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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Dec 31. 2023

마지막 시상식

 올해가 저물어 간다.

연말, 나에게 이 연말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단어를 연상케 한다. 술자리, 가족, 시상식, 귤, 이불과 같은 단어가 그것이다. 그중 가장 기분 좋은 것은, 이불속에 다리만 넣고 손톱밑이 노랗게 변하도록 귤 까먹으며 시상식 보는 거다. 어렸을 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시상식 보던 그때가 어지간히 좋았나 보다.


올해도 각 방송사마다 진행하는 시상식을 본다. 수상자들 소감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닮아있다. 상 받을 줄 몰랐다거나 자신에게 과분하다 한다. 과연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일까? 내심 기대는 했을 거 같다.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하지 못하면 그것만큼 아쉬운 상황은 없을 테니.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예상했든 하지 못했든 그 상황 자체는 그리 중요치 않은 것 같다. 단지 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만들어가는 행위 자체에 그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이전과 다른 시도라도 했으니 이렇게나마 상 받을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들만의 잔치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샘이 났다. 나도 저런 곳에 있으면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도 저들 못지않게 올해 열심히 살았는데. 상은 못 받더라도 후보에라도 오르면 안 되나? 만약에, 아주 만약에 로또의 확률로 상을 받을지 또 누가 알겠는가? 나도 상을 탄다면 그들처럼 상 받을 줄 몰랐다며 사전에 준비한 멘트를 더듬거리며 말할 자신이 있는데.


나도 내 나름의 명목으로 나에게 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인상, 인기상, 최우수상을 만들어 내가 한 행동을 축하해 보면 어떨까? 올해 나에게 있어 흥미로웠던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 후보를 보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브런치에 계속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거다. 나는 브런치에다 1주일에 1개씩은 꼭 쓰고 있다. 지금은 글 개수가 150개를 넘어가고 있는 상황. 그만큼 구독자도 늘었다. 작년 이맘때쯤 300명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2배 정도 늘어난 듯하다. 물론 구독자 숫자가 필력을 가늠하진 않는다. 그래도 내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이만큼 있다는 사실에 기분은 좋다.


그렇지만 구독자나 이웃들에게 볼 면목이 없다. 글이라도 재미있으면 오는 길 헛걸음치지 않을 텐데. 변변치 않은 글솜씨 때문에 속상했다. 늘어나는 구독자만큼 미안함이나 부담감만 커졌다. 글이라도 못쓰면 자주 찾아가 흔적이라도 남기든가. 이도 저도 아닌듯한 모습에 답답했다. 내 진심은 이게 아닌데. 어렸을 적부터 조짐이 보이던 낯가림이 글에서까지 나타나는 이유가 궁금하다.


글이라도 계속 써서 다행이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쓰기의 욕망에 감사하다. 분명 정복할 수 없는 대상임을 알면서도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려는 것 같다. 바위에 계란도 계속 치다 보면 바위가 깨어지지는 않겠지만, 개란이 단단해지는 순간이 오겠다 싶었다.


나는 글이 뿜어내는 묘한 중력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하다. 언제고 계속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열심히 써보라는 취지에서 글쓰기에 상을 주고 싶다. 내 앞에 불쑥 나타나 내 모든 것을 홀려버린 글쓰기. 신인상이 어떨까? 앞으로도 200개 300개가 넘도록 계속 썼으면 하는 마음이다. 언젠가는 내 마음속 대상이 되는 그날이 오겠지.


다음 후보는 내 집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나는 취업을 하자마자 이직과 결혼이 차례로 따라왔다. 그러면서 줄곧 기숙사나 월세, 임대 아파트에 살아야 했는데, 내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벽에 못하나 제대로 박지 못했다. 결혼 액자 하나 맘 놓고 걸지 못한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올해 드디어 내 이름으로 집을 샀다. 새집은 아니고, 10년 가까이된 헌 집이긴 하지만 내 이름으로 된 첫 집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내 집, 이 말 하나만으로도 소유욕 대부분이 해결되는듯한 포만감이 든다. 앞으로 모든 일이 다 잘될 것 같은 기분은 덤으로 따라온다.


보통 등기를 친다 하던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 것 같다. 내 이름으로 검색되는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 내 가슴을 북채로 치는 듯 벅차올랐으니까. 마음 가는 대로 리모델링도 했다. 싱크대도 바꾸고 바닥도 뜯어고쳤다. 심지어 벽에 못도 박았다. 자기 사는 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나 후련한 일이었다니.


드디어 이삿날. 살던 집의 애틋함이 나를 잡는다. 당장에 떠나고 싶지 않았다. 곧 추억이 될 빛바랜 기억 속 한 장면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눈치다. 시간을 끌고 끌었다. 7년 가까이 여기서 살았는데. 오만가지 사건사고로 쥐어터진 내 마음의 유일한 쉼터였는데. 정이 든 만큼 아쉬움도 컸다. 그렇지만 아쉬움도 잠시 뿐. 이삿짐과 함께 새집으로 가는 길, 내비게이션에 줄어드는 거리만큼 아쉬움은 설레움으로 바뀌어 갔다.


나는 내 집 장만을 올해 대상으로 주고 싶다. 삶의 만족감과 안정감, 두 마리 토끼를 잡아챈 장소랄까? 뭘 해도 더 행복할 것 같고, 잘 될 것 같은 예감은 기분 탓만은 아닌 듯했다. 삶이 가진 양면성 중 그 긍정의 힘에 더 쉽게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집을 바꾸고 나서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긴 했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마음가짐에서 시작된 긍정의 신호가 아닌 듯싶다.


이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다사다난하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꾸준히 살다 보니 요령이 생기는 것 같다. 불행한 일, 나빴던 기억도 따지고 보면 좋은 일이 있기 위한 전조 현상이 아닐까? 한 해의 길흉은 과거를 돌아보는 나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니까.


2023년이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 매년 겪지만 묘하기도 한 새해의 첫 일출을 앞두고 있다. 새집에 이사오던 기분처럼, 헌 것에 대한 죄책감이랑 반성은 모두 잊으련다. 새것은 아니지만, 당장은 새것처럼 보일 2024년을 위해. 그런 한해를 영접하기 위해 나만의 시상식을 열기에 딱 적당한 날인 듯하다.


오늘은 2023년, 나를 위한 마지막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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