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22
나 대학 다닐 때는 운동권의 전성 시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권이 득세하면서 에너지가 남아돌던 시기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 조직을 특정 이념의 분파들이 장악하고 대학의 모든 활동이 운동권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지난 시대의 반정부 투쟁으로 한창 축적된 힘이 쓰일 곳이 애매해진, 민주화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래서 그렇게 모임이 많았나보다. 나도 대체 몇 가지 모임을 했는지...
아무튼 그리고 또 그 시절에는, 대학에 잘 사는 집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학과만 해도 절반이 지방 출신, 나머지 절반이 서울의 중산층 이하 출신이었고, 소위 강남 출신은 과에 두어 명 있을까말까였다. 그중에서도 부유함을 숨기려 애썼던 언니, 그 언니를 따라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나는 압구정동에 처음 가보았다.
언니는 학생회에 열심히 참여하면서도 자신의 계급적 위치 때문인지 늘 사람들과 약간 서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내가 속한 모임의 모임장을 맡으며 아주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곧이어 내가 다음 모임장이 될 거란 정황이 분명해지자, 나한테도 적극적으로 잘해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녀는 나에게 단독 데이트를 신청했다. 즉, 점심을 사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압구정동 맥도날드에서.
때는 여름방학이긴 했지만 꽤 의아한 제안이었다. 방학에도 늘 학교에 나가는 우리들이었는데, 학교에서도 멀고 나의 집과도 먼, 자신의 집앞에서 만나자는 제안은 전혀 평소의 언니답지 않았다. 언니는 늘 조직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더구나 나를 따로 만나자고 한 것도 바로 그 조직을 위해서였는데, 압구정동 맥도날드에서 만나자고?
아마 나는 압구정동에 처음 가보는 길이었을 것이다. 뉴스에서 압구정동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집과 학교를 비롯한 나의 행동 반경과 동떨어진 그곳은 마치 어디 다른 도시 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내가 그 동네에 대해 그나마 아는 건 이른바 부유층과 관련된 부분뿐인데, 하필 패스트푸드 점에서 만나자는 것도 꽤 의아했다. 아니, 사실 그때는 우리나라에 맥도날드가 막 상륙했고 1호점을 압구정동에 내서 화제가 된 시점이긴 했다. 미제 싸구려가 한국에선 고급으로 둔갑하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전에도 국내에 햄버거가 없었던 건 아니고, 어린 나도 햄버거가, 더구나 맥도날드라는 브랜드가 어떤 위치의 음식인지는 알 정도의 국제적 상식은 있었다.
그런데 굳이 나를 압구정동까지 불러내서, 굳이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주겠다고 하는 건 뭔가 이상했다. 아니 실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행동이었다.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활동과 정확히 배치되는 상징적 지역을 선정, 그러면서도 무슨 고급한 식당이 아니라, 쓰레기 음식(정크 푸드)이자 어쩔 수 없이 힙함의 상징이 돼 버린 햄버거 브랜드 지목…
맥도날드에서 만난 언니는 말했다. “맥도날드에서는 빅맥이지.” 그러고서 세트 두 개를 시킨 다음, 시범을 보이듯 햄버거를 덥석 베어물었다. 눈빛을 반짝이면서 나를 쳐다봤다. 난 사실 언니를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더랬다.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혀 안 하는 사람, 늘 번듯해 보이려고만 하는 가식적인 사람, 뭔가 합리화에 능한 기회주의적인 사람인 것 같다고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껏 입을 벌려 맥도날드 햄버거를 베어물며 어쩌나 보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던 그녀를 마주하던 그날 이후 나는 경계심을 완전히 풀고 그녀를 전혀 다르게, 어쩌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왠지 굳이 말하지 않는 그녀의 진심을 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 언니의 점심 초대는, 이 이상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자신만의 방식을 서로 인정해 주자는 제안으로까지 느껴졌다. 아이러니를 포용하는 어른의 방식. 이후 나는 그녀를 비딱하게 바라보거나 빈정거리는 일이 없어졌고 우리는 오래 우정을 나누게 됐다. 그건 강력한 식사 대접의 힘이었고 언니는 이후로도 종종 그 능력을 발휘해 주변 사람을 모으곤 했다.
집을 자주 옮겼던 언니는 이사하고 나선 집들이라는 핑계로 자주 사람들을 불러모아 음식을 해먹였다. 마치 대갓집 며느리의 현대판이라도 된 것처럼 기운찬 메뉴들에 음식량도 놀라웠지만 가장 놀라운 점은 언니의 속도였다. 엄청난 속도로 해내는 음식부터 손님들이 채 후식도 다먹지 않은 시간에 해치우는 설거지까지, 경이로운 주방일 속도는 아무래도 남다른 체력 덕분인 듯했다. 겉으로는 여리게만 보이는 체구 어디서 저런 속도와 힘이 나오는 건지, 평소에는 전혀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난 왠지 언니의 집들이, 하면 연어 샐러드가 생각난다. 그녀가 가장 간단히 뚝딱 해내는 요리였고 그녀의 집에 재료가 늘 상비돼 있는 듯했으며, 한창 우리가 어울리던 당시 유행이 시작된 음식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어느 주말 문득 언니네 집에서 모인 즉석 파티에서도 여지없이 훈제 연어 샐러드가 안주로 나왔으며 그때 나는 그 집에 미리 와 있던 멤버가 완성해서 던져둔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깔깔 웃었더랬다. 떠나면서 다른 후배 하나는 언니에게 “누나, 나 이 집 옆으로 이사올 테니까, 밥만 맨날 좀 해주면 안 돼?”라고 해서 모두를 웃겼다. 나도, 그애도, 정말 그래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