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쓴다.
하루를 닫으며, 오늘의 닿음이 내일까지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활자 앞에는 진실만을 이야기하겠다는 다짐으로 거침없이 글을 쓴다.
한동안 내 말은 많이도 썼다. 이제 내 이야기 쓰는 일은 주민번호 외워 쓰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 그만큼 내 생각을 거울처럼 비춰 쓰기가 쉬워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이 가벼워졌다거나, 비슷한 생각만 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필력이 늘어 없던 말도 곧잘 지어낸다는 말은 더더욱 아닐 터. 단지 내 생각이 내 몸 안에서 촉발하고 변모하거나 사그라드는 과정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악착같음에 있다.
어렸을 적 콜라를 먹으며 콜라 빈병이 쌓이는 것을 흐뭇해한 적이 있다. 빈병을 팔아 다른 과자를 사 먹을 생각에 행복했던 것이다. 꼭 지금 나도 그런 생각이 내심 깔려있는 것 같다.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거나 새롭다는 감정을 쉬이 흘리지 못한다. 다음에 활자로 바꿔 먹을 생각에 혼자 미소 짓고 있었으니까.
내가 글을 바라보는 시선이 딱 이렇다. 사유의 발화가 콜라라면, 사유의 기억이 콜라병이다. 누구에게 빈병은 버려야 할 대상이겠지만, 나에게는 가치 있는 무엇도 될 수 있다. 소중한 내 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글 쓰는 사람 모두는 환경운동가들이다. 일회용 생각이란 없다. 그날 있었던 일을 그냥 버리는 일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 나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나아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말이다.
나는 지금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생각의 변덕을 의식 중이다. 글 쓰기 전과 글 쓰기 이후의 나를 비교한다면 분명 글 쓰고 있는 내가 더 피곤한 것은 맞다.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하는 쉼 속에서도, 블랙박스 영상 돌아가듯 어떤 저장과 분류 작업이 한창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이 더 힘들다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어차피 사는 것은 피곤한 일이니까.
피곤하더라도 빈병을 모아가는 사람과, 쌓이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클 것이다. 단지 하루 이틀 만에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 또한 안다. 빈병의 가치는 팔아본 사람만 아는 거니까.
어쩌면 나는 빈병을 모으기 위해 콜라를 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PS) 얼마 전 빈병을 분리수거하다 문득 옛날 추억이 떠올랐어요. 빈병 10개를 모아서 슈퍼에 가져가면 500원으로 바꿔주곤 했었거든요. 그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심지어 콜라를 먹는 달콤함 보다 더 좋았던 거 같아요. 제 손으로 모아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에 만족감이 컸나 봅니다.
바꿔먹은 돈은 꼭 저 혼자 다 사 먹었어요. 아마도 빈병 10병을 들고 가며 힘들었던 기억을 소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지금 제가 글 쓰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글 쓰며 힘들어도 어떻게든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병을 모아 과자를 바꿔 먹겠다는 행위 같았거든요. 글감 모으고 쓰기가 자연스러워진 요즘 딱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어떤 행위든 동기만 있다면 계속할 수 있게 되거든요.
이 글은 꼭 분리수거 같은 글이지만, 의식의 재활용을 촉구한다는 뜻에서 저에게는 나름 뜻깊은 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