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을 잘 쓰고 싶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가질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있거나, 허공에 손 휘젓는 것 같아도 움켜쥐었을 때 글이라는 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내 주장이 부족한 편이다. 좋은 생각이 있음에도 말발이란 게 없다는 생각에 주눅 들곤 했다. 말하다가도 상대의 눈치를 봤고, 무시당할까 싶어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좋은 의견이 많았음에도 소심함 앞에 묻혀버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소심함 때문에 내 앞길이 트이지 못했던 건 아닐까 라는 억울함이 들 정도.
글 쓰다 보면 생각이 잘 정리되고, 논리가 비약적으로 상승할 줄 알았다. 소위 엄마가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강조하던 똑 부러지는 사람이 될 줄 알았던 거다.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말 잘하는 사람이 결국 성공이라는 가도를 달리지 않을까 했다. 성공한 사람이 다 말을 잘하지는 못해도, 말을 잘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이상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주장이 확고하고 말을 잘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능력만 늘어갔다. 말 수도 전보다 더 적어졌다. 직장에서 회의할 때도, 여럿 모여 이야기를 할 때도, 사적인 술자리마저도 과묵을 즐겼다. 나는 내 말을 늘여 놓는 것보다 타인의 말을 듣고 혼자 감흥하기 바빴다.
나는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남들과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혼자 허공에 떠있었다. 모든 소리가 음소거된 상황 같아도 분명 말은 들려왔다. 허공에 뜬 기분이 이상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할 것 같았다. 예전에 말 못 하던 그때의 느낌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때는 자신이 없어 말을 못 했다면, 지금은 자신이 넘치지만 듣기가 더 재미있어 듣는다 랄까?
글을 쓰다 보니 표현하는 것도 늘었지만, 이야기를 내 몸 안에 들여놓는 감수성도 늘어난 것 같다. 마치 책을 읽으며 활자에 홀리듯, 남의 이야기에 반응하며 소리가 생각으로 다시 소리가 글로 치환되는 순간을 즐겼다. 소리, 생각, 글이 서로 순환하는 고리에서 어떤 희열을 본다. 외국어 3개를 동시에 깨우친 사람 같다.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글을 읽고 있었던 거다.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바꿔 읽고 있었다. 이야기에 감흥하며 내 생각을 덧붙였다. 그와 나의 생각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켜 전혀 새로운 사유를 촉발했다. 그 소중한 이야기를 김장독에 김치를 눌러 담듯 꾹꾹 눌러 담았다. 상대의 얼굴에다 눈빛으로, 상대의 처지에다 내 생각을 말이다. 넘쳐 나온 생각은 둘 곳이 없었다. 몇 마디씩 툭툭 말했다. 무심코 나온 말 같지만 진심을 담아 음성으로 토해냈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상담을 요청한다거나, 말을 거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상대가 나를 피하는 것도 아니다. 변한 것은 없다. 단지 내가 이야기를 다루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만 달라지고 있을 뿐.
나는 말이 많아진 것은 맞다. 그것도 똑 부러지게 말이다. 단지 그 방법이 소리냐 생각이냐의 차이일 뿐이지. 어쩌면 나는 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수다스러워진 것이 아닐까? 글 쓰며 생각 쓰기가 재미있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