole Foods라는 슈퍼마켓을 발견하고 신이 났는데, 그중에서도 요거트 코너에 우뚝 멈춰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도 한국에선 시판 요거트가 (브랜드 말고는) 몇 종류 되지 않는데, 여기는 풀 먹인 소, 유기농 소, 일반 소, 저지방, 무지방, 전지방, 인도식, 중동식, 그리스식, 플레인, 설탕, 합성감미료, 가향, 각종 과일 첨가 등으로 세부 분류된 몇 백 종이 한 코너에 빼곡히 정리돼 있었다.


예전에 이십세기의 아버지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십일세기의 나까지 그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몇 가지 한국 내 비인기 품목에 한정된 거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합의 요거트 같은 건 지금도 찾기 힘드니까. 그리스식-무지방-무가당-무가향-풀 먹인 소에서 나온 요거트.


그렇게 새로운 세계와 사랑에 빠진 나의 아침은 늘 다양한 요거트와 함께였다. 뮤즐리를 넣어 먹기도 하고 오트밀만 넣어서 좀 맛없게 먹기도 하고, 크래커, 머핀, 베이글, 피타 브레드와 함께 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계속 Whole Foods에서 새로운 종류의 요거트에 대한 시식도 종종 해보았는데, 그러다가 발견한 게 케피르 요거트였다. 포장지에 인쇄된 사진을 보자 있음직하지도 않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퍼뜩 떠올랐다. 새로운 식재료를 시험해보는 걸 좋아했던 엄마 때문이었다.


당시 유행했는지, 어디선가 얻어온, 조그만 포도송이처럼 하얗게 뭉쳐 있던 균 덩어리. 그걸 우유에 넣으면 요거트가 된다고 했다. 밤에 조심스레 우유에 퐁당 떨어뜨리고 아랫목에 놓아두면, 다음날 아침 우유가 시큼하고 걸쭉하게 변해 있었다. 그걸 체로 살살 걸러서 요거트를 내리고 남은 균 덩어리는 물에 살짝 씻은 다음 냉장고에 보관했다. 어찌나 시큼하던지 나랑 동생은 맛이 이상하다며 입을 손으로 막고 잘 먹지 않으려 했지만…


그냥 야쿠르트나 먹지 자꾸 이상한  만들어서 먹이려는 엄마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도 요거트를 제조하게  줄은 몰랐다.  한국에 돌아온 , 원하는 요거트를 사기 힘들다며 ‘제조기 샀던 거다.


그냥 작은 밥솥 같이 생긴 간단한 보온기였다. 하지만 케피르 종균을 사지는 않고 우유에 기성 제품 요거트를 5분의 1 가량 넣은 다음 보온기에 넣어서 하룻밤 재우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던 요거트를 재창작했다. 그 다음엔 내가 만든 요거트를 5분의 1만 남겼다가 다시 우유를 붓고 요거트를 만들긴 반복했다. 무한 증식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은 아니다. 난 또 요거트를, 곡물 먹은 소가 아닌 grass feed 즉 풀 먹인 소에게서 짠 우유로 만들겠다며 드문 판매처를 찾아헤맸다. 원거리 배달에 이어 백화점 사냥을 다니기까지. 결국 오메가3가 풍부하며 꽃향기가 나는 나만의 요거트로 아침 식사를 이어가길 고집했다. 난 결국 엄마를 닮는 걸로도 모자라 한 발 더 나가기까지 한 거다.


더 기가 막힌 건 요즘의 나는 육식을 줄이겠다며 콩물을 만들어 아침을 먹고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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