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준희 Apr 21. 2021

익숙한 이방인

낯선 듯 날이 선 듯, 그 여름밤의 소회

     


현과 입사동기로 만난 건 날이 금세 따뜻해져 루프탑에선 벚꽃 잎이 흩날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불티나게 팔릴 6월이었다. 회사는 요식업 관련 사업장, 소위 F&B 사업을 하는 곳이었고 나와 그녀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입사에 성공했다. 영화과 졸업 후 교육원을 전전하던 내가 커피 판에서 경력이라고 내세울 건, 동네 핸드드립 전문 카페에서 1년 남짓 커피를 내리며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글 쓸 여력을 위해, 생계비를 위해 어디든 나가 벌어야 했던 찰나였기에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물러섬 없이 그곳에 발을 들였다. 본사 안에 위치한 카페는 직영이라면 직영인 구조였는데 어쩐지 스타트업 회사라 넘치는 활기 속에 정신없는 분위기였다.



     입사 첫날,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 터라 잔뜩 긴장한 상태의 나는 인수인계를 받는 순간부터 로봇처럼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현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 듯 자신의 페이스대로 베버리지 음료를 대부분 정확히 세팅했다. 나는 경력은 짧았어도 배운 것이 꽤 많았으니 아는 것이 경력에 비해 부족하다 할 수 없었고, 또 쉰 기간만큼 단절이 있었기에 경력이 충분하다 할 수 없어 애매할 따름이었다. 때문에 내색은 않고 있었지만 입사 동기끼리의 은근한 신경전에 있어 현에게 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성격차로 헤어졌던 이전 카페에서 익힌 대부분의 기술은 익힌 기간만큼의 공백을 당연히 버텨낼 리 없었고, 예상대로 나는 현과 달리 어설픈 실수 연발의 하루를 보냈다.


          “OO님은 집이 이 근처라고 했죠?”


     처음 입을 뗀 현의 첫 질문은 거주지가 어디냐는 것이었고 회사 근처로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동네부터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에게 회사 근처 동네를 몇 군데 일러주자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커피업계에 뛰어든 10년 경력의 바리스타로, 호주에서 막 입국한 지 한 달 정도 된 상태라고 했다. 깡마른 몸으로 벌써부터 한국의 겨울이 두렵다고 말하는 그녀 앞에 붙은 10년이라는 숫자에 알게 모르게 위압감을 안고 있었던 걸까. 나는 어떤 조언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작년에는 영하 15도를 웃돌만큼 엄청나게 추웠다며 온몸을 떨듯 오버하며 말했다.

점심시간, 나와 현은 회사 오피스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직원들이 애용한다던 한식집에서 각각 순두부찌개와 갈비탕을 주문했다. 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카페라 그런지 정직원들은 식권 어플을 받아 이용하고 있었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는 매니저와 준의 식대를 통해 시켜 먹을 수 있었다.


        “와. 여긴 이런 게 지원이 다 되네요?

        한국에 다른 카페들이 다 이렇지는 않죠?"


현은  얇고 가는 두 집게손가락으로 야무지게 갈비를 뜯으며 말했고 습관처럼 긴장을 놓지 못한 나는 대강 그렇죠. 라며 대답을 마친 후 순두부찌개 한 번 밥 한 번을 크게 크게 씹어 넘겼다. 현은 호주에서의 일화를 단편적으로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다 먼저 식사를 끝낸 후 식기를 정리했다. 곧이어 현은 내게 왜 이렇게 빨리 먹었냐는 말을 건네며 다른 팀 직원들이 옮기고 있는 짐꾸러미로 시선을 옮겼다.


       “00님, @@님, 뭐 필요한 거 없어요?”


인상 좋은 다른 팀 직원이 우리를 향해 짐을 들어 보였고 가까이 가 들여다본 짐 꾸러미엔 바디로션, 칫솔 세트, 화장솜 등 누군가 선물로 돌린 것 마냥 여러 가지 용품들이 쌓여있었다. 자못 거리를 두는 나와 다르게 행동거지에 거리낌이 없는 듯 보였던 현은 수저를 내려놓고 어느새 내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현의 얼굴은 흡사 콜라를 처음 접한 아이와 같아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가 실감 나지 않았다. 곧바로 그녀는 그 직원의 손에 들린 꾸러미를 들추며 하이톤의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가져가도 되는 거예요?”


     “이 건물이 전에 코스메틱 관련 건물이었는데

      창고 정리하다 보니 나왔나 봐요.

      필요한 거 있으면 챙겨요. 유통기한 잘 확인하시고!”


      “우와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나는 바디로션 두 개와 화장솜을 챙겼고 현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두 손 가득 그것들을 챙겼다. 우리는 자연스레 다른 팀원들에게도 나눠주겠노라며 종이봉투에 가득 담아 카페로 향했다. 나는 비쩍 마른 몸으로 한 꾸러미를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현의 팔을 바라보다, 그녀의 인상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듯한 서너 개의 타투를 발견했다. 커피 관련 문양과 크리스천임을 증명하는 듯 한 어린양 그림, 그리고 성경 구절이 영어로 쓰여있었다.

