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책장을 주문했다

by 지안김

옆방에 두던 책들을 작업실로 이사시키면서 큰 규모의 ‘책 정리’를 하게 되었다. 책을 하나하나 집어 들고는 그 겉면과 속 모두를 만지고 쓰다듬었다. 어디에 둘지, 어떤 방식으로 분류하여 배치할지, 혹은 과감히 버려야 할지 등을 고민하며 나는 많은 것과 마주쳤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반갑게 인사했지. 안녕, 이라는 말보다는 잘 지냈냐, 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반갑지도 안 반갑지도 않은 그 정도의 온도. 철저한 계산으로 정한 온도였다.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을 여러 번 배합하며 정한 적당한 온도. 무심하게 대하는 게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무얼 만날지 자꾸만 기대하게 되니까.

나는 기대를 잘하는 사람이었고 그게 좌절되었을 때 재빠르게 고꾸라졌다. “기대를 왜 하는 거야? 기대를 안 하면 실망할 것도 없을 텐데.” 간단하고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무언가를 더 해달라고 바라는 게 아니라,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거라 생각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가 받기로 한 것들을 기대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 정도는 당연한 거라고. 관계가 질겨질수록 나도 모르게 기대를 걸었고, 나에게 돌아올 것들을 애정의 척도를 표현하는 값이라고 생각했었지.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사람과 이 정도는 바랄 수 있는 거라고 안심하는 사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생기는 이해 불가한 영역들. 연인이든 친구든 특정한 관계에서 서운함이 생길 때, 그 서운함들은 대개 자기의 상식에서 벗어난 결과를 마주하는 순간 생긴다. 그중 대부분은 모든 관계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근데, 그것들은 도대체 누가 정한 거야? 그 통용된다는 상식은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연인 사이에서 자기 전에 사랑한다 이야기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일어났다고 보고하고, 밥을 먹을 시간에는 무엇을 잘 먹었는지 묻고 하는 것들은 누가 그러기로 정한 거야? 애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용건 없이 통화하지 않는 것. 당연해 보여도 누가 정한 건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것들을 규칙 지키듯 따르지. 이게 뭔 개론 강의 안 듣고 사 학년 수업부터 듣는 꼴이람. 이상하고 의아한데 일단 따라가야 하지. 이해한 척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고.


중학교 때 기타를 배웠다. 코드를 배우면서 나 기타에 소질 있는지도, 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F 코드를 잡게 되었을 때 내 손가락이 미워졌다. 짧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내 손가락은 삼 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것 같게 느껴졌다. 검지 손가락으로 줄 두 개를 누르고, 중지로 줄 하나를 누르는 것까지는 수월했다. 무척 쉽구만. 그걸 유지한 채 약지 손가락으로 (지금 기억으로는) 한참 위에 있는 줄을 눌러야 했는데 그게 도통 닿질 않았다. 애기 때 피아노를 배울 때 한 옥타브를 오고 가며 건반을 눌러야 하는 것보다도 어려웠다. 기타를 배운답시고 손톱도 짧게 잘랐는데. 무슨 노래를 연주할까 신나서 인터넷 검색창에 <기타로 치기 좋은 노래>를 검색하기도 했는데. 나, 그거 못하면 안 되는데. 친구들한테 기타 연주하는 거 보여주겠다고 자랑도 했는데.

몇 년 전에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발레 학원을 등록했다. 토슈즈와 스타킹을 구매하고, 레오타드와 샤스커트도 구매했다. 학원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도 있었지만 이왕 배우는 거 처음부터 예쁘고 좋다는 걸로 입고 싶었다. 삼 개월 꾸준히 배우면 나도 우아하고 가벼운 몸짓으로 노래에 맞춰 움직일 수 있을 줄 알았다. 첫날 쭈뼛쭈뼛 뒷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바를 잡고 움직일 줄 알았는데, 이런, 몸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스트레칭만 수업 시간의 반을 진행하더라. 나는 소리를 억지로 참았다. 이십 분 내내. 내 몸은 내가 알던 것보다 뻣뻣하고 딱딱해서 선생님이 시키는 동작을 절반도 수행할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으며 진지하게 환불을 고민했고 일단 다녀 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수업에 세 번밖에 더 안 갔다.

즐기는 것을 그때의 최고 가치로 삼았더라면 나는 꾸준히 배울 수 있었을까. 잘하고자 하는 욕심도 역시 나를 향한 기대였던 거고. 기대, 기대, 기대. 기대 없는 시작은 가능하기나 했을까?


