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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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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CI May 16. 2022

신간 <김밥>: 책 본문 중에서(1)

프롤로그 중에서

돌김이어야 한다.


보기에는

김밥용 김이 반질반질해서 곱긴 한데,

식감과 향이 영 심심하다.


외할머니 손등처럼

가슬가슬한 돌김이 제맛이다.


늦가을 산책길에

바싹 마른 가랑잎을

바스락 소리 나게 밝을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

살짝 구운 돌김으로 싼

김밥을 씹을 때면

그런 상쾌한 파괴감이

입안 가득 차오른다.



새하얀 쌀밥이어야 한다.


김밥은

육류, 채소, 김, 양념 등

다채로운 식재료가 어우러져

맛의 카니발을 여는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밥이 맡은 역할은

다른 재료들의 개성을 북돋워주는

보조다.


그러려면 튀지 말아야 한다.


그윽한 달큼함, 담백함, 부드러움이 살아 있는

흰쌀밥이야말로

다른 재료들과 상충하지 않는

최적의 파트너다.



비엔나소시지여야 한다.

솔솔 풍겨 나오는

훈연 향도 좋지만

탱글탱글 씹는 맛도 좋다.


같은 가공육이라도 벽돌처럼 네모지게 생긴

김밥용 햄은 싫다.


뚝뚝 끊기는 푸석한 질감이

별로다.



그 밖에 달걀지단은

소금 간을 해서 감칠맛을 낸다.


오이는

설탕을 약간 넣은 식초에 잠시 재워

풋내를 제거하고 상큼함은 살린다.


당근은

곱게 채 썰어 기름에 슬쩍 볶아

똑 부러진 식감을 유연하게 바꾼다.



김밥을 싸고 먹는 방식에도

조건이 있다.


중요한 건

밥이나 속재료의 온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후다닥 싸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김밥을

한입에 넣기 좋게

도톰한 두께로 썬 다음,

그 자리에서 손으로 집어

곧장 입에 넣는다.


갓 만든 김밥이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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