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지 않으니까, 복을 바라는 거지.
전통은 미신이랑 참 가까운 거리에 있고, 그런 미신들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세레모니랑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축제, 장례, 혼례, 이런 거 다…
사실 무슨 소용인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그런 행사를 만들고 삶에 기념일을 만드는 게, 어쩌면 기복신앙의 근간이었던 것 같다.
‘아로와나’라는 물고기를 봤다. 홍룡, 과배금룡…..
각각 설명은 이랬다.
기복신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선을 갖고 있었더라도, 이렇게 살아 숨 쉬는 기복신앙의 이콘(…)이 등장하면 마음이 동하게 마련이지.
많은 사람들이 바래마지 않는 상징을 전시해 놓은 건 어떤 정서를 유도하기 위함이 분명했을 거고, 과연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시더라. 나도 찍어왔다(...)
빨간 아로와나는 집안의 평안과 건강, 파란색 아로와나는 집안의 액운을 막는 부적 같은 역할, 노란 아로와나는 그 비늘 색깔처럼 집안의 부가 늘어나기를 기원하는 이콘(..)으로 쓰인다고 한다.
물고기야, 너는 아니. 이런 핑계로 너를 키우고 애정 했다는 걸.
기복신앙.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풍습이자 미신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집안에 하나쯤 걸려 있는 그림들도 어쩌면 이런 기복신앙에 기원한 것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수 인테리어, 라는 개념이 있다. 집안에 복을 불러올 수 있도록 하고, 복이 나가지 않도록 지키는 인테리어를 말한다고 하는데…
이는 민화에 근거하고 있는 부분이 참 많다.
예전엔 그림이 참 귀한 선물이었고, 주고받는 선물에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는데, 그러한 흔적이 그림에 남아 있다.
모란은 널리 알려진 대로 부유함을 상징하고..
원앙과 물고기 한쌍은 부부의 해로 와 금실,
매는 벽사.
고양이는 70세 노인,
나비는 80세 노인,
갈대와 기러기는 노후의 안락,
오리와 백로는 시험에 한 번에 합격해라,
기타 등등 뭐 무수한 민화에는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풍류가 많이 녹아들어 있다.
이렇게 사대부들이 그림을 주고받으며 좋은 의미를 전하고 관계를 다지던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가..
시대가 변하고 보통사람들도 집안에 좋은 의미를 담은 그림을 걸어놓기를 원했다. 당연하지 않냐. 내 새끼 잘되는 거, 웃어른 건강히 오래 사시는 거, 부유한 거, 화목한 거… 사대부만이 아니라 보통 백성들도 비슷한 것을 바랐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개화기를 거쳐 근대화 이후 이런 마음들은 풍수 인테리어 액자 같은 거로 변해서 남아있게 되었는데,
좋은 기운을 전해 서로의 관계가 오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선물로 민화를 주고받았던 풍류랑은 좀 다르게… 다양한 민간 신앙들의 결합 + 색채 심리학, 같은 게 섞인 오묘한 카테고리의 기복신앙이 되었더라.
방위를 맞추고, 색상을 맞추고, 특정 그림의 효과와 효능을 계산하고…. 막연히 ‘좋다’가 아니라 목적성 (집안의 부흥과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참 한국적이지 않나?
즐기자고 하는 농장 껨도 최고의 가성비를 위해 한 톨의 낭비도 없는 설계를 하는 한국인의 특징은 어느 한순간 터득된 게 아니라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된 전통의 발현이다(….)
십자수 키트를 대학병원 매점에서 봤다는 글을 읽었다.
병원의 투병생활은 참 지루하고, 손에 잡을 무엇인가가 꼭 필요하다.
몰입할 수 있는 것이 그만큼 간절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투병생활 중 고통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는 대체물로 십자수가 추천되는가 보다.
그래서.. 환자들도 십자수 많이 하겠구나… 싶은 마음에 관련 쇼핑몰을 뒤져봤다. 십자수를 놓을 마음을 먹었을 때, 이것을 구매해야겠다, 하는데 가장 큰 결정을 끼치는 것은 "도안"이라고 불리는 밑그림이다.
그 도안들에서도 현대의 기복신앙이 보였다.
결혼은 선택이라고 하지만, 십자수 쇼핑몰에서 흔히 보였던 건 행복한 결혼을 상징화 한 일러스트들, 과거 민화에 근거한 것으로 유추되는 복을 불러오는 그림들을 현대적 공예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도안들이 많았다.
아마 환자라면 회복과 관계된 의미를 담은 도안을 골랐으려나? 뭐 이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애틋한 느낌이 드는 도안이 참 많았다. 막연하게 예뻐 보이는 풍경과 거리를 도안으로 만들어 놓은걸 보면서도 지금은 직접 가 볼 수 없지만,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고,
"행복함"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옛날 민화들을 주고받던 전통이 공예의 형태로 남아 전승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에게는 행복을 바라고 기원하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닐 것 같다. 지금 행복한데 그걸 바라고 열망할 이유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라 안정과 안녕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불안, 공포라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행복의 근간은 불행이라고 했다. 가장 행복을 느끼기 쉬운 상태는 불행할 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불행하다는 것은 앞으로 행복해질 일밖에 안 남았다.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걸 고려해보면..
기복신앙에 간절히 기대는 그 마음은 행복을 붙잡아두고 싶은 공포와 불안의 현현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간절히 뭔가를 갈구한다는 건 적어도 “지금 행복하지 않다” 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는 지표가 아니겠냐는 말이야.
지금 행복해야지, 행복을 기대하거나 바라지 말자.
기복신앙을 통해 행복을 기원하는 건, 지금 내가 힘들다는 걸 세간에 드러내는 거밖에 안돼.
지금. 최선을 다해 지금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