늦게까지(꼭두새벽에 가까우니 이른 아침을 이용한다고 해야 오히려 설명이 잘 되는 걸까) 깨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오후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문장들을 쓰기 좋다는 이유가 크다. 내 카카오톡은 굉장히 조용한 편이고 하루에 카카오톡이 올 사람이 정해져 있다(놀라울 정도로 없다). 낮에는 다들 깨어 있으면서도 내게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으니 씁쓸한 고독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PC카톡 창을 들어가며 알림이 정말 오지 않은 게 맞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그 클릭 몇 번에 당연히 집중력은 티가 나지 않더라도 깨지게 되고, 내 작업 흐름에는 공백이 생긴다. 이 공백이 모이다 보면 내구성이 점점 떨어지는 거다. 그러다 보면 부러지는 거고.

맛있다고 유명한 초콜릿 중에 여러 개의 기포가 들어 있는 것이 있는데, 이걸 씹었을 때의 요상한 촉감과 소리에 놀랐었다. 아작, 우드득, 슥, 모두에도 속하지 않는 요상한 소리. ‘벅’에 가까웠던 것 같은 소리와 혀에 닿는 느낌이 생생하다. 이게 뭐가 맛있다는 건지, 초콜릿은 초콜릿 같아야지 이 가짜 초콜릿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하나를 다 먹었다. 그때 느낀 버석함은 초콜릿을 외롭고 연약해 보이게 만들었었다. 씹지 않고 혀로 느리게 녹이면 기포들은 사라지고 끈적한 액체로 변했다. 그렇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그런 기포 초콜릿보다는 딴딴해서 잘 부서지지 않는 초콜릿이 되고 싶은 걸까? 말하자면 허쉬스 판초콜릿 같은? 초콜릿이 제 기능을 못하고 나약하니까 불쌍해서 계속 입에 넣었었나?

이 시간에는 다들 자니까 내게 연락을 안 하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SNS를 확인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렇게 촘촘하지 않은 가벼운 공기의 고독한 시간에는, 나는 무엇이든지 쓸 수 있을 것 같다. 글자를 낳기 가장 좋은 시간. 아름다운 새벽 네 시. 춥지만 속은 뜨겁다는 착각을 하기 좋은 시간. 알코올을 억지로 삼켜 놓고는 그걸 내 열정이라고 억지 부리지. 착각을 내 작업의 동기로 눈 딱 감고 돌린다.


책을 가져와 부려 놓으니 책장의 공간이 한참이나 부족했다. 제대로 된 작업실을 꾸리기 위해서는 책장을 하나 더 살 수밖에 없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책장과 같은 모델을 사서 통일하고 싶었지만 원래 쓰던 책장은 더 이상 안 판단다. 어쩔 수 없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많고, 어릴 때의 나는 그 부당함에 힘쓰고는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무던해진다. 그러려니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내가 어쩌겠나 하는 생각. 이미 결정된 사항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욕심이 사라지는 걸까. 덜 예민해지는 걸까. 아니면 낭만을 잃어서 별것에도 기대하던 습성이 증발해 버린 것일까. 확실한 것은 몇 년 전의 나는 그런 사사로운 일에 에너지를 쏟았다. 파고들 정도로.


책은 습기에 약하다. 내 시간은 책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책을 망가뜨리기도 한 것 같다. 그렇다고 책을 보관하는 곳은 너무 건조해서도 안 된다. 아주 예민한 녀석. 무심코 걷어 뒀던 커튼은 책을 누렇게 변질시키기도 했다. 못생겨진 책들. 그래도 예뻐. 책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책은 예보 없는 비가 내릴 때 챙긴지도 몰랐던 가방에 든 우산 같은 것. 내가 아무리 귀찮게 해도 밤이면 그런 거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다가와 내 허벅지에 꾹꾹이를 하는 우리 고양이 같은 것.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 만에 연락해도 반갑게 맞아 주는 친구들 같은 것. 연달아 초록불을 만나는 귀갓길 같은 것. 그런데 사실 책이 더 좋아.


내 사랑이 가장 가닿는 건 뭐니뭐니해도 책이다. 책장을 주문한 게 올 때까지 내 책 얘기나 하련다. 책에는 돈 안 아끼는 내가 여태 사 모은 책들 얘기. 활자를 먹고 책이랑 자는 얘기. 책을 빌미로 꺼내고 싶은 얘기. 아무 얘기들을. 그러니까 나는 책장이 최대한 늦게 배송되기를 바란다. 살며시 오배송이 되기를 바란다. 반품을 하고 새로운 책장을 기다리고 싶다. 책들이 널브러진 이 상태로 오래 지내련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