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루틴이 필요했다. 머리채를 잡고 나를 생산적인 삶에 가깝도록 안내해 줄 무언가를 깊이 욕망했다. 지난 가을 동안 아침 열 시까지 신촌으로 갔다가 오후 네 시 반까지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카페에 가서 그날의 과업들을 처리했다. 밤 열 시가 되어서야 가뿐하지 않은 마음으로 집으로 출발.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도독 소리를 내는 목 관절과 뻣뻣해진 승모근을 꾹꾹 누르며 옷장에서 새 속옷과 잠옷을 챙겨 누울 새도 없이 바로 씻었다. 노래 한 곡을 반복재생 하며 씻는 시간은 그때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자 일종의 고해성사 같은 것이었다. 간절하게 원했던 그 신성한 찰나가 끝나면 바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뭘 했다고 벌써 새벽 한 시인지. 약 세 시간 정도를 더 작업하면 이쯤이면 눈을 붙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아침 일곱 시에 기상. 하루에 세네 시간씩 자도 하나도 안 힘들었던 폭발적인 두 달. 해낼 거라는 마음 하나로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었던 두 달.
그래도 시간이 아까워 지하철에서도 구차해 보일 정도로 지겹게 텍스트를 읽곤 했다. 활자중독자가 내 우상이라는 듯이. 불현듯 전날 고친 문장이 억지스러웠다는 걸 깨닫고는 급하게 가방에서 교정지를 꺼내서 펜을 들고 원래대로 돌려 놓으려다 내릴 역을 지나치기도 했으며 책을 읽지 못할 때에는 사람들을 살피며 소설 속 인물을 만들어 냈다. 나는 활자에 집착했던 것 같다. 걔네가 좋았던 이유는 아무리 귀찮게 굴어도 제자리에 있었으니까. 질척대도 껴안아도 내게 싫은 티 안 내고 가만히 그렇게 있곤 했으니까. 무심한듯 나에게 별 관심 없는듯 하면서도 뜬금없이 내 향수 냄새를 칭찬했던 어느 모임의 데면데면했던 사람처럼. 그런 건 남 몰래 흥분되는 일이다. 몸에 힘이 풀리며 고조되는 화한 느낌. ‘윤명조120’의 아름다움이란. 예뻤고 힘도 셌고. 도도하게 생긴 애들이 무리를 이루어 나에게 눈빛을 보낼 때 그게 너무 황홀하고 수치스러워서 계속 마주하고 싶었다. 걔네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 생김새 전부 내 스타일이었다. 그래, 난 사랑에 빠진 거야(원래는 안 그랬던가?).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나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게 어울리는 것들로 만족스러운 피팅을 끝냈다. 거울을 보고 빙 돌기도 했지. 우와, 내가 이럴 수가 있다니. 신기하다. 정말 신기해.
8주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던 게 끝이 난 순간 나는 무너졌다. 나는 관성에 중독된 사람이었고 그걸 스스로 만들고 복구하는 법을 몰랐다. 누가 강제로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뜨는 일이 며칠씩 반복되었다. 더는 이렇게 지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쓰레기 같았거든. 하루에 (폭식에 가까운) 한 끼 먹고, 밤에 커피 마시고, 그러니까 또 새벽 다섯 시에 자고, 열두 시간 퍼질러 자고.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을 밖에 나가다가 이제는 두 번을 겨우 나가면서도 버거웠다. 집중력 역시 현저히 저하되어 스크린타임까지 점점 늘어났다. 심지어는 책도 읽기 싫어졌다. 할 일 목록을 작성해도 거기에서 반절도 가위표를 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건 많고, 하기는 싫은, 따분하고 게으른 삶의 지하로 굴러가고 있었다. 허벅지에 힘 주고 한 번에 퍼뜩 일어나면 간단한 일이었는데 그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내 취미는 더 이상 샤워 시간이 아니었고, 대신 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고, 먹고, 눕고, 자고, 먹고, 눕고……. 양심은 남아 있어서 전자책이라도 가끔 읽었는데, 나는 그러다 한 책을 읽고 ‘작업실을 만들 결심’을 먹게 됐다.
