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렇게 쓰지 않겠어요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감의 압박이란 걸 느꼈다. 마감이란 저자나 웹툰 작가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줄 알았다. 브런치북 응모 한다고 혼자 복닥거리며 쓰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다니. 코피까지 쏟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 하자 나쁘지만은 않은 듯하다. 이런 경험을 던져준 브런치에 감사하다.


한 달 전부터였던 거 같다. 브런치 메인에 11회 브런치북 응모 문구를 봤다. 하얗고 네모난 문구는 브런치를 들락일 때마다 보란 듯이 쫓아왔다. 난 이런 거 안 해 하면서도 내심 신경은 쓰였다. ‘나도?’ 하면서 작년 수상작을 돌아봤다. 날렵하고 세련되게 치고 나가는 글 투성이다. 한참을 돌아보며 도망갈 곳 없는 글의 촘촘함에 당황했다. 한숨 쉬었다. 나는 절대 안 되겠거니 했다.


'그래 글을 잘 쓴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느낌으로 풀어 나가는 참신함도 중요하지~' 혼자 이렇게 생각했다. 갑자기 심장이 김칫국을 마셨던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등단의 꿈도 이루고 500만원도 받아보나? 이러면서 혼자 킥킥대고 있었다. '비록 내가 글은 못쓰지만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말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지금까지 쓴 글은 대략 140여 개, 작가의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글까지 합치면 300개가 넘는다. 이중에 좋은 글만 엮어도 응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 글까지 모조리 꺼내 다시 읽었다. 나는 심사하는 사람이다 생각하고 빙의해서 읽었다. 내가 썼기에 소중한 내 글이 아닌, 남이 읽는듯한 기분으로 읽어보는 내 글은 정말 못남 그 자체였다. 글이 하나같이 힘이 없고 중언부언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며칠 전에 썼던 글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 이번 응모도 힘들겠거니 했다.


다시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추석연휴도 끼어있었다. 아들로서 사위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만 다하고 집으로 복귀했다. 이후에는 계속 글만 썼다. 글 1시간 쓰다 머리 아프면 책을 읽었고, 책 읽다 쓰고 싶으면 다시 글을 썼다. 밤에는 머리가 지끈거려 퇴고만 했다. 읽고 쓰는 시간 외에는 틈틈이 커피도 마셨다. 거의 자기 착취에 가깝게 나를 몰아갔다.


새로운 주제로 쓰기도 하고 그전에 썼던 글을 낱낱이 해체해서 다시 쓰기도 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나자 몸에 사달이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심장은 100m 달리기라도 하고 난 뒤처럼 마구 뛰었고 좌측 머리에는 커다란 편두통이 잡혔다. 무엇보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두운 곳 눈 감고 있어도 의식은 점점 맑아지기만 했다. 머릿속은 글, 퇴고, 글감,,, 이런 생각만 연거푸 뱉어 냈다. 이틀 동안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그전에도 이상징후는 있었다. 왼쪽 눈꺼풀이 수시로 떨렸다. 내가 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빨리 쓰고 치워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날부터 마감이라는 단어는 서서히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한 달 전부터 고대하던 연휴의 달콤함은 이미 쓰기의 고통으로 얼룩진채 8할이 지나있었다.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었다. 괜히 응모하려 했다며 그날의 결심을 후회했다.


불면증으로 시달린 지 셋째 날, 저녁 9시도 안 되어 잠자리에 누웠다. 3일 동안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암기력도 집중력도 바닥을 드러냈다. 숨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글도 쓸 수 없기는 마찬가지. 침대에 누웠지만 역시나 잠은 오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내 몸뚱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어찌어찌 뒤척이다 겨우 선잠 들었다. 딸아이는 무섭다는 이유로 안방 침대 옆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자는데, 꿈인지 모를 경계점에서 딸아이의 못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코를 골아서 잠을 못 자겠다고 했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제발 잠 좀 자자고, 너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며 소리를 꽥 질렀다. 3일간의 설움이 폭발했다. 딸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아빠의 찌질한 푸념을 모두 받아냈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아이의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면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내 이불가지만 챙겨 딸아이 방으로 가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후 기억은 나지 않았다. 정신을 잃었다가 맞을 정도.


다음날 출근 하면서도 어제 있었던 일이 계속 신경 쓰였다. 딸아이가 흘렸던 눈물이 내 눈에서도 고스란히 흐르는 벌을 받아야 했다. 글 쓰는 거 이게 머라고, 브런치든 응모든 다 집어치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행복해야 우리 가족 행복하다고 시작한 글쓰기 아닌가? 그 과정의 최전선에 있던 글이 오히려 가족과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니. 이대로 가면 글은 좀 쓴다 할지 몰라도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퇴근 시간 무렵, 나는 분침이 12에 오기도 전에 사무실을 나섰다.


딸아이를 가득 품에 안았다. 얼마나 세게 안았던지 딸아이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파서인지 아니면 어제의 아빠가 그저께의 아빠가 아니었음에 대한 안도의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날 딸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누가 더 미안한지 내기를 하는 듯 보일 정도였으니.


그날부터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당장은 쓰고 싶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 두드리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나는 소파에 누워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아이가 숙제하며 낑낑대는 모습도, 와이프가 요리하며 골몰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동안 거들더보지도 않던 티브이 프로그램도 챙겨 봤다.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사사로움에 깨고 싶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던 욕망을 빼내 따사로운 기운으로 채우는 듯했다.


삶의 고단함에 지쳐 울고 있을 때, 그때는 글쓰기가 희망이었다. 매일 쓰고 지우며 치유의 가려움을 느꼈다. 지금은 너무 긁었던 나머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 걸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의무를 씌우며 눈과 귀가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글 쓴다고 아파하고 고통에 허우적대던 것은 나였고, 시간 없다며 가족을 밀어냈던 것도 나였다. 내가 아닌 순간도 내가 없던 세상도 변한 건 없었다. 항상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나만 변했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한껏 소란 피우고 매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한결 개운했다.


그날은 온종일 가족과 함께 세상의 접점을 만끽하며 지냈다. 이게 바로 행복이지 이러면서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래 뭣이 중한디? 이것이 행복이지 하며 미소 지었다. 혼자 짊어지던 글의 무게를 내려놓자 숨통이 트이는 모양새다. 다시는 나와 가족을 잃으면서까지 쓰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어쩌면 이런 것도 글이주는 소중한 교훈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글로써 나를 만들어가는 여정의 첫발을 내디딘 걸지도.


그날 저녁은 침대에 눕자마자 잠드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리고 꿈속에서 글을 썼다. 한 사람의 기막히고 처절한 그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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