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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의 임종

포스트 모르템 포토그래피(Post-mortem photography)

by chuchu


모네와 까미유

끌로드 모네는 자연의 빛을 표현하는 것에 능했던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림이나 예술에 문외한이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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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연작. 이거 말고도 뭐 엄청 많다

이걸로 모네란 이름을 한번쯤은 스쳐가며 들어봤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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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을 든 여인이란 그림으로 알려진 이 그림도 스쳐 지나가며 본 사람 참 많을 것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모네의 모델이자, 아내였던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와 그의 아들 잔이다. 빛을 묘사하는 방식에 탁월했던 모네의 그림 중, 이 작품은 당시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에 집중했던 그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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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동시외는 모네의 모델이었던 여인으로, 상인 집안의 딸로 태어나 10대 때부터 미술가들의 모델일을 했다고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평탄하게 흘러가지 않았고.. 카미유가 임신 중임에도 모네의 가족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네와 카미유는 결혼을 했다.

1280px-Claude_Monet-Madame_Monet_en_costume_japonais.jpg 일본의상을 입은 카미유

그리고... 카미유는 모네의 모델이 되어 다양한 그림에 등장한다.

저 우산을 든 여인은 아마도 모네의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묘사한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네의 그림에 모델이었던 카미유는 둘째를 임신하고, 그를 낳은 뒤 골반염(혹은 결핵)으로 추정되는 병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모네가 판 그림들 대부분은 카미유의 병원비를 벌기 위한 목적에서 그려진 것들이었다고 한다.

PixelSnap 2020-07-17 at 14.06.56.png 까미유의 임종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그저 초췌해 보이는 사람이 눈을 감고 있을 뿐인 이 그림은

사망한 사람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사람은 유명한 화가라는 '클로드 모네'


시체를 앞에 두고, 그를 그림으로 그리는 시간 동안 작가가 어떤 마음이었을지가 참 궁금했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갓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했었고, 가까운 이의 사망을 경험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죽고 나면 시신으로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작가는 침대에 누워 사망한 아내를 화폭에 담았다.


무섭지는 않았을까? 했던 마음이 가만히 그림 보고 있노라니, 얼마나 아끼던 사람이었으면, 죽은 이의 모습을 남기려고 했을까. 그림을 그리려면 자꾸 대상을 바라보고, 확인하고 화폭에 담는 작업을 해야 되는데, 사랑했던 사람과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 화폭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그림으로 옮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네는 빛을 잘 그리던 화가였는데, 저 까미유의 임종에 드리운 빛은 보라색이다.

햇살을 자연스럽게 묘사했다고 보이진 않았다. 그저 죽은 이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는 화가의 마음이 담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아팠다.

카미유의 표정은 평온해 보인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 고통은 결코 저 표정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에 이르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평온한 표정을 짓게 된 아내를 화폭에 담으면서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한편으론 망인이 생전에 많은 사랑을 받았겠구나.. 하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죽은 이를 그려서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품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포스트 모르템 포토그래피

(Post-mortem photography)

포스트모르템 포토그래피는 죽은 사람의 사진을 기념하여 촬영하는 사진을 말한다.

얼핏 들으면 섬뜩하게도 느껴지고.... 죽은 사람의 사진을 왜 찍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Post-mortem_photograph_of_young_child_with_flowers.jpg 꽃과 함께 죽은 아이 (위키피디아)

모네처럼 아끼던 사람을 먼저 보내게 된 가족들의 아쉬운 마음이 저 사진들에서도 보였다.

단연 이 포스트모르템 포토그래피의 주인공이 된 대상은 아이들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어떻게든 그를 기억하며, 그가 살았어야 할 삶의 기간 동안 자신이 그를 기억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싶어 했을 부모의 마음이 보였다.


사후사진은 말 그대로 아끼는 이가 사망할 경우에 촬영하는데, 사후강직이 일어나기 전 시신을 사진관으로 옮겨 자연스러운 포즈를 만든 다음 사진을 찍었다. 망인만을 촬영하기도 하는데, 망인과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가족들은 그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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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과 함께 촬영하는 사진이다 보니 섬뜩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남기고 싶어 했을 가족들의 마음이 어떤 건지 헤아려 보면, 사진 뒤로 슬픔이 자리해 있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옛날 초상화는 귀족 신분이나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 사진술이 발달하며 초상화 비용의 1/10이면 사진으로 기념하고 싶은 순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중산층이 그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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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은 움직이지 않아 매우 선명하게 찍혔지만, 사진술 초창기에는 촬영자가 움직인 흔적이 남기도 했고, (흔들림) 이는 산 자와 죽은 이를 구별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경우 아이와 어머니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는데, 시신이 된 어머니는 자녀 쪽을 바라보도록 고정되어 있는데, 자녀는 어머니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진 촬영장에서 몸을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남은 사진을 보면서 사진의 주인이 성장해서 이 사진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요즘엔 얼마든지 쉽게 사진을 찍어 어떤 순간이든 쉽게 남기고, 공유하고 그때의 감각을 기억하고 되살릴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한 사진을 찍는 순간들은 기쁘지만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다시 떠올리고 싶은 순간들인 경우가 많다.


포스트모르템 사진들에는 기쁜 순간을 떠올리기보다는 그리움과 슬픔까지도 남기고 싶었던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후세대에 인류에게 '영정사진'이라는 문화로 남게 되었다.



어릴 적 모네가 임종을 맞이하던 카미유를 그리며 그리워하던 그 마음은 작가가 선택할 수 있었던 독특한 방식의 애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포스트모르템 사진을 보고 그거야말로 인류가 보편적으로 느낄 애도의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애도의 마음이 어떤 건지 공감할 수 있었던 대중이 많았기에 모네의 그림 또한 널리 알려질 수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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