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약진이 매섭다.
네모난 검색창에 주제만 던져주면 그에 맞게 그림도 그려주고 작곡도 해준다. 심지어 글까지 써준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진화해도 글쓰기만큼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건만. 창작의 고통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아픔이라 생각했으니까.
얼마 전 인공지능을 시켜 글을 써봤다. Chat GPT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확인해 봤다. 우선 내 글을 몇 개 보여주고 소감을 물었다. 뜻밖에 칭찬이 이어졌다. 개인적인 생각을 사례를 통해 잘 풀어썼다나 머래나. 기분이 묘했다. 사람이 아닌 AI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게 좋아해야 할지 기분 나빠해야 할지 몰랐다. 무언가 주객이 전도된듯한 기분이랄까. AI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한 행동인데 처음부터 칭찬이라니. 네가 먼데 하면서도 구체적인 근거에 기반한 칭찬은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친김에 내 글 몇 개를 더 보여줬다. 그리고 물었다. 네가 나라면 어떻게 쓸 것인지 한번 써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참을 머뭇거렸다. 몇 초 뒤 어마 무시한 속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와 비슷한 문장으로 썼다. 어떻게든 비슷하게 써보려고 발버둥 치는 듯 보였다. 내가 자주 쓰는 단어나 전개법을 가져다 붙였다. 노력은 가상했지만 그 글은 내 글이 아니었다. 비슷하지도 않았다. 나를 사칭하고 다니는 원숭이를 보는듯한 느낌이랄까?
우선 재미가 없었다. 처음부터 결말을 염두에 두고 써서 그런지 너무 뻔한 전개가 이어졌다. 두괄식 문장, 명료한 문장, 단문 쓰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근거 대기 등 글에 좋다는 기법은 모두 동원한 듯 보였다. 무언가 허전했다. 빼곡하고 촘촘해 보여도 말할 수 없는 적막함이 밀려왔다. 이런 황량함과 삭막함을 AI가 전달하고자 한 거라면 분명 잘 쓴 글이겠지만, 우리 몸에는 좋을 리 없는 글임은 확실했다. 읽는 내내 회백색의 건물이 빼곡한 도심 사이를 아무 소리 없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나는 완벽한 글을 원하지 않는다. 비록 문장이 어색하고 오타가 있더라도 사람다운 문장에 더 끌렸다. 엄마는 필력이 뛰어나지도 유려하지도 않지만 아들을 위한 마음만으로 쓴 편지가 그렇게 나를 울렸던 것처럼 말이다. 필자의 마음이 간절하다면, 따스하다면 그 글에도 어떻게든 묻어나기 마련이다. 불완전하고, 흔들리면서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중심점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공감을 하고 삶의 희열을 간접적으로나마 맛본다.
지금 나도 내 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낮게 뜬다. 내 방에서 보면 거실에 커튼 사이로 해가 비집고 들어와 내 발가락을 간지럽힌다. 그저 따스하다. 내 앞에 놓인 아이스커피와 내 글이 촘촘히 박혀있는 모니터, 그리고 언제든 내 생각과 활자의 접점이 되어주는 키보드까지. 밖은 한없이 추운 바람으로 사람들의 옷을 여미게 만들지만 이곳은 한없이 포근한 것들로만 가득하다. 당장에 떠오르는 생각들 마저 따스함에 전염된 단어들 투성일 수밖에.
'글은 이런 거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AI가 아무리 글을 잘 쓰고 날렵한 솜씨를 뽐낸다 할지라도, 인간만이 표현하고 느낄 수 있는 그 따스하다는 기운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아니 영원히 눈치채지 못했으면 좋겠다. 과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요즘은 일상처럼 번져가는 세상이다. 언젠가는 AI도 이런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에 겨운 포근함을 표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진 않을 거다. 세상 만사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AI 너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네가 해라. 우리는 더 인간답고 서정적이고 기복이 심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인간성에 대해 더 공부하면 되는 거니까.
지구는 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역사 또한 되풀이된다.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자 아날로그가 사람의 감정을 건드렸고, 레트로, 복고풍을 유행시켰다. 분명 한쪽으로 힘이 가해지면 반발력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듯하다. 나는 오히려 AI의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글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디지털의 중력에 빠지지 않고, 인간 본연의 사유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언젠가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구분도 못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오면 노아의 방주처럼 글 쓰는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잘 간직해서 풀어줬으면 싶다.
글은 디지털 바다에 내리는 인간성의 마지막 닻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