《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를 읽고 그들이 미치게 부러웠다. 전업작가의 삶. 수입이 어떻게 됐든 그들은 각자의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패배했다. 내가 그들처럼 될 수는 없다. 이미 작가인 사람들과 나는 거리가 멀다. 아니, 공통된 지점이 없어. 적어도 극단에 있다고 믿고 싶었는데, 나는 그들과 같은 선의 좌표에 있긴 한가? 책의 소설가 한 명 한 명을 검색하며 침이 나왔다. 질투의 아밀라아제가 입속을 가득 채웠다. 그걸 이용해 먹기로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타인에 대한 질투의 방향을 나에게로 돌려, 행위의 동기를 강화하는 데 쓴다. 수단이다. 질투를 먹고 버린다. 완전히 쪽쪽 양념까지 빨아 먹는 거다. 뼈만 남길 정도로.
그들처럼 전업작가가 되어 자기만의 루틴을 가지고 글쓰기에 임하는 것을 상상했다. 눈이 아렸다. 달콤했다. 삼 일 만에 빈속에 연초를 피운 느낌. 온몸이 저릿하고 늘어지고 울렁거린다. 책의 저자들 역시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거겠지만…… 그래도 작가잖아? 등단을 하든 신인상을 타든 해서 집필 활동을 하고, 이 책 청탁도 받고. 솔직히 부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나 남몰래 신춘문예도 몇 번 내봤다. 젊은 나이에 신춘문예 수상한 나를 상상하며 수상소감을 뭐라고 할지 메모장에 몇 자 끄적여도 보고, 마땅한 프로필 사진이 없는데 어떤 사진을 제출해야 할지, 그런 설레발 많이 쳤었다.
작가 흉내 좀 내보겠다고, 일 좀 하자고 극단적이고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침대를 밖으로 빼자.’ 침대에서 책상까지의 거리는 이 미터 남짓이었는데, 그 몇 걸음 가는 게 왜 그리 힘들던지. 그래서 침대를 버렸다.
집에서의 내 동선과 생활반경, 패턴은 원래 대강 이랬다. 나는 방을 두 개를 쓰는데, 하나는 주로 생활하는 방1이었고 다른 하나는 넘쳐나는 옷과 책 들이 있는 방2였다. 그래서 방2는 선택적으로 필요할 때 짧게 방문하는 고요하고 (약간은) 지저분한 공간이었다. 나보다는 우리 고양이 까뮈가 더 잦게 들어가는 공간 정도(숨을 공간이 많고 어두워서 선호하는 듯하다). 외출을 하지 않고 잠만 자다가 눈을 비비며 릴스나 대강 보는 하루라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방1은 메인방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방과 비슷한 구조였다고 생각한다. 침대와 책상이 가까운 거리에 붙어 있고, 주로 생활하는 곳은 안타깝게도 침대였다는 것.
한때 미라클모닝을 실천하겠다고 아침 일찍부터 알람을 설정해 두고 여섯 시쯤 하루를 시작하려고 노력한 때가 있었는데, 그 이 미터 거리를 걸어가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던 건지. 다리 한쪽을 침대 밖으로 빼고 발을 딛는 그 일이 얼마나 품이 드는 일이었는지를 알았다. 조금만 누워 있다가 일어나야지, 하면 눈을 떴을 때 한 시간 반이 허탈하게 지나 있던 그런 미적지근하고 탄력 없는 생활을 했던 거다. 그런 날들이 모이니 낭비한 시간을 꼽아 보기가 무서워졌다. 각성, 했지만 그것도 잠시. 내 몸은 중력을 잘만 받았고 머리에 힘 주려고 해도 머리에 근육이 다 녹아 버렸더라.
작업실을 꾸리기로 다짐한 나는 침대 매트리스를 방1에서 방출했다. 방1을 작업실로 만들기로 했다. 침대 자리에는 책장과 일인용 소파가 대신할 것이었다. 책상이 벽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뒤로 돌았을 때 책이 분주히 꽂혀 있고, 잠시 쉬고 싶을 때에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다, 이 얼마나 섹슈얼한 자극인가? 책에 파묻힌 작업실이 생기면 작업 역시 잘 되겠지, 했다. 일단 앉기만 하면, 집중력을 잘 발휘하여 업무를 해내는 나니까. 일단 앉기만 하면, 그래 일단 앉기만 하면…….
