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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Dec 17. 2023

꿈을 꾼다.

 꿈을 꿨다.

등줄기로 식은땀의 이탈이 느껴진다. 눈을 뜨나 마나 똑같은 어둠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꿈이었다. 꿈이라는 생각이 이렇게나 다행이었던 적이 있었나. 며칠 전부터 안 꾸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맛보는 꿈이라 그 기분은 좋기는 한데, 그 내용이 영 심상치 않다.


나는 분명 브레이크를 밟았다. 있는 힘껏 밟았지만 차는 멈추지 않았다. 곧 앞차와 박을 것 같았다. 심장이 쫄깃해지며 서늘한 기분이 계속된다.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차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나 혼자라는 사실이 사고 직전의 상황에서는 안도감이 들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그제야 마음 놓고 해 보겠다는 생각이 든다. 까짓 거 브레이크가 안 들면 문 열고 뛰어내리면 되지. 이렇게 마음먹는 순간 잠에서 깼다.


그렇게 한참을 브레이크만 밟다가 잠에서 깼다. 아 꿈이구나 하면서도 오른쪽 종아리에서 느껴지는 경직된 힘줄의 당김이 마냥 꿈은 아님을 말해 준다. 예사롭지 않은 꿈이다. 꿈에서 나는 무엇을 겪었고, 그곳에서의 깨달음을 어떻게 현실로 가져올지에 대한 염원이 느껴진다. 먹먹한 고요함과 어둠이 만나자 알 수 없는 속삭임이 들린다.


하루는 군대를 또 가야 하는 꿈을 꾸었다. 군대를 다녀온 지도 15년이 넘었는데 다시 군대를 가야 하다니. ‘나는 이미 갔다 왔어요’라고 세상에다 말하고 외치면 되는 일인데, 입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말해야 하는데 말 못 하는 기분은 브레이크를 밟아도 멈추지 않는 차를 타고 있는 것 보다도 더 답답했다. 결국 훈련소 입소를 했다. 군복을 받고 사복을 박스에 넣어 부모님께 보낼 주소를 적어야 했다. 내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생각의 윤곽이 이렇게나 고통스러웠다니. 그렇게 한숨만 쉬다 잠에서 깼다.


꿈을 꾼다 라는 행위 자체가 아직도 어색하다. 눈을 뜨고 현실의 감각을 느끼고 나서야 꿈인 줄 안다. 매번 속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꿈속에서는 이게 꿈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꿈에서 나는 매번 도망가거나 약자의 편에 서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이게 꿈이구나 하며 몽환 속 세상에서 만큼은 마음대로 살아 볼 법도 한데, 어쩌면 정말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성의 끊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은 사는 게 꿈같고, 꿈이 더 현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괴상한 헬멧을 쓰고 VR체험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 같다랄까? 아직 내가 깨지 못한 이유는 게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깰 생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설령 꿈에서 깬다 하더라도 화면 오른쪽 위에 있는 하트가 하나 줄면서 각성 상태로 새로운 현실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지 상상해 본다. 꿈에서 깬 다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요량이라면, 그냥 이대로 남은 게임을 즐기면 되지 않을까?


주변에 나의 이런 꿈 이야기를 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 꿈은 개꿈이라고. 아무리 거지 같은 기분으로 깬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로또를 사라 거나 좋은 일이 생길 거라 했다. 악몽의 이유와 처방을 몰랐기에 그냥 해보는 위안일지도. 나도 꿈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대답으로 일관했었으니까.


물론 꿈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허영일뿐이다. 생생하지만 기분 더러운 꿈을 꾸고 나면 현실에서 벌어질까 조바심을 느낀다. 단순히 개꿈이라며 로또를 사보라는 말은 그런 기운을 상쇄시키고 전화위복으로 삼으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나도 마찬가지다. 괜히 꿈에서의 트라우마를 현실에 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으니까. 로또가 되면 감사한 거고, 안되면 다음 더 최악의 꿈을 꾸었을 때 또 시도하면 되는 거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꿈이 아무리 별로라도 두렵지 않다.


요즘 들어 이런 꿈을 꾸는 이유가 궁금하다. 무엇이라도 해보려는데 전혀 말을 듣지 않는 몸뚱이. 아무것도 하지 못함과 안 함에서 오는 신체 변형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나에게 반복해 가며 보여 주는 이유가 궁금하다.


정말로 꿈은 개꿈인 걸까?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흥미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는 의심은 나도 감지하고 있던 터다. 더 하면 될 것인데 포기하지 말라고 어떤 존재가 나에게 주는 신호 같다. 아니 그냥 내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 태몽을 꾸는 것처럼, 곧 벌어질 성공을 위한 희망몽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꿈이 반대라면, 우리를 관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리고 노력이 반드시 배신하지 않는다면, 지금쯤은 무언가 좋은 일이 나타날 때도 된 것 같다. 꿈에서 그토록 시달리고 몸부림치던 결과가 현실에서 모두 이루어지려고 하는 전조증상이 아닐까?


잠에서 꿈을 꾼다는 말과,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해 꿈이 있다는 말에서 꿈은 전혀 다른 뜻이지만 같은 활자로 표현된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긴밀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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