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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pr 20. 2024

불행이 행복한 이유

 불행하고 싶다.

나는 감히 불행을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한 아름다움이라 말하고 싶다. 아니 아름다움이 맞다. 불행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풍요는 영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공짜만 따라다니다 머리털 다 빠진 빈털터리가 되었겠지.


얼마 전 허리 디스크가 터졌다. MRI를 찍었는데 4번 5번 사이 디스크가 터져, 폭포수처럼 아래로 흘러내렸다. 뭉툭한 연필심 같은 것이 신경 다발을 꾹 누르고 있었다. 왼쪽 엉덩이부터 허벅지 종아리, 엄지발가락까지 통증이 이어졌다. 고통의 최댓값이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려는 듯했다.


나는 그 대안으로 비수술 치료를 선택했다. 신경만 차단해서 통증을 감소시키는 주사를 맞았다. 치료라기보다는 그냥 통증이 있지만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 뿐이다. 사실 수술 말고는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난 그래도 고집을 부렸다. 이번만큼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단식을 시작했다. 안 하던 등운동, 엉덩이 운동도 했다.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모두 안 하던 것 투성이지만 앞서 느꼈던 고통의 최대치를 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필라테스 원장님이 내 몸을 이리저리 찔러보시곤 조심스럽게 말했다. 허리디스크가 문제가 아니라고, 이대로 계속 갔으면 목, 허리, 다리 어디 하나 성한 게 없을 거란다.


사태의 심각성을 잠자코 듣기만 했다. 과거 디스크 터지기 전에 겪었던 신체의 이상현상들이 다 피곤하면서 오는 순간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너 이대로 가면 다 터진다고, 더 늦으면 안 된다며 경고하는 비명소리였던 거다.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원장님은 나의 의지를 돋우기 위해 더 심해짐을 가정하며 이야기해 주셨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지금껏 이렇게 엉망으로 관리해 왔던 나를 나무라시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괜한 말로 지속적인 정기결재를 유도하려는 말보다 백 배 천 배 낫다고 생각했다.


그날 원장님의 구호에 맞춰 내 몸은 번뇌했다. 배와 허리 근육은 나라를 잃은 것 마냥 슬피 울었고, 있어야 하지만 없는 근육의 소중함을 느끼며 나도 덩달아 울었다. 집에 돌아와 삐거덕 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는 침대에 풀썩 누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렇다. 우리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나, 선생님의 말씀, 어른들의 말씀을 잔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골이 날 정도. 커서도 다를 게 없다. 체중을 빼라 자주 스트레칭해라, 금주해라와 같은 말은 그저 의사가 되면 어련히 덧붙이는 말 즈음으로 생각했던 거다.


아파보니 알겠다. 그 말이 가진 진실값을 말이다. 우리는 꼭 깨지고 터지고 아파봐야 정신을 차린다. 그전에는 아무리 좋은 책과 충고를 들어도 그저 잔소리하고 자기 자랑하는 말로 여기고 마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허리 디스크가 터진 시기와 고통은 감사함으로 채워진다. 실제로 너무 다행이다 생각했다.


지금 와서 책장에 하릴없이 들어차 있는 실패와 같은 제목의 책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빠르게 실패하기, 실패의 미학과도 같은 이야기들. 이제야 그들의 이야기에 눈이 가기 시작한다. 왜 빨리 실패해야 하는 것인지, 고생은 사서라도 하는 것인지를 말인지를 말이다.


나는 올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불행이 미리 닥쳐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년에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행복을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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