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분다. 지금 내 앞에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이 딱 이렇다. 빗물과 바람이 포개어져 세상을 쓸어버릴 듯 날아다니는 비바람이 만든 은하수를 관망하며느낀 감정이다. 달리는 차 안, 유리문 밖에서 흔들리는와이퍼가애처로울 따름이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은 너무나 달랐다. 뭉개지는비를 보고 있자니 세상과나에 경계가 희미해짐을느낀다. 세상은 나에게 부딪히며 한 껏 흐려진다. 그런 흐림이 나에게 스며들며 무언가를 말해 주는 듯했다.
책을 보다 보니 누구는 그렇게 살라했다. 자신에 감정에 솔직하라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바닥에 치며 살 바에는, 당당하게표현하고, 차라리 미움받으며 살라고 말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이고 공감 가는 말이다. 남이 무례하게 구는데 착하게 살아야 할 필요 없고, 내가 아픈데 안 아픈 척할 필요는 없다. 자신에 윤곽과 선명도를 짙게하는 것은, 다른 이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자신에 생존법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에 윤곽을 그으며, 긋고, 또 긋고를 반복할 뿐이다. 자신에 선명도를 높이는 법만알았지, 흐리게 하는 법을 잊고 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살다 보니, 서로에 선명함이 중요한 만큼 흐릿함도 중요하더라. 거울이 너무 깨끗하고 선명하면 그간 보이지 않던 잡티가 보이게 마련이다. 잡티 하나쯤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머릿속을 점령하는 생각에 점유율은 뾰루지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거울을 보며, 손으로 만지곤 한다. 별것 아니라는 것을 오감으로부터 확인받고자 하는 것 것처럼 말이다. 오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래서 거울같이 선명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되도록이면 조심해야 한다. 자신은 솔직함이 무기인 양, 원래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는 컨셉을 필두로 여과 없이 뱉어낸다. 보이는 사람에 장점은 필터를 거치면서, 단점은 여과 없이 보여주는 거울은 세상에서 가장 못난 거울이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몇있고, 나를 비춰봐서 잘 안다. 때로는 마음이 아프거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은 선명함 보다는 흐린 거울이 좋다. 알아도 모른 척, 모르는 것은 꿈에도 모른척 해주는, 가만히 귀만 빌려주는 포근한 사람 말이다.
생각이란 것은 물, 불, 흙처럼 존재 자체가 진리이자, 원리이자, 결과이며, 현상인 것 같다. 생각에 근원이란 없다. 그 자체에 존재를 인정하고 고유에 습성을 그렇구나라는 주머니에 무심하게 넣으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남이 흘린생각에 부스러기를찾아하나하나 이어가며 생각에 근원을 찾기 바쁘다. 작은 행동 하나를 보고 큰 오해를 사기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하더라도, 그런 행동 자체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와 서로를 할퀴고 지나갈 뿐이다. 그렇게 생각은 자신에 틀 안에서, 그리고 자신에 선명함 안에서 더욱더 선명함으로 자라난다.
다른 이에 어떤 행동은 그럴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는 것
살다 보면 별일 다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
잘할 수도, 못 할 수도 있고
잘할 때도, 못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서로에 생각은 서로에 생각으로 흡수될 수 있고, 스치기만 해도 서로를 휘어 감을 수 있을 법한 폭신함은 전혀 실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나를 잠시 동안이라도 흐리게 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나를 내려놓기만 하면 가능한 일이다.
삶이라는 것은 시련에 파도타기가 아니다. 하나 둘, 해결하고 극복해 나간다고 해서, 인생을 극복에 대상쯤으로 생각하면 안 되더라. 인생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고, 수긍하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모순을 속속들이 다 이해할 수 없고, 해명할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흐릿하게 살고, 흐릿하게 볼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공기반 빗물 반인 밖을 보고 있자니 차에서 내리기가 싫어진다. 오늘 처음 입은 옷과 신발이지만 좀 젖으면 어떠하리, 아무리 큰 우산이 있어본들 이런 날 젖는다고 누구에게 하소연이나 해볼 수 있을까나?
적당한 선명함과 흐림은 우리 주변에도 항시 일어나는 일상이다. 우리네 날씨가 맑음과 흐림을 일상인 듯 반복하며 내어 놓는 것처럼말이다.
비가 먼지 나도록 오는 날 뭐든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을법한 기분이 들어 몇 자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