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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Jan 28. 2022

어른 사회의 신선한 불고기

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21

헷, 그러고 보니 어제 대패 삼겹을 몇백년 만에 먹은 듯하네. 몸에 안 좋을까봐 긴장은 되었지만 맛있었다…


예전에 내 또래의 친구 하나가 자긴 대학 들어가서 친구들과 함께 삼겹살을 처음 먹어봤고, 신세계가 열렸다고 말했다. 걔네 엄마가 돼지고기를 싫어하셨기 때문에 집에서 아예 안먹었다고. 그때 나도 그 말에 상당히 공감했더랬다. 반대로 우리집은 일요일마다 (싸구려)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습관이 있었는데도 그랬다. 


내가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서 내 돈 주고 처음 사먹은 돼지고기는 우리집에서 먹던 거랑 전혀 달랐다. 대학을 사회라 치고, 대학생을 어른이라 치고, 선배가 사준 음식을 ‘내 돈 주고 처음 사먹은’의 범주에 넣는다고 하면 말이다.


늘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희멀건 국만 먹던 신입생 시절도 어느새 끝나가던 즈음, 친하게 지내던 선배 하나가 몰래 몇명만 따로 모으며, 과외비를 받았으니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그건 돼지 목살이었다.


드럼통에 담긴 연탄불 화로도 신기하고 그 위에 얹힌 철방 구이판도 신기했는데, 가위와 집게와 함께 나온 두툼한 분홍색 살점들에 더욱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집에서 늘 먹던 돼지고기는 얇게 썰린 회색빛이었으니까. 


그리고 도톰한 핑크빛 살덩이들 위에는 굵고 네모난 하얀 소금 결정들이 아롱아롱 붙어서 빛나고 있었다. 그대로 직화 위에 올라가 지글지글 익으며 캐러멜화 반응을 일으켜 갈색으로 함께 눌어붙었을 때, 난 정말 감격했고 친구의 말 그대로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돈 번 어른의 맛’이었다고나 할까. 어쩐지 다시 유전자에 새겨진 원시 시대의 생활상으로 회귀하는 듯, 그것은 공동체(?)가 모여 고기를 구워서 나눠먹는 방식이었다. 왠지 개발도상국 4인 가족 내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고, 아마 나의 아버지도 밖에서는 (돈 버는 사람들끼리) 이런 것들을 먹고 있었을 것이라는, 이후로 자주 하게 된 생각을 그때 처음 했을 것이다. 


지금도 풍요와 잔치의 이미지는 나에게, 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선명한 분홍색의 큐브형 돼지 살점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이제는 물론,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 불고기로 대표되는 직장 회식 문화를 혐오하게 된지 오래고, 거기에 육식에 대한 정치적 건강적 우려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그래도 어제 먹은 대패삼겹의 의미는 특별했다. 오랜만이기도 했고 그건 정말이지 타인을 포용하고 나의 자아를 확장하는, 진정한 불고기의 (원형적) 의미에 부합한다고 판단 내렸으니까. 현대 사회의 풍요는 그렇게 오는 게 아니지만 여전히 풍요의 감각은 있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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