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에는 똥 봉투 냄새가 난다

식사 중에는 읽지 마세요~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자 주말 푹 쉬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똥 봉투 잊지 마라”

“아~아~~ 똥 봉투, 우짜노”


반 아이들 모두가 아우성이다. 선생님도 그간 팽팽하게 유지하던 ‘근엄함’이라는 끈이 똥 봉투 앞에서 풀어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서로를 보고 멋쩍게 웃으며 어떡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그때만 해도 기생충이 있었던지 주기적인 채집을 요구했다. 지금 생각하면 강제로 모두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이 충격일 수밖에 없다. 그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날 선생님은 필름통처럼 생긴 동그란 통에 이름과 번호를 써붙여서 나눠주셨다. 심지어 통은 반투명한 색을 띠고 있었다. 아니 여기다 어떻게 똥을 담으라는 걸까? 처음 해보는 채집활동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선생님과 통을 번갈아 봤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똥을 어떻게 담으면 됩니까? 모두가 폭소를 터트렸지만 이내 선생님에게 시선을 모으고는 집중해서 듣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모두가 궁금해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부끄럼 속에 숨은 진심이랄까.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화장실 바닥에 신문지 깔고 똥을 싼 다음 이수시계나 나무젓가락으로 덜어오면 된다고. 푸하하~~ 난리가 났다. 남학생들은 그 좋아하는 더러움의 대명사꼴 출몰에 숨이 넘어가고 있었고, 여학생들은 온갖 싫은 표정을 갖다 붙이며 코를 막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짖꿎음이 최대치인 몇몇 남학생들은 스스로를 넘어 타인에게 그 유전자를 묻히고 있었다. 여학생에게 다가가 자기 것을 대신 담아주는 대신 햄버거를 달라며 협상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도 내심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평정심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똥이라니. 그것도 이 작은 용기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에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봉투를 꺼냈다. 하얀 봉투에 담긴 플라스틱 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간식을 챙겨 들어오셨다. 니 그거 먼데? 이거 똥 봉투. 여기다 똥을 우째 담는 건데? 이게 말이 되나? 엄마는 한참을 웃으시더니 의미 심장한 말을 했다. 이거 아직도 하는갑네. 내 학생 때도 자주 했었는데. 이걸 했다고? 그것도 자주? 엄마의 던지듯 날아든 고백은 진심이었다. 그때만 해도 인분으로 채소를 가꾸고 가축을 키우는 경우가 많아서 기생충이 그렇게 많았다고. 그래서 대변을 채집 후 기생충 의심이 있는 학생에게는 기생충 약을 배급해 줬다고 했다.


지금 처한 현실의 고충을 하소연하려 한 것뿐인데. 초등학생의 서글픈 푸념이 엄마의 더했던 경험담 덕분에 대수롭지 않음으로 격하되는 분위기다. 괜히 화가 났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며 꽥 소리를 질렀다. 방문을 꽝하고 닫고서 침대 위로 몸을 던지듯 누웠다. 천장이 하얀 네 모서리가 화장실에 펼쳐질 신문지처럼 보였다. 라디오를 켜자 마침 댄스가요가 흘러나오며 방정을 떨고 있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군가가 작금의 사태를 보며 비웃으려는 의도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날 저녁.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 말로는 아빠가 옛날 사람인 데다 선생님이라 이런 거는 전문가라 했다. 저녁 8시가 되자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빠는 어디서 반주를 걸치셨는지 외투에 담배냄새와 고기냄새를 잔뜩 묻혀 오셨다. 아빠가 옷을 벗기도 전에 흰 봉투를 흔들었다. 아빠 이거 봉투 어떻게 해요? 아빠는 픽 웃으시더니 당연하다는 듯 알려주셨다. 나무젓가락과 빨래집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였다. 코 막고, 젓가락으로 그거 집고. 정작 나에게 필요한 충고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대담함 한 스푼과 비위 두 스푼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용기가 필요했다.


저녁을 먹고 신호를 기다렸다. 곧 나올 때가 되었는데 눈치를 챈 것인지 그날따라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내심 기대는 했다. 혹시 나는 바닥에 응가만 하면 아빠가 대신해 줄지도 모른다는 착각 말이다. 평소에는 알아서 한다거나 사생활을 빌미로 엄마, 아빠의 그늘을 벗어날 궁리만 했었는데. 나의 기대는 말하기도 전에 땅에 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 낌새를 눈치채셨는지 부탁하기도 전에 먼저 선을 그었다. 결국 초등학생 인생 최대 위기가 닥쳐왔다. 자신의 응가 앞에 무릎 꿇는 상상을 했다. 혹시 학교에 가져가지 못하면 어떡할지에 대한 뒷일도 떠올렸다. 짓궂은 아이들의 제물이 될 것임이 분명했으므로 어떻게든 미션을 완료해야만 했다.


금요일은 마음속 들끓는 소리만으로 겨우 하루를 넘겼다. 그날 밤에 꿈을 꿨다. 내 손에는 어딜 가나 똥 묻은 젓가락이 쥐어져 있었다. 떨어지지도 않고 깨끗할 수도 없는 손 때문에 자는 내내 손을 씻고 또 씻었다. 당연히 잠은 대부분을 설쳐야 했다. 다음날 퀭한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엄마가 차려주신 미역국과 계란말이를 먹고 있는데 숟가락 내릴 틈도 없이 신호가 왔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미리 챙겨둔 젓가락과 신문, 통을 들고뛰면서, 스스로의 준비성에 감탄했다. 빨래집게도 도중에 생각났지만 이미 늦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이미 꿈속에서 상할 대로 상해버린 비위에 덕분에 면역이라도 생긴 것일까? 너무나 덤덤하게 거사를 치를 수 있었다. 마치 몇 번이고 연습했던 사람처럼,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월요일, 비장한 표정으로 봉투를 챙겼다. 스스로 했다는 생각 때문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혼자 피식 웃었다. 겨우 이걸 가지고 자랑이라고 하다니. 그날 검은 봉지에 꽁꽁 싸매어 두었던 봉투를 들고 학교에 갔다. 친구들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떠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봉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운을 내가 먼저 띄울까 고민도 했지만 겨우 참았다. 당시에 급박함과 나의 대담함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누군가는 할 수 없었으면 했고, 다른 누군가는 부모님이 해줬으면 했다. 스스로 극복한 힘듦에 대한 보상을 오롯이 나만 즐기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역시나 착각이 주는 희열만 짐작할 뿐, 현실은 전혀 달랐다. 아침 조례시간, 대부분 봉투를 가져왔다. 아무렇지 않게 툭하고 꺼내는 모습에 나마저도 조금 위축되는 기분이다. 그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와 용기의 순간은 ‘남들도 다 함’이라는 사실 속에 묻히고 말았다. 나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실 앞에 놓인 커다란 박스에 애증의 덩어리를 놓고 오는 것 밖에. 봉투를 건네고 돌아서는 아이들의 등짝이 왠지 모르게 지난주 보다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


때로는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아 보여도, 큰일을 치르고 나면 그만큼에 자신감과 의지가 붙게 마련이다. 아이에서 청소년, 그리고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란 게 이런 걸 말하는 것일까? 파충류가 변태를 거치고, 곤충은 탈피 과정을 거치면서 알게 모르게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같다. 부끄럽고 더러운 것을 내 손으로 마주하고 처리하는 과정. 어른들은 그것을 '위생 검사'라 불렀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일종의 '담력 훈련'이자 '성장통'이 아니었을까.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