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아끼는 나.

일기처럼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오늘은 모처럼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해가 떠 있는 퇴근길이 어색하기만 하다.

"나도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될 수 있을까?"

라며 되지도 않는 상상이나 하며,

설레발 쳐봤다.


태풍이 한바탕 쓸고 가서 그런지,

오늘따라 하늘은 더 노랬고, 땅은 더 짙었다.

에어컨 바람이 나를 감싸지 않아도,

충분히 시원할 수 있음이 고마웠다.

차에서 정면으로 맞아 보는 바람은

나에게 손을 내밀라 했다.


보통날,

해가 있던 밝은 날에는

집에 있던 기억이 거의 없다.

뭘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날 찾는 전화가 올 것만 같다.

조용한 곳을 찾아 멍 때리는 본능은

아직도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듯 보였다.

해가 저물어 어둑해질 때까지,

나는 쉼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어둠이 깔리면,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것조차

실례가 되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제야 나는 마음을 놓는다.


그간 삶에 경계를 서며,

힘들었을 감정을 가지런히 놓아 본다.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예의로 포장했던 시간들.

내키지 않지만, 쪼잔함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무심한 척 몰아냈던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렇게 누르고 눌렀던 생각은

하나같이 점잖았다.

어디에 놓아도,

질서에 존엄을 외치는 그 무엇처럼.


쉼이라는 고요 속에

놓아버린 감정들을 헤아려 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미쳐 날뛰는 감정,

노룩으로 던져주는 생각은 잠도 없나 보다.


쉼을 너무 절약하는 내가 미웠다.

얼마나 일에 눌렸으면,

몸은 굳어가는데

생각은 저렇게나 촐랑거릴 수 있을까?


이젠,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아~

당장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너무나

정직하게 잘 돌아갈 테니깐.


하염없이 떨어지는 해를 보며,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이

그저 한심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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