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에도 봄은 오네
집에 키우던 화분을 처음 들였던것은 3년 전이었다. 이사오면서 들여왔던 천냥금. 빨간 열매가 귀여웠던 이 화분을 두면 집안의 유해가스를 줄일수 있다고 했다. 뭐 엄마가 말씀하시는거니, 원하는대로 해드려야지, 하고 데리고 왔다.
처음 사온 해에는 빨간 방울처럼 귀여운 열매를 볼 수 있었는데, 그 다음해부터는 열매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내가 소홀히 키운 탓이지....
잘 돌봐주진 않았지만 어찌어찌 죽이지는 않고 해를 잘 넘겨왔는데,
매해 봄이면 새순이 돋았다. .. 어쩜 봄을 가르쳐준적도 없는데 새순을 돋아내서 해가 바뀌었다는것을 알게 해주나.
화분을 보면서 퍽 기특하기도하고, 감염병 확산으로 밖에 나가지 못하는 시절에도 계절의 변화를 알수 있다는게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올해도 새순이 돋는걸 애타게 기다리긴 했었다. 감염병으로 쑥대밭이 된 세계선 안에서 올해도 꽃은 많이 피었더라. 창밖으로 보이던 꽃나무들이 움트는것을 바라보던 무렵, 우리집 화분도 언제 새순이 돋지, 하고 바뀐 계절을 알아차릴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화분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시기는 작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었지만, 그렇게 새순이 돋아난 화분의 성장속도는 감당이 안될지경이었다. 예쁘다고 생각했던것도 잠시, 화분이 좁아보일정도로 쑥쑥 성장하는 화분을 보면서 분갈이를 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갈이를 하려면 우선 새 화분이 필요했다. 새로운 화분을 구매해야 되나? 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다가, 처음 이 식물을 들였을때 허술한 모종 화분을 벗기고 새 화분으로 분갈이 처음 해줬을때가 생각났다.
아파트단지 쓰레기장에는 재활용 쓰레기와 더불어 깨지기 쉬운 생활용품들을 모으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처음 모종을 구매해 왔을때 여기서 화분을 구했었다.
봄은 화분이 많이 버려지는 계절이었다. 우리집처럼 다른집에서 크는 화분들도 봄이 되면 새순이 돋았을 거고, 그 시기에 쑥쑥 자라니까, 그렇게 기존에 좁은 화분에 끼어서 자라던 식물들 새집 마련해준다고 분갈이 하고 남은 화분들이 쓰레기장에 모여 있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적당해 보이는 화분이 언제쯤 나올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왠지 처량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화분 까짓거 얼마나 한다고 그냥 사서 쓰면 되는데.
다른 계절에는 화분이 많이 나오질 않는데, 유난히 봄이면 화분버리는 분들이 많은것 같다. 재활용 쓰레기장에 계절별로 쓰레기들이 달라진다는걸 생각치도 못했는데, 그런걸 보게되서 참 신기했다.
아니, 그보단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이 있어서 쓰레기장에서도 계절을 느낄수 있었던거겠지.
---누군가의 집에서 충분히 쓰임을 다 했던 물건들일텐데, 쓰레기장으로 오면 갑자기 쓸모를 다 해서 ‘쓰레기’ 라는 라벨이 붙는다. 방금까지는 쓸모있는 물건이었을텐데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폐기된 이후에는 쓰레기 라고 버려지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누군가가 폐기한 물건, 빨리 내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줬으면... 하고 바랬지만, 막상 내가 거기서 구해야될 물건이 있다고 여겨지니 왠지 쓰레기, 라고 가까이 하기 싫어했던 물건들을 기웃거리는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집에와 화분을 갈아주니, 처음엔 놀라서 풀이 죽었던 식물도 새화분에 물을 주고나니 정신을 차려 줄기를 곧게 뻗었다.
과연 새 화분에서는 얼만큼 까지 자랄까?
작은 화분에 너를 가두어 둔다고 해도 니가 자라는것 까지는 막을수가 없구나...
삶엔 그런 순간들이 여러번 있을것 같다. 무엇인가가 커가는 과정에서.. 그 그릇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여겼는데, 더이상 이 그릇 안에서는 감당이 안될때. 그때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것 같다.
인간도 식물처럼 성장하지. 아니지 인간이 맨날 어떻게 성장만 하겠니. 그건 '변화' 라고 불러야 맞을것이다.
이렇게... 세월에 적응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지다보면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것 같다. 화분 분갈이처럼, 내가 뿌리내린 장소를 조금 더 넓혀야 되는 시기가 온거지.
새 화분에 바로 적응할수는 없을것이다. 근데 시간이 좀 지나면 금새 자리잡고 자기 집이라고 안정되게 줄기를 펴낸 천냥금처럼, 금방 적응할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를 잘 넘기는, 그런 봄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