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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CI Sep 18. 2020

입맛 한일전: 아지노모토의 침략과 명란젓의 반격

신간 <지배자의 입맛을 정복하다> 본문 중에서

신간 <지배자의 입맛을 정복하다> 본문 18p~19p 중에서


그런데 이런 순리에 ‘역逆’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음식이다.


식문화에서만큼은 역제국주의가 그리 낯설지 않다.


피정복자의 음식이

오히려 정복자의 식탁을 점령해

외식업계나 가정식의 트렌드를 바꾼 역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서슬 퍼런 강압 통치하에서

타 인종과 이민족 문화에 대한

무시, 편견, 차별이 난무하던 와중에도 그랬다.


맛의 힘이 그만큼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물론 식문화에서도

역제국주의보다 제국주의 사례를 찾는 편이

더 쉬워 보이기는 한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향으로

맥도널드 햄버거와 코카콜라가

전 세계 식문화에 침투한 상황을 가리키는

‘음식 제국주의culinary imperialism’라는 말이

곧잘 쓰이는 데서 보듯이,

경제력이든 무력이든

우월한 위치에 놓인 국가・민족의 식문화 전파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식탁은 세련되고 풍요로운 이미지 덕택에

동경심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식재료 공급이나 유통 측면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유행을 선도하는 데 한몫한다.


이런 식문화 전파 사례는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식은 일식의 영향을 받았다.


(맵고 짠 남도 음식을 제외하면) 전통적인 한식은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선호했다.


재료 본연의 향과 식감을 즐겼다.


그런데 일본으로부터 감칠맛과 단맛이 넘어왔다.



지금은 ‘미원’이라고 하는 아지노모토가 대표적인 예다.


장시간 발효하지 않고

대량생산으로 뚝딱 만들어진 왜간장이

재래식 조선간장을 대체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한번 바뀐 입맛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 책은 그 반대 경우인 ‘음식 역제국주의’에 주목한다.


신간 <지배자의 입맛을 정복하다> 본문 295p~296p 중에서


이 상품은
조선의 특산물인 멘타이(명태)의 알을 정제해 만든 것으로,
조선에서는 마치 내지(일본)의 가즈노코처럼
경사스러운 날의 요리엔 반드시 이것을 올리는 것이 예법인데,
맛이 대단히 좋으며,
사케나 맥주의 안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
맛이 변하거나 부패할 염려가 없으니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면서 먹기에도 적합하고,
하물며 식사에 제공하면 식욕을 동하게 하여
체내에서 영양을 증진시키는 효과까지 내니
(…)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를 진행하며

맹목적인 ‘탈아입구脱亜入欧’ 사상과 인종차별주의에 빠졌다.


서양 문물은 우월하고 동양 문물은 낙후된 것으로 취급했다.


식문화도 그랬다.


백인처럼 체구가 커지려면 그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양식을 장려했다.


당시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식민지 조선의 전통음식은 미개인의 먹거리였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을 차별할 때

김치나 마늘 냄새가 난다는 둥

한국 음식을 들먹이며 타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선의 가난한 어민들이 먹던,

어촌의 남루한 서민 음식인 멘타이코 앞에선

콧대 높은 제국주의적 미식 관념도 무너진 모양이다.


맛이 대단히 좋고 영양도 풍부한 조선 특산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쿠스쿠스, 보르시, 커리, 굴라시, 사테, 명란젓

피지배자들의 식탁 위에서 지배자들의 식탁 위로,

무시와 배제의 음식에서 누구나 즐겨 먹는 음식으로 옮겨 간

여섯 가지 음식과 문화 이야기

<지배자의 입맛을 정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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