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는 법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떡볶이 200원어치요”

“반반 나눠서 두 접시?”

학교 앞 문방구. 각진 가방을 메고 실내화 주머니를 든 아이들이 기웃거린다. 이수시개를 든 채 떡볶이를 사 먹거나 나눠먹기 바쁜 아이들.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오락기를 부술 듯 두드리는 아이들까지. 그야말로 방과 후 그냥 지나 칠 수 없는 참새방앗간 같은 문방구 앞 풍경이다.


오늘은 당번이었던 짝꿍과 함께 교문을 나섰다. 분리수거, 청소, 분필 털기, 우유 트레이 반납하고 나오던 터라 건조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후 2시가 넘어가는 오후. 학교 앞 거리는 한산했다. 짝꿍과 나는 가방끈에 손을 걸친 채 바닥만 보고 걷고 있었다. 둘 사이 정적이 신경 쓰일 때쯤, 학교 앞 담장을 지나 삼거리에 다다랐다. 문구점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나 1등”

“이야~~~”


누군가 뽑기 앞에서 일어선채 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몇몇 아이들이 일어설 타이밍을 놓친 채 고개만 돌려 그를 보고 있다. 보통 뽑기는 두꺼운 하드 보드지에 스테이플러가 찍혀있는 종이를 뜯어 당첨 번호를 확인하는데, 처음 전자식 뽑기가 도입된 터다. 전자식이라고 특별한 건 아니고 도깨비가 그려진 오락기 같은 곳에 동전을 넣고 기다리면 종이를 내뱉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구전으로 요령이 전해지는데, 그냥 동전만 넣고 기다리지 말고 도깨비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면 수십 장까지 나올 수 있다고. 분명 저 아이도 그런 비법을 잘 활용한 듯 보였다. 주렁주렁 엮인 종이를 목에 감고서 목이 터지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줌마 저 1등이에요”

“1등이면 RC카 한대”

“악”


‘RC카’라는 말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벌떡 일어났다. 숨 가쁘게 오두방정 떨던 당첨자의 비명에 놀란 듯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니도 잘 뽑던가”라는 식의 말을 던지자, 아이들은 본격적인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RC카를 건네받은 그는 곧장 어디론가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시샘의 눈길을 피해 집에서 승리를 만끽할 요량인듯했다. 나는 유치원생도 아니고 저런 걸 좋아하냐는 식의 말투로 비아냥대면서도 부러운 시선으로 그를 쫓았다. 곁에 있던 짝꿍도 떫은 표정으로 혀를 찼다.


1등이 휩쓸고 간 문방구에는 다시 한적함이 찾아왔다. 그때 짝꿍이 제안을 했다. “우리도 저거 뽑기 한번 해볼까?” 나도 평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주변은 항상 구경꾼들로 들끓고 있어서 망설이던 터였다. 마침 아이들도 없겠다, 도깨비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면 정말 많이 나올까라는 소문도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유치하지만 못 이긴다는 식에 표정을 지으며 “그래”라는 말을 한숨처럼 내뱉었다. 문방구 아주머니도 나의 망설임에 반기를 들었다. “좀 전에 누가 1등으로 RC카 받아갔어”


짝꿍이 먼저 벼인지 보리인지 모를 그림이 그려진 동전을 넣었다. 띠링~ 소리가 나며 도깨비 눈에서 불이 번득였다. 그도 지금이 처음인 양, 신기한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도깨비 다리에서 승차권 만한 종이가 하나씩 뽑히기 시작했다. 3장이 뽑히자 흥겨운 노래가 뚝 끊겼다. 그는 서둘러 종이 뒷면을 확인했다. 꽝 두 개 5등 한 장.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를 뜨면서도 5등이 있다는 사실에 눈빛은 반짝였다. 5등은 신호등 사탕. 그는 본전은 쳤다는 생각에 배시시 웃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도 보리 같은 동전을 던지듯 밀어 넣었다. 처음부터 도깨비 겨드랑이와 코, 머리, 뿔을 번갈아 가며 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이미 그 부위만 색이 바래 반들반들해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여기저기를 만지며 바삐 움직였다. 짝꿍은 무릎 위에 손을 얹은 채 나의 손놀림에 감탄하고 있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계속해서 종이가 나왔고, 아주머니는 불안한 듯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서른 장이 넘어가도 노래가 끊기지 않자 오히려 내가 불안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종이는 내 손길에 홀린 듯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어느새 바로 옆까지 다가와 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잠시 후, 소리가 끊겼다. ‘와, 다행이다’라며 키만큼 늘어진 종이 뭉치를 들어 올렸다.


총 서른다섯 장, 2등 한 개, 4등 두 개, 5등 다섯 개. 내 주변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영문도 모를 아이들로 가득했다. 짝꿍은 내가 단돈 50원으로 이 모든 걸 뽑았다며 대변인처럼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큭큭 웃으며 등수에 맞는 경품을 타러 갔다. 2등은 고무줄 동력 비행기, 4등은 자이로 팽이 세트, 5등은 역시 신호등 사탕. 나는 박스와 사탕을 한 아름 받아 들었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인싸가 된 것 같았다. 흥분이 가라앉자 우쭐한 마음이 드러났고, 겸손을 찾아내자 안정이 돌아왔다. 등뒤에서 ‘우와’ 하며 감탄을 뿜어내던 조무래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호등 사탕을 남김없이 모두 나눠주었다. 그들은 신기한 듯 나를 보았고, 나도 신기한 듯 그들을 보았다. 짝꿍에게도 팽이세트를 나눠 주었다. 혼자 다 들고 갈 수 없다는 말을 하며 손사래 치는 그에게 쥐어 줄 수 있었다. 사실 그가 없었다면 내가 뽑을 용기 또한 내지 못했을 테지.


“자동 오천 원이요”

나는 아주 가끔 로또를 산다. 50원짜리 동전 대신 5,000원짜리 지폐를 내밀어 본다. 여전히 내 마음속 어딘가에 살고 있을 도깨비의 겨드랑이가 떠오른다. 살살 간지럽히면 끝도 없이 나오던 종이에 희열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 서른다섯 장의 종이가 쏟아지던 그때의 ‘2등’이라는 기운이 끝이 아닐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판 도깨비는 아직도 반응이 없다.


그럼에도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는 건 왜일까. 아마도 나는 벼락같은 행운 자체를 원했다기보다, 사탕 몇 알을 나눠주며 세상을 다 가졌던 그때의 그 ‘마음’을 다시 재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1등 RC카가 아니면 어떠랴. 짝꿍과 나눠 먹던 사탕 한 알의 달콤함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그 50원의 여운이면 충분하니까. 때로는 우직하게 일해서 차츰차츰 쌓아 올린 곡식보다, 하늘에서 날벼락처럼 쏟아지는 쌀알에 더 큰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계획에 없던 행운이기에, 내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덤이었기에.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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