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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그리고 바람
Aug 13. 2022
얼마 전부터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올 한 해 휴가라는 쉼표를 잘 찍었음에도, 휴가 때 놓아버린 정신줄이 지금에서야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듯했다. 쉼표 뒤에 한 칸을 띄어야 했는데 한 줄을 넘겼으니 마침표라 봐도 무방 하겠지. 그래도 올해는 쉬는 것 하나만큼은 야무지게 쉬었다. 업데이트를 하면 재부팅 필요한 전자 기기처럼, 나에게도 쉼이라는 것이 필요했나 보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말이다.
휴가 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했지만, 생각이나 감정에는 관성이 존재하는 듯하다. 깊이 사유하지 않음에서 오는 얕은 감정이 쉼이라는 타성에 젖어 움직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일이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무슨 일을 해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 몰입을 하기 위한 곳, 즉 무한한 시공간에 진입에 장애가 생겼다. '억지로'라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우회 진입을 시도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내가 하고 있고 해야 함을 인지하는 순간, 모든 사유와 집중은 그곳으로 몰려든다. 반사신경처럼 처리되던 습관조차도 인지라는 과정을 거치는 순간, 자연스러움이 아닌 어쩔 수 없음이 되고, 결국에는 신경질적인 것으로 변해 버리더라. 멍석을 깔아주면 잘 못한다는 말은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다.
슬럼프는 이렇게 오나보다. 잘하는 것이 능력이던 습관이던, 자아 속에 각인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느끼는 순간 말이다. 그것을 잘하기 위해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더 침잠되는 능력과 결과는 지금껏 노력해온 과거를 부정하기도 한다.
누구는 말한다. 슬럼프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지나가는 것이라 한다면, 슬럼프가 가져온 방향 전환이, 상향이 아닌 하향에 효과에 익숙해진 것일 거다. 몸은 점점 열이 나고 아파지지만 해열제와, 진통제로 연명하며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을 익숙함으로 몰아넣는다면, 언젠가는 무너져 내린 몸과 마음에 상처는 회복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극복한다는 것은 다시 예전으로 가기 위한 열쇠를 찾는 행위다.
치열하게 살다 보면 열이 나기도 하고, 가슴도 찢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자아 분열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아픔이 밀려온다는 것을 힘주어 인지하면, 몸에 모든 감각은 그 아픈 통점으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운동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힘을 빼라는 말이 있다. 정말로 힘을 빼고 해파리처럼 하라는 것이 아니다. 힘이 필요한 곳에는 단련된 힘을 주고, 나머지 불필요한 곳에 힘을 빼라는 말인데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젓가락질을 전완근과 삼두근을 이용해 김치를 집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다시 예전처럼 자아에 본질에 맡겨 의식에 흐름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필요하다. 슬럼프는 마음에 근육이 찢어지는 것이다. 잘 극복하고 아물게 도와준 만큼 더 큰 근육으로 성장할 것이란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슬럼프라 생각하고, 마음의 근육이 무기력함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몰려오는 감정에 통점은 많은 신호를 보내지만 아무렇지 않으려 무단히 노력 중이다. 이런 상황을 찢어진 상황이라 의식하는 것조차도 극복하는 것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의식에 흐름에 맞게 하루를 시작해 보다 몇 자 생각나서 적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