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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그리고 바람
Aug 05. 2022
작년 한 해 어쩌다 번아웃이란 것이 찾아왔다. 당시 나는 머리를 땅에만 대면 잠을 잘 수 있는 특수한 능력에 소유자였다. 하지만 번아웃이란 불청객이 이것마저 앗아갔고, 처음 시달리는 불면증에 몸과 마음은 밑도 끝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왜 그랬나 싶다가도 그날에 악몽이 또 떠오를까 싶어, 살다 보니 별일 다 있다는 생각으로 황급히 덮어 버리곤 했다. 아직도 공기 속에 익사할 것 같은 그 기분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때 나는 독서를 만났다. 내가 담아온 삶 속에서 책이라고는 교과서 외에는 거의 전무했지만, 지인에 추천으로 종이에 그려진 낙서를 본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시작해봤다. 스마트폰 뉴스와 검색에 길들여진 나는 종이가 주는 글의 감성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냥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간 열심히 살아왔던 나에게 내려진 번아웃에 대한 병명에 보복 감정이라도 생긴 듯했다. 분노로 가득 찬 감정이 대상을 찾지 못하자 세상을 향한 소리 없는 울분은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독서를 통해 그간 몸안에 분해되지 않고 쌓였던 울분과 분노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는 점점 더 가벼워졌으며 짜증에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깊은 새벽 잠을 들지 못해 스마트폰이나 만지작 거리며 뜬눈으로 보내야 했던 억울한 날들이 무색할 정도로 숙면이란 것을 취해봤다. 남들처럼 잠들어서 남들처럼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나 싶었다. 지금껏 모르고 살았던 날들이 대한 부끄러움과 앎에 대한 기쁨이 교차되며 눈물이 나더라. 이후 계속된 조기 숙면에 오히려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 해야 할 것도 읽어야 할 것도 많은데 초저녁이란 시간에 잠이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후 독서란 것을 하다 보니 조금 요령이 붙었다. 글과 작가에도 호불호가 생기기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구절과 글들이 점점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더 독서가 가진 효능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독서가 삶에 일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글 자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간 독서를 통한 감정에 매무새를 만졌다면,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감정만 골라서 한편에 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라는 것을 쓰며, 몸과 마음에 좋다는 감정들을 만들어 보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는 잊는 방법을 연구해 봤다. 그리고 그 비법을 조금씩 기록해 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나처럼 힘들어할 그 누군가를 위해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독서는 내 삶에 글쓰기도 데려왔다. 삶을 읽기만 하면 심심하니 써보기도 하라고 추천해 줬나 보다. 살아보니 삶에 여백이 많다고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적당히 생각하고, 적당히 읽고, 적당히 쓰는 것이야 말고 삶에 빈 공간을 빡빡하게 채우는 나만에 비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유효하고 좋은 방법이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아침부터 책상에 앉아 뻘뻘 땀을 흘리며 글이란 것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허리가 아프도록 잠을 자고,
무더위에 눈을 뜨고 나니,
옛날 생각이 나길래 몇 자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