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렵다던 쓰기도 여유가 조금씩 생기는 듯하다.
매일 한 단락씩 쓰고 잠들던 버릇이 이제 글 하나 뚝딱 써낼 수 있을 정도의 근력이 되었다. 쓰기 싫어도 매일매일 써야 하는 굴레 앞에서는 몸도 마음도 의지도 결국에는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듯 보였다.
나는 퇴근 후 저녁부터 글기운을 모은다. 어디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며 모으는 건 아니고.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뒤통수 그 어디쯤에서 글감작업을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겠지만 나도 잘 모르는 관성의 힘 같은 것이 작용하는 듯하다.
나는 저녁 9시 30분만 되면 책상 앞에 앉는다. 가족들도 이 시간만큼은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자 지금부터 글 쓴다고 하지 않아도, 키보드 뚝딱이는 소리가 들리면 어느 정도 그 창작의 사부작임을 인정해 줬다. 내 몸도 마찬가지. 이제부터 글 쓰는구나 하며 체념하는 듯 보였다. 깊은 한숨 소리가 방 넘어까지 들렸으니까.
정확하게 30분 정도 휘갈기고 닫아버린다. 다 쓰고 말고는 중요치 않다. 그냥 닫아버리는 것이 포인트다. 글감을 미리 생각하지 않거나 쓸 내용이 없으면 30분은 고통의 시간이 된다. 진실의 방으로 들어가 혼자 키보드와 눈치 게임을 해야 했으니까. 술 마시거나 손님이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밤 9시 30분만 되면 책상 앞에 앉았다. 이렇게 습관을 들인 것은 근래의 일이다. 대략 3개월쯤 되었을까? 그간 2년 넘게 써오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 몸과 의지가 글쓰기에 대해서 전폭적인 지지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힘들면 안 쓰고 쓰기 싫으면 핑계나 대며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게으름과 꾸준함 두진영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결과는 항상 게으름이 이겼다. 세월이 지나도 꾸준함은 힘을 키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냥 게으름에 모두 내어주고 드러눕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지금은 그 각오가 남다르다. 야근을 하든, 몸이 축나든, 아프던지 상관없이 그 시간만 되면 자리에 앉았다. 육체는 평소처럼 오만가지 핑계를 다 가져온다. 그때마다 나는 “응 그래 그럼 빨리 쓰고 쉬어” 이렇게 답했다. 이런 변화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이제는 핑계대기를 포기하는 눈치다.
몸은 쉬면서도 머리 한편은 복작거렸다. 생각은 그 작은 단칸방에서 혼자 글기운을 모았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특이한 감정이 있었는지를 검열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고 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생각에서 탁 걸리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복기하며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큰 사건의 덩어리로 나눈 다음 그에 맞는 단어를 찍어냈다. 신기하게도 여기서 만든 단어는 따로 메모장에 정리하지 않아도 9시 30분만 되면 차례로 생각났다. 단지 뇌사용 우선순위에 밀려나 있을 뿐. 어딘가 기다리고 외우며 혼자 읊조리고 있는 듯 보였다. 30분 동안 제대로 쓰지 못하거나 헛된 시간만 보낸다면 진실에 방이 얼마나 불편한지 자기가 더 잘 아는 듯 보였다.
이런 상황이 되면 쓰기 위한 생각의 재배치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써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그 효력을 알 수 있다. 무엇을 쓰던 훨씬 수월했다. 평소 같으면 30분이 지나도 한 문단 간강간당 했겠지만, 지금은 대화하는 속도로 주거니 받거니 활자가 뻗어간다. 물론 퇴고는 해야겠지. 내 필력이야 워낙 하향 평준화가 잘 되어 있어 많이 뜯어고치긴 해야겠지만, 그 감각에 첫 목격자로서의 묘사만큼은 훌륭히 잘 표현해 줬다.
고기에 불향을 입히면 그 감칠맛이 더해지듯, 글에도 첫 감정 그대로의 맛을 입히면 글향이 더 진하게 돈다. 천연덕스러우면서도 꾸덕꾸덕한 그 단어의 덩어리짐이 좋았다. 억지로 잘 쓰려고 하지 않았고, 못쓰지도 않은 딱 내가 쓸 수 있는 만큼의 글이라서 더 좋았다.
글맛에는 크게 두 가지 향이 있는 것 같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내려놓으며 사유의 촘촘함과 섬세함에 비추어지는 성채의 글을 쫓아가는 맛, 그리고 빨리 휘갈겨 쓰고 그 느낌의 뼈대위에 덩어리를 붙여가면서 형체의 움직임을 쫓아가는 맛, 나는 둘 다 마음에 든다. 쓰고 나서의 만족도는 전자가 훨씬 맛깔나고 좋다. 하지만 항상 비슷한 글을 쓰고 쓰기의 요철을 줄여나가는 데는 후자가 훨씬 좋았다. 매일 부담 없이 쓸 수 있고, 완벽한 글이 아니어도 되고, 그만큼 잘 써지기까지 하니까. 내 삶이 애초부터 완벽하지 않듯 앞으로의 삶도 완벽하지 않을 테니까.
30분 글쓰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내가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오롯이 내 두 손에 쥔 모래알을 한 번에 뿌린 후 헤아릴 수 있는 시간. 누군가에게 뺏기지 않고 나눠주지 않아도 될법한 딱 한 줌의 이야기는 30분 정도면 금방 만들어진다. 그 시간 안에 사유의 한 장면을 담지 못하면 글이 되지 못한다는 심정으로 써내려 간다.
단점 투성이인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지금 와서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 모든 단점을 한 가지 장점이 커버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순간 누가 잘리는지, 조명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다. 사진이 나오더라도 당장에는 새까만 네모만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복권을 긁는 사람처럼 큰 형체를 보고 그 안에서 찍혀있는 형상의 엉뚱함을 본다. 그리고 예측불허한 장면의 질감은 곧 그들의 기억을 추억으로 환원한다. 그 찰나의 순간이 주는 영원성, 그리고 손으로 만져지기까지 하는 빳빳함까지. 완벽에 가까운 디지털의 편의성이 되려 아날로그 감성의 향수를 상기시키는듯하다.
나는 이런 폴라로이드 같은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장면을 표현하는 방법이 어눌하더라도 한 순간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매 순간 글을 쓰며 완벽함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런 완벽함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못마땅한 글이 되어갔다. 그만큼 자신감도 잃었다. 많이 써야 글도 느는 것인데, 완벽함만 추구하다 보면 되려 글을 못쓰게 되는 딜레마에 빠졌다.
어쩌면 그런 완벽함에 대한 추종이 우리의 재능을 깎아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쓰자. 하루에 30분이든 10분이든 쓰다 보면 늘고, 늘어가다 보면 재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