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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Mar 31. 2024

두 마리 같은 한 마리

 글 쓰며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이란 자신에게만큼은 가장 친절해야 하는데. 나는 아무리 내 눈치를 보고 써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 결국 남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인지 묻는 중이다.


요즘 내 이야기 말고 타인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뭐 누군가의 자서전이나 이야기를 대신 쓰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 필력은 더더욱 되지 않는다.


고민 끝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다. 브런치처럼 자유롭게 글 쓰는 것은 같지만, 글이 유통되고 누군가에게 닿아 스미는 과정은 엄연히 달랐다. 처음에는 브런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오산이었다. 


블로그에다 시험 삼아 내 이야기를 썼다. 글 쓰며 알았던 사실이나, 살아오며 혼자 깨우친 이야기들을 담대하게 써 내려갔다. 글을 발행하면 누군가는 보겠지 했다. 처음 내가 브런치에 첫 글을 낼 때처럼 가슴은 떨려왔다. 별것 아닌 내 글에도 남들만큼은 아니지만 하트가 달릴 수 있다는 사실에 용기 내곤 했으니까.


블로그는 달랐다. 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했다. 심지어 조회수조차 계속 ‘0’을 유지 중이다. 글이 재미있고 없고, 유익하고 무익하고를 떠나 존재 자체를 무시당했다. 내가 뭐 유명한 사람도 아니니 당연할 결과라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했다.


며칠 뒤 블로그 알람이 울렸다. 내 글에 하트와 답글이 달렸단다. 맨발로 뛰어나가 봤더니 답방을 요구하는 글이었다. (블로그에서는 하트나 답글을 달아주면 자기 블로그에도 와서 똑같이 해달라고 노골적으로 요청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회수가 0인데 좋아요와 답글이 달렸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날 블로그를 접으려 했다. 이렇게 써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구한 날 써봐야 보는 이는 나 혼자 밖에 없을 것 같았다. 허무했다. 역시나 나는 브런치에다 내 이야기만 적어야 할 운명인가 했다.


블로그에 발을 들여놨는데 이왕이면 해봤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 좋은 웃음 짓고 다니며 하릴없이 다니는 것 같아 보여도, 난 깡다구는 있는 편이다. 홧김에 오기가 생기지 뭔가.


그날로 바로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전자책도 보고 너튜브도 보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블로그는 자본주의에 숨결이 깊게 닿아있었다. 인플루언서(블로그에 유명인)나 상위 블로거들의 글과 전개 방법을 철저하게 분석해 나열했다.


지금껏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작가의 글을 필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무엇이었다. 똑같은 글 같아 보여도 완전 다른 글이었다. 우선 글에는 내가 없어야 했다. 나의 의견은 사족일 뿐, 내가 필요한 순간은 단지 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지금 내가 어떤 상태다 정도일 뿐이었다. 실습 대상과도 같은 존재랄까?


자신의 좋음은 원고료와 제품을 제공한 거대 기업의 욕망에 좀 더 가까웠고. 깔끔하고 매력적이지만 과할 정도로 경직된 사진, 예쁘고 화려함 일색으로 범벅된 글, #뒤에 붙은 태그가 본문 한 문장만큼 길어져 어떻게든 검색되길 기다리는 글까지. 그 무엇도 어색하지 않은 게 없었다. 


헛구역질 나왔다. 블로그가 싫어서 그렇다는 게 아니었다. 글이 가진 본질을 뒤로한 채 남의 관심을 호객하는 행위를 나도 해야 한다는 말 같았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좋은 글이란 자고로 독자가 찾아서 읽어야 하는 것인데.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이런 때깔 좋은 화려함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브런치에서 온 나는 꼭 시골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서울 쥐의 자본주의 기질에 압도된 채 헉 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과연 이런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을 위한 이야기 쓰는 일이 자기 이야기 쓰는 것보다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1일 1 포스팅은 못하지만 1주일 2 포스팅을 꼭 지키고자 했다. 지금은 하루에 100명까지는 아니지만 70명 정도가 내 블로그를 찾아온다. 그것도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매일 비슷한 숫자로 비슷한 글을 찾아온다는 게 그저 신기하다. 재미도 조금씩 붙어가는 중이랄까?


뭐든 장단점이 있구나 싶다. 브런치는 브런치대로 감성이 있다. 시골길 낮은 담장 너머로 가지런하면서도 아무렇게 놓여있던 장독대와 똥개들의 무언가 갈구하는 눈빛을 마주하던 어렸을 적 감성 같다. 역시나 정겹다.


블로그는 딱 반대다. 도시적인 시크함과 화려함이 있지만, 사람들의 욕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 주려는 것 같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글은 도태된다고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나 같은 시골쥐에게 딱 필요한 교훈이다.


무엇이 맞고 다르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어떤 점이 더 좋고 덜 좋음의 취향만 존재할 뿐이지. 쓰기란 무엇인지 알려준 브런치에 고맙고, 쓰기는 이렇게 써야 한다고 알려준 블로그에 감사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지만, 두 마리 같은 한 마리는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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