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에서 턱걸이를 한다.
코어 근육 형성에도 좋고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다 해서 시작한 운동이다. 남들이 쉽게 하는 걸 보는 것과 내가 해보는 것에 대한 괴리감은 컸다. 90킬로에 육박하는 내 몸이 쉽게 떠오를 리 만무했다. 팔에 아무리 힘을 주어도 발바닥에 닿는 바닥의 감촉에는 변화가 없었다. 내 튼튼한 두 다리가 콘크리트에 박히기라도 한 것인지 그저 평온할 따름이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력으로 꾸준히 하다 보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일터. 나 또한 세상만사 모든 일이 그런 부지런함으로 유지되는 중이라 생각하는 노력 만능주의자 중 하나다. 태어날 때부터 순금으로 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도 않았고, 영재소리나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도 않았으니까. 무슨 일이든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에디슨을 떠올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천재라는 결정체는 순도 높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도 환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천재(성공)의 과정이 그가 말하는 천재의 성분과 그 결이 더 맞닿아 있었으니까. 그의 말대로 매일 그리고 꾸준히 하다 보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거리에 불 밝히는 전구처럼 내 머릿속 천재성도 밝혀줄 그런 날이 올 거라 믿었다.
턱걸이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꾸준함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언젠가는 내 턱에도 봉이 괴이는 날이 오겠지 했다. 당장은 막막했지만 막연하지만은 않았다. 고통스럽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의 통증은 아니었다. 이런 과정을 인내하며 계속 반복해 봤지만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2주째 되는 날 발바닥이 표면으로부터 2cm가량 뜨는 기적을 맛보긴 했지만 그 이상 진전은 없었다. 나는 이번에도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2cm 띄운 것만 해도 대단한 진척이라며 그간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자의식만 챙겼다.
턱걸이를 시작한 지 한 달 하고 보름이 지났다. 기다리던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이번 추석 연휴는 일주일이나 되었다. 개천절이 평일 너머로 기웃거리더니 임시공휴일과 손잡고 하나가 되었다. 나는 반에 반년동안 기다려온 보람이 있다며 온갖 종류의 게으름을 모으고 있었다. 그날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안 할 심상이었다. 먹고 자고 놀기만 했다. 3일이 지나자 하루도 빠짐없이 하던 면도도 밖에 나가야 할 때만 하는 옵션상품이 되었다. 1년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사람 같은 생활 패턴이 이어졌다. 아무리 살뜰히 살았어도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운동하던 습관은 이미 저 연휴 너머로 던져버린 지 오래.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된다며 당장의 연휴에만 만끽했다.
기대감으로 따지면 몇 달간 이어져야 할 것 같던 연휴가 끝이 났다. 연휴 반을 넘기던 날, 요란하게 떠들어대며 겁박하던 복귀날의 공포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났다. 공포 영화인줄 알았는데 막상 열어보니 지루한 흑백 무성영화 같았다. 일이라는게 십 년 넘게 하다 보니 관성이라도 생긴 것일까? 많이 쉬면 다시 못할 거 같아도 막상 하면 몸이 알아서 척척 잘 해냈다. 어쩌면 직장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복선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일상 복귀 후 다시 봉 앞에 섰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문틀에 달린 봉만 잡고 서 있기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힘차게 당겼다. 신기하게도 온몸을 누군가가 밀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팔이 90도 이상으로 접히며 온몸이 떠올랐다. 자신의 힘에 자기가 더 놀랐던지 잡고 있던 봉을 놓았다.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웃다가 사레까지 들려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 뿜어져 나왔다.
고개를 갸웃했다. 일주일은 아무런 생각 없이 놀았을 뿐이고 일말의 기대도 없었는데. 바지런함과 반대편으로 전력 질주 하였음에도 뜻밖의 수확이 당혹스럽다.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을 얻은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다시 봉을 잡고 힘차게 당겼지만 몸이 가볍긴 마찬가지. 그간 숨겨 놓았던 재능을 찾은 사람 마냥 괜히 어깨를 들썩였다. 매일 하지 않았지만 매일 하던 때 보다 더 잘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잘 쉬어서? 잘 먹어서? 기대를 안 해서?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본 적 있다. 근력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근섬유가 찢어질 정도의 고통과 그 고통이 잦아들 정도의 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순간 날렵한 생각이 머리를 뚫고 나가 종을 울렸다. 아무런 생각 없이 쉬는 것조차 꾸준함이 주는 호혜로움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아는 눈치다. 그간 나만 몰랐던 것이냐며 주변에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섣부른 확신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간 나는 매일이라는 꾸준함에 나를 떠밀었다. 중간에 쉬기라도 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이 계속 떠올랐다.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반대로 행동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헸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눈 질끈 감고 해 보고 안되면 그만두면 되는 것인데, 장남의 보수적인 습성 때문인지 아니면 삶의 요철을 극도로 경계하는 직진성 때문인지 시도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번 해보려 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늪에 발을 담가보는 기분이 들어 망설이게 된다. 쑥 하고 빠져 들어가는 발끝의 아찔함과 닿지 않는 바닥의 감촉에서 조바심만 커져갔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안 하느니 보다 못하다며 혼자 마음 졸이고 불안해했다. 그간 쌓아온 세월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사실보다 더 큰 패배감은 나에게 없었으니까.
그랬다. 나는 덩치 큰 겁쟁이었다. 실패할 확률이 두려워 쉬지 못하는 바보를 택했다. 책임감이 흐르는 강물 앞에 서서 물러서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는 삶만 반복하며 살았다. 그러다 쉴 타이밍을 놓친 듯했다. 몸과 마음에는 알레르기 같은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두통, 구토, 어지러움, 불면증, 두근거림으로 절여진 상태가 되면 강제로 쉴 수밖에 없다. 극한으로 늘어지는 몸을 추스르며 느꼈다. 지금껏 부지런히 살았어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게 부질없이 느껴졌다. 근력향상 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트라우마나 슬럼프 같은 부정적인 기운만 잔뜩 끼어 흉터만 늘어갔을 뿐이니까.
쉴 때 쉬고 할 때 하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글도, 일도, 턱걸이도, 모든 것들에게 행함과 쉼 사이에 어떤 성장 곡선이 자라고 있음을 다시금 상상해 본다. 뜻밖의 긴 연휴, 마침 계획 없이 맞이한 휴일이 참으로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