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가? 산자의 재난에 귀를 기울여라. 그건 언젠가 내 일이 되니까.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056002_34936.html
올해 1월 뉴스에서 봤던 장면이었다, '내 몸이 증거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수기를 책으로 엮었다. 사람들 모이기 참 힘든 상황에, 관심을 잃어가는 피해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모아 출판까지 해 낸 절박함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가슴이 아프다~ 하고 타자화 할 일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셀 수가 없이 많다. 단지 피해로 인정됐느냐, 아니냐로만 나뉜다. 널리 알려진 대로라면 가습기 살균제를 이용했을 경우 폐 섬유화 (복구 안됨)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많고, 그런 증상이 아닌 경우에 피해를 인정받기 매우 어려웠다고 하는데,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폐손상"이란 기준 미달로 고통 속에 삶을 이어가는 피해자가 많다.
2000년대 초반 가습기 살균제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사용했었다. 하지만 중소기업 제품이었고, 운 좋게 질병관리본부(질병관리청)에 신고할 만큼의 이상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당신 또한 한 번쯤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건 그때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모르겠다. 그 짧은 기간을 사용하고 나서도 10여 년이 지난 뒤, 1년가량 멈추지 않았던 기침 때문에 큰 병에 걸린 게 아니었는지 걱정했던 시기를 지나 지금도 결코 스스로의 건강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게 된 것에 저 물질이 얼마큼 영향은 없었을까. 불안하지만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이 병원 치료를 받을 때 들어가게 되는 수많은 비용들에 대한 보조를 요구하는데도 이렇게 오랜 싸움을 하고 고통받는 걸 보면, 내가경 험한 사소한 문제는 이야기해봤자 싸우느라 더 힘들고 피곤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이게 내 이야기이기만 할까?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근데 옥시만 처벌하면 끝인가? 시중엔 정말 말도 못 하게 다양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이 수도 없이 놓여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는 2011년 중단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2021년. 근데도 피해자 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널리 알려진 대로 폐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천사와 부록을 써주신 교수님들에 의하면, 이 성분들은 세포의 구성요소인 미토콘드리아에 변이를 일으키는데, 일생동안 겪을 수 있는 10% 를 상회한 3~40%의 변이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당연히 세포단위에서 에러를 만들어 내는 독성물질이 전신의 장기에 악영향을 끼쳐 손상으로 고통받는 것은 추론하기 어렵지 않으며, 이러한 독성물질이 지역사회 단위로 광범위하게 퍼졌으니(단지 몰랐다는 이유로, 기준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 피해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흔히 재난들은 사고로 피해자가 일시에 "죽어버린" 것들만 기억된다. 옥시에 처분이 내려질 무렵, 환경부도, 산안부도 '그땐 우리 소관이 아니었어요, 몰라요'라는 대답만을 늘어놨을 때 가슴이 떨리지 않았던 사람들 별로 없었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이라고 해봐야 유족의 아픔 정도에 공감하며 아파하지, 실제 피해를 겪고 지금도 힘겹게 "내 몸이 증거다"를 외치고 있는 그런 재난들에는 그냥 침묵을 선택한다. 왜? 잘 모르니까. 생활화학제품, 독성물질 평가 등에 대해 전문가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식약처에서 화장품 성분명을 모조리 적게 해 두었어도 그 성분들이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던가? 그것을 알고 전부 알고 쓰는 사람은 과연 몇인가.
같은 성분을 이용한 제품인데, 왜 옥시만 처벌받고, 나머지 제품을 사용했던 사람들은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을까? 이건... 말도 안 되지 않나? 이 와중에도 대기업 제품은 그래도 피해보상 받을수 있는데, 그보다 더 싼 제품은 피해보상이 없다니, 역시 그래도 대기업이네... 하는 수군거림들이 너무나 황당하게 들렸다. 그래서 6월 17일 피해자들의 피해 기록과, 투병기를 담은 책이 출간됐다고 했다.
책을 읽기 전, 서점에 출간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을 다룬 다른 서적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살펴봤다. 달랑 4권이더라. 그나마도 한 권은 소설. 현재도 살아 있는 타인의 고통을 이렇게까지 비극적으로 소설화했다는데 좀 입맛이 쓰긴 했다만, 그렇게라도 관심을 받아야만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기에 입을 다물었던 피해자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책은 실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가족을 위해서 사용했던 제품이고, 가족 전체에 광범위한 피해를 남겼다. 피해 사실이 전부가 아니다. 흔히 미디어에 노출된 장면은 호흡기를 착용하거나,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느라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치지만, 수기집에 기록된 이야기들의 절반 이상은 자신과 가족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난한 세월 병원을 드나들었던 기록들이다.
자신들의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소연할 힘조차 부족했을 것이다. 재난사고로 사망한 사람을 둔 보호자들은 그래도 건강한 상태고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사회적 관심을 촉발하기 위한 운동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야 했으니까! 내가! 내 소중한 가족이.
가습기 살균제 참상은 단지 사회에 CIT와 MIT 규제가 필요하다는 외침을 남겼다. 더불어, 대중들에게 '화학제품'의 안정성에 대한 공포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전공자가 아닌 이상, 생물환경 독성에 대한 감시 체계가 미비한 상황에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또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를 불러왔고, 이후 환경독성에 관한 시민사회의 엄중한 감시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부작용도 있었다.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거다만, 정보 비대칭으로 (전문가의 지식수준과 일반인의 지식수준 차이가 지나치게 날수밖에 없도록 고도화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 이후로 무조건 '천연' 물질이라면 무조건 좋은 거고, 화학물질은 나쁜 거라고 공포에 질려 약물 오남용 사건들이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다.
근데 이걸로 끝일까?
정작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아직 살아 있는데, 우리 법원은 동일 성분임에도 불구하고 옥시처럼 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뭐임? 도대체 왜??? 이 판결이 이해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제게 상세한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각각의 피해자는 너 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소규모 출판사에서 이해하기 힘든 법원 판결 이후 급하게 출간을 준비해서 그랬던지 매끄러운 편집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생생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수기가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은 채, 개인의 체험을 고르게 정리한 작업이 선행되지 않았다고 별 가치 없다고 폄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재난 참사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조국 선생이 그러했듯 가족의 피를 잉크로 찍어내 써낸 글들이란 지점에는 차이가 없다.
어쩌면 이 책에 소개된 피해자들처럼, 나도 영향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영향이 없다면 미래에 어떤 문제를 겪게 될지 모른다. 나만 그럴까? 2000년대 초반에 가습기 살균제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가정을 찾는 것이 더욱 쉬울 것이다. 이건 당신의 문제다.
반드시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