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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저항을 받아들이는 방법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2014, 카와세 나오미)

by chuchu

한국에서 14년에 소개되었던 영화이다.

부산 국제영화제.


카와세 나오미를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07년작 너를 보내는 숲(모가리의 숲) 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에 생기는 그리움과 죽음과 삶에 대한 관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게 되었다.


감독 소개나 뭐 바이오그래피는 이 글 읽으려 맘먹은 사람이면 알만치 알 것이니 생략.


한국에서는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원제는 두번째 창)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시기는 어쩜, 딱 지금 계절.


아마미는 가고시마(과거의 사츠마)에서 380킬로미터 떨어진 섬이다.

설탕 농장을 운영했었고, 과거엔 류쿠에, 개화기엔 사츠마에 착취당한 섬으로 더 널리 알려진 아마미.


오죽하면 섬 이름이 ‘아마미’(단맛)’ 이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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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풍경은 참 제주도를 닮아 있더라. 남방계 섬이라 그랬겠지…

붉은 히비스커스가 장면 장면 등장하는데, 계절감을 충만히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002.jpg (TMI : 히비스커스는 무궁화과. 열대 꽃으로 유명하고 말려서 차로도 마신다. 새콤!)

영화의 메인 테마인 바다색이랑 대비돼서 더 강렬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맹그로브가 자라고 있었던 해안가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남방계 바닷가 느낌을 줘서..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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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 도 내용은 보다 아름다운 풍경들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대체 저기 로케지는 어디인가. 항구마을이고 시골인데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영화 모두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소재로 하고 있네.


환상의 빛 에서는 외지에서 찾아온 여자가 자신이 가진 고통과 그리움을 견뎌내고 새로운 삶에 집중하기 위해 애쓰며 적응해 가는 모습으로 상실의 고통을 화면 밖으로 전하기 위해 애쓰는 고군분투가 느껴지는데 (저항)


두번째 창에서 그려지는 바다가 주는 느낌은 보다 거대하고,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을 표현하고 있어서 약간 달랐다. 종종 비치는 높은 파고의 파도들은 막을 수 없는 힘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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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창은 그리움과 수용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거대한 자연의 힘에 저항하지 않고 수용하며, 삶이 가지는 당연함(죽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항하고 싶지, 당연히.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남아 있는데, 그걸 두고 가벼이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근데 극 중에 쿄코 엄마는 이렇게 말하더라 ‘ 육지 사람들은 아프면서도 오래 살고 싶어 한다지?’ 자신의 죽음이 정해진 일이고,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게…


원주민이 가진 정신력의 근간 아닌가 싶더라. 가장 나약해진 순간에 가장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강함. 수용은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받아들임이라는.. 그런 느낌이 전혀 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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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창은 관광객들이 접근하기 쉬운 장소들보다, 섬 주민들의 삶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관광객 상대도 한다만,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말고. 뭐 이런 느낌.


아마미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으로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멀어서 뭐 그렇게 흔히 다녀가는 사람이 있지도 않다) 하도 외진 곳이고 관광객 조차 사실 잘 찾아오지 않는 곳이라 번잡하고 복잡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한가롭고, 사람이 없어서 심심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를 기대하지만 특별히 이벤트가 생기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만이 주민들을 감싸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은 죽어가고, 그리움과, 두려움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삶들이 있더라.


얼핏 보면 쿄코가 엄마를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통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 그리움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로 보이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런 일들을 겪어왔고, 그것을 수용하며 계속 살아왔던 거 아닌가… 이런 게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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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미의 매력은 것은 남방 열대가 가지는 풍경도 있지만, 섬의 향토민요(시마우타)들 또한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두 가지 노래를 소개했다.

007.jpg 자비센. 시마우타를 연주할 때 쓰는 악기. 뱀가죽으로 만든다.


쿄코의 엄마가 죽기 직전 듣고 싶어 했다던 "니쿤 냐카나" 라는 노래는 아마미 사투리였는데, 자막에는 한국어로 번역해서 ‘나를 두고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는 가사로 참 가슴 시리게 번역되어 있었다.


언뜻 들으면 섬에서 사는 사람이 방문자가 떠나는 걸 아쉬워하고, 그럼에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이해하면서도 애간장이 끓는 마음을 노랫말로 만든 게, 아마 섬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와, 육지로 떠나야 되는 남자 간의 실랑이를 노래로 만들었나 보다…. 했었는데


같이 보던 사람이 공무도하가랑 비슷한 노래 같다고 이야기해주는 통에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게. 공무도하가랑 비슷하네…. 떠나는 길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그 마음이 노랫말에 담겨 있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되는 장면은 쿄코 엄마의 사망장면이었다.


뭔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거부하고 싶은…. 이런 과정이 가장 극대화되는 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아닐까?


피하고 싶고 이야기하기 싫은 죽음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며 삶의 한 과정이라는 걸 담담히 담아내고 있었다. 노래도, 장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망자를 기쁘게 보내주기 위해 모인 마을 사람들이 그를 축복하고 잘 떠나라고 모두 모여서 노래를 불러주고, 춤을 춰 준다는 지점이.. 도시의 쓸쓸한 죽음과 다르구나.. 싶어서 부럽게도 느껴기도 했다.


숨이 멎을 듯, 말듯 하면서 미소 짓는 쿄코 엄마를 바라보는 쿄코 아빠의 미소가 붉은 눈시울로 변하던 모습, 그 뒤로 주민들이 더욱 흥을 돋우는 노래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마침내 숨이 멎은 쿄코 엄마의 눈가에 흐르던 눈물과, 그 곁을 지키던 큰 무녀님이 살짝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은… 정말 누군가를 보내본 사람이라면 ‘나도 이렇게 아끼는 사람을 이렇게 보내주고 싶었어’ 하면서 눈물을 뿌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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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인공인 카이토의 고향은 도쿄다. 카이토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로, 어머니와 함께 아마미에 살고 있는데, 어머니는 아마미 호텔에서 일을 하여 카이토를 양육하고 있다.


쿄코는 바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카이토는 바다를 싫어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건들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거였을까?


카이토의 엄마는 호텔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는데….

사춘기 소년의 눈에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과 몸을 섞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도쿄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 엄마랑 왜 헤어졌는지 물어보면서 나름의 답을 찾으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헤어졌다는 아빠의 답과, 엄마를 잘 보살펴 달라는 쪽지 하나를 얻고 돌아온 혼란스러운 카이토의 곁에는 섬에서 나고 자라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 쿄코가 있었다.


쿄코 엄마의 죽음 뒤로 태풍이 찾아온 아마미에 귀가하지 않는 엄마를 찾는 카이코는 쿄코를 만나 쿄코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죽음(거부할 수 없는 사건들)을 통해서도 내 가슴과 인생에 아사(쿄코 엄마)가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저항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수용이, 무기력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삶을 계속해 나가는 모습을 누가 나약하다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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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에 한번, 중반에 한번, 쿄코가 카이토를 원하는 장면이 묘사되지만, 카이토는 그것에 대해 저항했었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고 나서 쿄코를 받아들이고, 싫어하던 바닷속을 유영하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장면은…


파도로 표현되는 자연의 거대한 힘에 저항하는 것보다 그 속으로 뛰어들어 수용하면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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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느린 영화고, 대사도 많지 않다. 장면 장면이 천천히 전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곱씹어 보면서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는 영화. 참 좋다. 특히 풍경들이.


시기적으로 딱 태풍이 오기 직전의 여름의 끄트머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지금의 날씨와 너무나 비슷해서 더 강렬하게 다가온 영화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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