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튜브로 김창옥 교수의 강연을 봤다.
평소 유튜브로는 써드림 첨삭소나 세바시, 프리한19 같은 콘텐츠를 즐겨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악마의 알고리즘이 김창옥 교수의 강연을 추천해 줬다. 동영상 썸네일에 그의 표정이 하도 리얼하고 생생해서 누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영상에는 어느 식당에서 중년 여자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는 장면이 나온다.
"언니 나 살 많이 쪘지?"
"딱 좋아~ 나이 먹고 살 없으면 안 돼, 샐러드 한번 가져와"
"언니 나 머리 잘랐는데 이상하지?"
"딱 좋아~ 완전 귀여워. 샐러드 한번 더 갔다 와"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가 오간다. 헤어질 때는 오늘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며 전화로 마저 이야기하자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화통화. 한참을 통화하고 나서야 전화로 할 말이 아니라며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자 한다. 그 할 말이라는 게 결국은
"언니 나 살 많이 쪘지?"였다.
방청객도 웃고 나도 웃었다.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사람도 보였다. 이야기 자체가 재치와 해학으로 가득 차 있다거나 그 상황 자체가 유희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어떤 점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지 궁금했다. 김창옥 교수의 말주변이 워낙 유쾌하고 뛰어나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그 솜씨에만 의존하는 웃음은 아니었다. 짧은 그의 이야기 속에는 일상이 있었고, 웃픈 현실이 있었으며, 나름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내용은 이렇다. 누구와 대화 하든 대화 자체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딱 좋아'라는 말 한마디에 담겨 있는 인정, 그 짧은 말 한마디가 우리에게 메말라 있다며 현 세태에 대한 진단을 내린다. 아울러 남에게 인정을 구하지 말고 자기 자신부터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상을 멈췄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그간 웃음에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금방이라도 처질 듯 씰룩였다. 웃음에도 관성이 있었던지 정색할 타이밍은 피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영상을 다 보고도 끝은 왠지 씁쓸했다. 지난 과거에 매몰되었던 후회가 다시금 떠올랐다. 지금은 그 아픔의 실체를 알기에 괜찮지만, 그때는 정말로 죽을 만큼 괴로웠다.
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만이 내 인생 최고의 과업이라 생각했다. 당장 직면한 일만 훌륭히 끝내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한 사람의 반열에 서있을 줄 알았다. 돈과 명예는 햄버거 세트를 시키면 응당 나오는 감자와 콜라 같은 존재 즈음으로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무리 일해도 삶이 더 나아진다거나 살림살이가 늘어나지 않았다. 동의하지도 않은 물가나 대출금 이자만 따박따박 늘어갈 뿐. 지금은 과도기라며 나를 더 많이 넣고 갈았지만 매번 새로운 벽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늘어가는 것은 한숨이요 먹어가는 것은 나이뿐이었다.
주변에 일 대충 하고 재테크나 자기 계발에 열심인 사람을 보면 화가 났다. 커서 뭐 될래 라는 심정으로 한심하게 그를 바라봤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직장생활은 개인사 보다 늘 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쌍팔년도 새마을 운동하던 시절 다 같이 잘살자 라는 문구가 어울릴 법한 마인드로 회사를 다녔다. 나는 회사에 헌신하며 살았다. 그런 노력이 아얘 빛을 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주변에서 인정이라는 부스러기를 조금씩 나눠 줬다. 열심히 한다는 말보다 잘한다는 말을 더 자주 들었다. 당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달달한 칭찬을 듣는 순간 촉발하는 호르몬의 전율을. 뇌에 배치된 뉴런이 새로운 목표를 향해 재정렬 하는 그 기분 말이다. 점차 나는 인정을 갈구하는 중독자가 되어갔다. 단지 좋다는 감각 하나만 믿고 내 사활을 걸었다. 그때까지 전혀 몰랐다. 당도 높은 칭찬이 내 몸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인정이라는 것은 처음 한번 받기가 어렵지 몇 번 받고 나면 계속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현실이 되고 나면 욕심에 눈이 먼다. 인정을 받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못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었다. 1등은 추월당할 일만 남았기에 항상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딱 내가 그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1등이란 말은 아니지만 자의식이라는 섬에 갇혀 자기가 최고인 양 생각하고 다닌 건 맞다. 주변에 다른 누군가를 칭찬하면 괜히 한번 더 눈길이 갔다. 좋은 면을 보겠다는 눈빛이 아니었다. 냉소나 조소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혼자 중얼였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자의식은 내 모든 생각과 의지를 눌렀다.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았고 밥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에 쫓기는 듯 심장은 마구 뛰었다. 급기야 누군가를 힐난하기 시작했다. 걱정과 추측도 계속하다 보면 현실과 분간을 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런 상황이었다.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 할 생각과 말들이 입 밖으로 나왔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다. 이후 상황은 불 보듯 뻔하게 전개되었다. 하루하루를 자괴감과 우울감에 젖어 살았다.
이후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글쓰기로 새로 일어났다. 누군가를 험담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나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나에 대한 인정의 시작이 되었다. 그때는 남의 이야기로 시작하면 꼭 나의 이야기로 끝이 났다. 쓰면 쓸수록 나의 그릇이 작았음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만 쓴다고 해서 이런 능력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만 볼 수 있는 글로 남을 험담하고 한탄만 할 거라면 데스노트에 불과할 뿐이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가진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쓰고, 있으면 있는 대로 쓰면 된다. 계속해서 쓰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부족한 점만 쓰고 있는 ‘나’와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부족함이 감춰야 할 부끄러움이 아닌 나다움으로 바뀌고, 그 말이 모여 글이 되고 그 글이 모여 내가 되었으면 했다. 우리는 육체가 아프면 병원을 가는데 거의 모든 의사가 살부터 빼라고 말한다. 글쓰기도 같은 수순 같다. 마음이 아프면 자기 인정과 이해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의식부터 빼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는 글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