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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Mar 19. 2022

빛바랜 추억을 여는 열쇠, 비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얼마 만에 빗소리를  것인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사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비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무심코 떨어지며 툭툭 던지는 듯한 소리와 그에 걸맞은 적당히 깔리는 어둠이 좋다고 하는 게 맞겠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눈을 떴다. 어둡짙은 푸른 계열의 커튼 사이로 옅은 빛이 세어 들어왔다. 세어 들어오는 빛 사이로 잔잔한 빗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몇 장의 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빗소리는 둔탁하게 들리지만 그 나름에 매력이 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겠지만 오늘은 빗소리와 함께여서 그런지 기분 좋게 발가락 만을 이용해 경쾌하게 기듯 나갔다.


출근길 차 안, 이내 큰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빗소리가 굵어지며 비와 차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두두두둑” 방정맞지만 앙증맞기도 하다. 곧바로 나는 내가 학창 시절 자주 듣던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내리를 빗소리에 다른 세상에 접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 안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고, 내가 공유하는 소리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소리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핸들을 가볍게 쥐고 있는 손은 자신감이 넘쳤고 리듬을 타는 듯 손가락은 가벼웠다. 무심한 듯 들리는 빗소리는 구름 사이에 적당히 삐져나오는 빛과 함께 어우러져 음악 분수를 연상케 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배경으로 말이다.


어쩌면 여기가 천국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순간이 오면 어떤 생각을 해도 따스해진다. 어렸을 적 듣던 노래가 들려서 그런지 생각하는 수준이나 생각은 그때 그 시절을 머물렀다. 이럴 때만큼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영원히 말이다.




세월이 지나도 자신이 좋아하는 냄새, 멜로디, 촉감 등은 없어지지 않는다. 단지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을 뿐이다.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는 나이도 세월도 장사 없다. 추억이라 불리는 기억력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꼭꼭 숨은, 세월에 무뎌진 기억이라 할지라도 몇 가지 열쇠만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다. 비록 색이나 냄새는 이전과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이 세상 삶이 고되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이런 소중한 추억만큼은 고이 접어 눈에 잘 닿는 곳에 뒀으면 좋겠다. 세월이 지날수록, 삶이 힘들어질수록 더 자주 펴 볼 수 있게 말이다.


지금도 밖은 추적추적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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