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나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만큼 쓸려나가기도 했다. 얻은 것은 고통이요 잃는 것은 시간이었다. 뭘 해도 손해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쓰는 삶과 쓰지 않던 삶의 선명도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을 보면.
나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무료함이 나를 꿰뚫고 지나간다. 지나간 흔적을 따라 고통이 만져진다. 술도 먹어보고 여행도 다녀보고 수다도 떨어봤지만 결국 고꾸라지는 것은 나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힐링이란 약발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래, 모두에게 좋은 약이란 있을 수 없겠지. 아무리 비싸고 귀한 산삼도 누군가에게는 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수 있으니까.
나에게 글이란, 꽉 막힌 도로에 차선을 비집고 드는 버스에 씐 광고판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내어놓고 광고해도 눈에 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자의식으로 선택한 첫 갈림길이 떠오른다. 문과와 이과의 벽, 둘 사이의 이질감은 학급이 나뉘며 친구들과 멀어지는 거리만큼이나 크게 작용했다. 나는 이성에 대한 포용력 보다 감성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이과를 택했다. 나에게 숫자란 삶에 해결책이자 글의 도피처였다. 가위바위보에서 글이 주는 '보' 같은 느낌보다 숫자가 주는 예리한 '가위'같은 느낌이 좋았다.
글과 너무 멀어져 버린 탓일까? 아니면 정확하게 계량하며 살아도 비례하지 않는 결과에 질려버린 것일까. 예측 가능한 결과를 위해 경험 삼아 살아보겠다던 열망이 점점 옅어져 간다. 로또를 사고는 '억억' 거리는 당첨금만이 작금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몇 개 남지 않았다. 정답을 고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모두 오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숨통을 조여왔다. 이과생에게 남은 최후의 선택지인 글쓰기를 고르며 기도했다. '모두 오답이니 글쓰기가 답이게 해 주세요' 하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글을 써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글도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에 점점 의기소침해진다. 모든 선택지가 거의 오답이라는 사실에 실망하면서도 다음 정답을 찾지 않았다. 오답과 정답을 오가는 행위가 부질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이라도 찾아내 안심하고 있는 것일까?
글을 쓰다 보니 눈 밑에 고인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고통에 겨워 나오는 눈물이지만 아프기만 해서 흘리는 눈물은 아니었다. 글은 삶이었다. 일희일비 하며 사는 우리들 삶과 꼭 닮아 있었다.
글 쓰기의 효능에 대해 새로운 가설을 던져본다. 글은 선택지 간에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모두 정답임을 알려주려는 의도일까? 아니면 정답 없음이라는 선택지가 선명해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