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글, 좋은 글

by 눈 비 그리고 바람

글을 만나기전 나에게는

못난 글과 좋은 글이 있었다.


못난 글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었다. 필자의 사유가 넘치고 나의 이해력과 지식이 마중 나가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글 말이다. 이런 글은 뇌에 공급되는 양분에 대한 소진을 요구했다. 읽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읽기 어려운 글은 못난 글이라며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며 읽지 않았다.


반면에 나에게 좋은 글은 가독성이 아니라 가성비 좋은 글이었다. 뇌가 최소한의 생각만 해도 그 뜻이 쏙쏙 들어오는 글이랄까. 채팅방에 도배되는 줄임말이나 이모티콘, SNS에서 유행하는 말, 클릭을 유도하는 뉴스의 제목 같은 글 말이다. 뇌는 그저 구경만 할 뿐이다. 한눈에 읽히는 단어들과 호흡이 그저 달달하기만 했다. 머리를 쓰지 않아도 생각이 전달될 수 있으니 이런 글이야 말로 최고의 글이라 생각했다.


이런 글만 접하다 보니 제대로 된 글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읽는다는 행위에서 정보를 받아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DIY용 가구 조립 설명서에 있는 글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꼭 직감만 믿고 조립하다 순서가 맞지 않아 다시 조립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맛봐야 했다. 읽고 또 읽으며 나의 생각과 비교도 해보고 입에 머금기도 하면 언젠가는 그 쓴맛도 단맛으로 변할 텐데, 당장의 떫은맛에 당황해 그저 뱉기만 할 뿐이다. 나는 이런 속 깊은 글을 멀리했고, 광고가 지뢰밭처럼 깔린 자극적인 글에만 반응했다.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든데 글이라도 쉬워야지 하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감이 찾아왔다. 누군가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줄 몰랐다. 단 몇 줄이면 될 것인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모티콘이나 날리고 헐 대박 과도 같은 말로 지금 나의 복잡한 심정을 퉁 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때 혼자 번뇌했다. 단 몇 줄도 혼자 쓰질 못하고 인터넷이나 뒤적이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취미에서가 아닌 생존을 위해 썼다. 위험한 순간에 “살려주세요”라고 외쳐야 하는데 그 방법을 잊을까 싶어 글을 썼다. 당장의 아픔조차 표현할 방도가 없는데 정작 구조 신호를 날려야 할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할까 두려워서다.


그때 글을 배우고 익히며 활자가 내 몸을 관통하는 과정을 버텼다. 나의 머릿속은 오만가지 글과 감각이 연결되어 뒤범벅이 되었다. 그 난잡함 속에서도 간간히 말이 되는 감정들이 늘어났다. 그런 말들은 다시 내 생각의 밑천이 되었고 또 다른 생각을 길어 올렸다. 닥치는 대로 글을 모았고, 모은 만큼 쓸 수도 있는 가짓수가 늘어났다. 복리로 늘어나는 활자의 선순환을 만끽했다.


지금 글 쓰고 있는 순간이 즐겁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지금 당신에게 못난 글과 좋은 글을 가늠하는 기준이 있느냐고. 그러면 처음 들어보는 물음이라며 골몰하다가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텐데.


예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못난 글이고 생각 없이 읽어도 의미가 넘어오는 글이 좋은 글이었어요. 지금은 기준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지금 나에게 있어 좋은 글은, 당장의 생각과 사유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글 같아요.

계속해서 읽어야 할 목적이 생기거든요. 지금과 같이 읽고 쓰기를 계속해야 언젠가는 그 뜻에 가닿을 수 있다고 채직질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런 글이 너무 좋습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목표 의식 이거든요.

그에 반해 못난 글은 과거 제가 썼던 글입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어요. 과거 내 글이 못났다는 말은 조금이라도 늦게 쓰는 글이 낫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만큼 앞으로 더 성장하겠다는 의지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지요.

비록 지금 쓰고 있는 글 또한 내일이 되면 못난 글이 되겠지만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면 하늘까지도 닿을 수 있을 것이고 하늘에 닿으면 그동안 대기권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도 끌어와 쓸 수 있을 테니깐요. 내가 복권을 꾸준히 사며 당첨의 꿈을 꾸는 것도 비슷한 이유 같습니다. 복권조차 사지 않는 사람에게 당첨이란 것은 사전적인 의미에서만 머무는 꿈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씁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글이 미래의 못난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득 품고 말이죠. 언젠가 못난 글을 더 이상 쓰지 못한다면 글쓰기가 재미없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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