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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an 01. 2022

일회용 감정이 있다면?

삶에 지쳐버린 당신에게 바칩니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요청이 간간히 생기는 것 같다. 듣는 것만 주로 한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정리되지 않은 상황들과 감정들만 나에게 쏟아내기 바빴고 상황을 정리하며 인터뷰를 하는 것은 나였다. 들어주랴 정리하랴 대답하랴 나도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가 편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과 함께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그렇게 감정의 조각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부모님의 말씀처럼 내 앞에 그 사람이 말하는 것만 봐도 행복했다. 내가 말이라도 할 때면 내 입속에 뭐가 있는 것 같다는 표정으로 다가오기까지 하며 몰입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냥 티키타카라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이대로 자리 깔고 밤새도록 파자마 파티라도 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항상 대화가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남의 험담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물론 특이한 상황에 놓였거나 너무 켜켜묵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경우라면 아무리 착했던 사람도 절제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절제조차 하지 않고 그 어떤 필터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듣고 있다 보면 나를 욕하는 것도, 나를 험담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이 나빠진다. 거의 머 감정 폭력이라는 말이 맞겠다 싶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대화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정말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더 반복되면 그냥 그 사람을 피하게 되더라.


한 번은 몇 번 쓰다가 버리게 되는 일회용 종이컵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무례한 사람을 부득이하게 또 만나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일회용 감정을 가지고 가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그냥 일회용 감정을 툭하고 꺼내서 그 사람 혼자 뭐라고 말하든 말든 깔때기 밑에 받쳐둔 체로 있고 싶었다. 내 진짜 감정은 품에 넣어 꺼내 주지 않은 체, 헤어지고 갈 때는 종이 감정만 "콱" 하고 구겨서 쓰레기 통에 버려버리고, 훌훌 잊은 채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혼자 웃음이 피식 나왔다.  정말로 개발되면 어쩌지?라고 내심 기대해 봤다.




내가 말을 잘 들어주는 이유는 네가 마음대로 구겨버린 감정을 버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고민하기 위함이며


듣기만 한다고 호구가 아니고 말만 한다고 해서 네가 뭐라도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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