몸을 90도(물리적인 90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누워 있는 상태에서 앉은 상태로 움직이면 신체는 실제로 90도가 돌아간다……)돌리기 위하여 침대를 추방한다는 강제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한 나는 대규모 이사의 핵심인 ‘책장 옮기기’를 해야만 했다. 약 사백 권에 달하는 단행본과 기타 자료들…… 막막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작업을 하자고 만든 이 공간에서 나는 지금 모바일 배틀그라운드를 한다. 게임은 정적인 일상을 보내는 내가 유일하게 숨이 딸려 헉헉대지 않고 마음껏 뛰고 총을 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방금 S와 통화를 하며 서로의 게임 취향을 나누었는데, S는 스타듀밸리와 같은 게임을 좋아한다고 했다. 무언가를 일구고 키워내는 게임. 시간을 고스란히 쏟아 작물을 키우고 재배하는 게 좋았다고 했다. 동물의 숲 역시 그렇다고. 그러고 나서 게임의 만렙을 찍으면 바로 그만둔다고(이게 진짜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나는 이게 시리즈물을 따라 보다가 마지막 편만 보지 않는 사람들의 습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D와 Y도 포켓몬이나 동물의 숲 같은 게임을 좋아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정성을 쏟아 레벨을 올리고, 더 큰 집을 갖고 더 좋은 조건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찬찬히 꾸준하게 투자하면서.
나는 이런 유의 게임을 하면 며칠 만에 질려 버린다. 꾸준히 접속해서 일구는 것 딱 질색이다. 동물의 숲을 예로 들면 며칠만 접속하지 않아도 잡초가 생기고, 못생긴 주민 이사 보내고 싶은데 눈치 없이 안 가면 짜증난다. 게임 중 유일하게 배틀그라운드를 하는 이유는 내가 어떤 아이템과 레벨, 피지컬을 사전에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낙하산을 타고 내가 원하는 곳에 내려, 맨몸에서 파밍을 시작한다. 사녹이라는 맵을 가장 선호하는데(배린이이기 때문이다), 부트캠프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에 가면 ‘여포’라고 해서 빨리 죽을 확률이 높다. 조금 오래 살아남으며 천천히 파밍을 하고 싶다면 파이난 같은 데에 내려 수월하게 템을 먹으며 자기장을 따라 점점 이동하면 되고, 여포를 즐기고 싶으면 부트캠프에 가면 된다.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파밍해야 하는 총도 다르다. 근접전을 해야 할 때는 우지랑 산탄총을 드는 게 좋은 것 같고(에임이 좋지 않다면 산탄총은 피해라. 그래서 나는 피하는 편이다), 무난하게 진행할 때엔 엠포 혹은 어그에 스크스 조합이 좋았다(나는 총들의 데미지나 특징 같은 거 잘 모르고 찾아 보지도 않는다. 단순하게 내가 이 조합을 들었을 때 킬수가 좋았어서 언급한 것이니 이대로 따라하지는 말도록. 더 좋은 총은 분명히 있다). 멀리서 헤드를 따고 싶을 때는 카구팔 등 저격총을 서브로 들지만 대부분의 경우 판에서 한 번 쏠까 말까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배린이니까.
온전히 내가 내 힘으로 파밍해서 피지컬을 만든다. 일회성이다. 얼마나 깔끔한가.
다른 게임은 잘 안 해서 모르지만, 적어도 배틀그라운드를 하면 사람들의 일상패턴을 무료로 공유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가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게 이벤트에 당첨되거나 무료나눔을 받는 것보다도 훨씬 달다. 그러나 책임이 따른다. 시간을 인내해야 할 때가 많다(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는 당연한 수순). 이것은 내게 스트레스를 잘 포장해서 선사한다. 가장 화나는 일은 이렇게 십 분 넘게 대기하여 게임을 시작했는데 1킬도 못하고 죽는 건데, 그럴 때마다 억울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지금 대기중인 이 판에서는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대략 오후 열 시에서 열두 시 사이는 접속자가 많아 스쿼드 기준으로 30초 내외로 매칭이 선사된다. 현재 오전 4시 26분. 8분 34초 째 매칭이 선사되지 않아, 이 게임의 이용자라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게임 대기실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새벽 네 시에는 대부분 잔다. 열두 시까지는 깨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즐긴다. 일단 침대를 방출했으니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일어나자마자 책상 앞에 앉지 않을까, 라는 바람을 가지고 작업실을 꾸렸다. 이제 내가 할 일. 책장을 정리하기. 내 루틴을 진하게 타기. 여튼, 나는 이제 할 일이 많다. 내 가역성을 믿으며 지난 가을로 돌아가려고. 관성 중독에서 벗어나서 내가 내 것 만들어 보려고. 귀여운 응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