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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그리고 바람
Feb 22. 2024
가끔 머리를 식힐 겸 브런치 메인을 둘러본다.
어떤 글이 많이 읽히고 다뤄지는지 보고, 이렇게 글 쓰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새로운 문물을 접하기도 한다. 손가락은 요리조리 바쁘지만 마음은 느긋하다. 내가 쓴 글이 아니니 뒷짐 지고 다니며 남의 살림살이를 흘겨보는 기분으로 본다. 사람 사는 모습과 욕망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
한 참 글 읽다 보니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회수가 많은 글 중에는 자극적인 주제가 많았다. 무심코 볼 때는 몰랐는데 의식하고 보니, 더 확신을 갖게 되더라.
이런 내용이 많았다.
이혼하는 과정,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쓴 글. 직장생활이 뭣 같았는데 퇴사를 해서 자유를 얻었다는 글. 시부모님과 있었던 내용을 평범하면서 재미있게 다룬 글. 얼핏 보면 특이함이 없는 이야기 같지만, 현실에서 좀처럼 겪기 어려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퇴사와 이혼, 시부모님과의 특이한 에피소드가 나에게는 그리 흔치 않았으니까.
물론 글을 기깔나게 잘 쓰는 작가가 마침 이런 주제로 글을 써서 그럴 수도 있겠지. 꼭 주제가 저런 내용이라서 많이 읽는 것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타인의 글을 봐서 그런 걸까? 정말로 그런 주제가 메인으로 장식된 경우가 많았다. 조회수도 높았다. 사람들이 많이 읽으니 더더 높은 메인으로 오랫동안 걸려 있는 듯했다.
혼자 중얼였다. 꼭 이런 아픔이나 특이한 지점이 있어야 잘 읽히는 글이 되는 걸까?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는 어째 수면 위로도 떠오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 세상 평이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 평범한 아빠와 남편, 그리고 직장인이 되었으니까. 무슨 이야기를 써도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이 될까 두려웠다. 소설이 아닌 이상 글은 나를 초월할 수 없는 거니까. 나 여기 있다고, 나 살아있다고, 나 이런 사람이라고 아무리 피 터지게 소리쳐도 보는 이의 시선은 다를 수 있겠다 싶다. 자신이 원하는 주제가 아니면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간주하고 그냥 넘겨버릴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니 어째 힘이 빠진다. 타자음 소리도 예전처럼 경쾌하지 못하다. 풀이 죽은 것이다. 아무리 써도 넘지 못하는 벽에 존재를 인지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있지도 않은 벽에 압도당한 것일까?
서커스단에 코끼리가 작은 쇠사슬에 묶인 채 통제당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새끼 때부터 당기면 전기가 통하는 쇠사슬에 묶인다고 했다. 그럼 새끼 코끼리가 도망가려 할 때마다 전기가 통하면서 고통이 따라온다. 그때부터 코끼리는 생각할 것이다. 도망은 곧 고통이라고. 이 때문에 성체가 되어서도 도망가지 못한다고 했다.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라 자유에 대한 정의를 쇠사슬 안으로 정의해 버린 결과다. 그냥 발길질 한 번에 끊기고 뽑혀버릴 쇠사슬임에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코끼리만 불쌍한 듯 보이는가? 우리도 마찬가지 삶을 살고 있다. 나처럼 이런 작은 생각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큰 수렁에 빠지고 만다. 누군가가 그거 아니야, 지지, 그러면 못써라고 말해줬으면 싶다. 지금은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 단지 자신의 감각과 판단에만 의존할 뿐이니까.
설령 내가 알아챈 사실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굳어버린 통념을 무시하고 자신의 갈 길을 가는 사람이 글 쓰는 사람의 본분 같다. 남들이 평범함으로 치부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사람 말이다. 오히려 너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고 비틀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그런 사람이 작가다. 나는 현실에 충실하지만 순응하지 않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 인플루언서나 베스트셀러 작가까지는 못되더라도. 딸아이를 둔 평범한 아빠이면서, 애증 같은 남편이고, 쳇바퀴 굴러가는 삶을 산다는 직장인이기도 하니까.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모두에게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지 모르니까.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정성스레 글 쓰는 사람이 작가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