   

          “@@님, 크리스천이에요?”


팔목의 어린양을 본 후 처음으로 현에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던 건지, 나는 곧바로 타투에 관해 물었다. 현은 자신을 향한 관심에 관대하지만 그렇다고 거만하지는 않게 특유의 흥분된 표정으로 답을 이어갔다.

    

      “나 교회 다녔어요! 오래전부터. 할머니 따라.

      여기서도 다닐 거예요. OO님은 어느 교회 다녀요?”


     “저는 집 근처로 다녀요. @@님은 이사하면

     아무래도 신촌 근방이 좋겠네요. 아는 덴 있어요?”


현은 갑자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후 자신이 알아본 교회 리스트를 보여주며 물었다.


      “OO님이 서울 사람이니까 알려 줄래요?

      나는 너무 시끄러운 건 싫고 조용한 게 좋아요.

      조용히 기도하고 노래 부를 수 있는 곳.”


나는 개중에 들어본 교회 몇 군데를 일러주었다. 현은 당장 다음 주 이사를 마친 뒤 가봐야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격앙된 톤을 유지했다. 대화를 마침과 동시에 손님이 몰려 바쁘게 마감을 마쳤다.

퇴근길, 벽돌 길을 따라 내려가다 문득 현의 단어를 곱씹었다. 서울 사람. 기정사실임이 분명한데 이보다 낯설고 거추장스럽게 들릴 수가 없었다. 나는 이사할 집의 물건들을 고르며 신이 난 채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현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님은 호주 출국 전에 어디 살았어요?

        들어보니 서울은 아닌 것 같았는데.”


현은 해맑은 얼굴로 귀여운 앞니를 드러내며 충청도에서 고등학교까지 쭉 할머니랑 살다가 스무 살이 되면서 커피를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인천행 버스에 올랐다고 말했다. 나는 현의 특정 억양 같은 것에서 그녀가 서울에 거주했던 것은 아닐 거라 막연히 예상했지만, 어쩐지 나를 지칭하는 그 서울 사람이란 단어와 깍쟁이처럼 생겼다는 말로 나의 첫인상을 이미지화했던 이들이 떠올라 발갛게 상기되었다. 그러면서도 성인이 되자마자 홀로 상경했다는 그녀의 말이 왠지 모르게 안쓰럽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커피 하려고 혼자 올라오다니.

      @@님한테는 정말 커피가 전부였나 봐요. 멋있다.

     그땐 커피가 이만큼 상용화되지도 않았을 때잖아요.”


언니라고 생각하기엔 아이 같고 동기라고 하기엔 다소 전문가 같은 현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던 나는 그나마 최선의 거리감이라고 생각될 만큼의 리액션을 해 보였다.  


     “OO님은 글 쓴다면서요? 나는 글 잘 쓰고 싶은데.

     멋있는 건 그건데. 어? 나 타는 버스 왔다! 내일 봐요!”


     파란색 버스에 오르던 중에도 트레이드 마크인 앞니를 내내 드러내 웃고 있던 현의 역사가 은근히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졸업 후 그렇게 원하던 예술가의 길로 입문하지 못해 은근한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글 쓰는 사람은~ 멋있다 라고 내 삶의 이력을 단출하게 설명해버린 현의 말이 이상하게 불편하고 시답잖게 느껴졌다.


     그녀의 이름 앞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10년이란 숫자가 부러워서였을까. 한국인의 범주에서 은근슬쩍 벗어나던 그녀의 돌발적인 질문들이 불편해서였을까. 그녀와 나눈 마감시간의 대화들이 왠지 모르게 계속해서 떠올랐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거예요? 주문을 하면서 듣지도,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빠르게 내뱉는 손님들을 보며 그녀가 물었다. 그러게요.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카페에 쉬러 오는데도 다들 너무 분주해 보이네요. 

한국 사람은 원래 그래요.라고 말하기에는 섣부른 일반화라 싫었을뿐더러 그녀 역시 명백한 한국인이었고, 달리 해석하며 그들의 편을 들기에는 나 역시 그 무례함이 이해되지 않았던 탓에 온종일 고심하게 된 것이다.



     호르몬 때문에 괜히  예민해진 거겠지.

자연스레 남자 친구 J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 졌다. 그는 지금 나와는 다른 시차 속에 존재하니, 아마도 선잠을 자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 검정치마의 '내 고향 서울엔'을 반복 재생하며 유유히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다. J 역시 그곳에서는 서울 사람이라 불릴까. 수더분한 표정으로 충청도 사투리와  h묵음을 교묘히 살려 멋스럽게 플랫화이트를 구사하던 현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복기되었다.

걷기에 가장 좋은 여름밤의 선선한 기운이 가까워진 느낌에, 천천히 산길을 넘어 집까지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걸음을 슬렁슬렁 늦추었다. 서울 한복판이 이렇게나 외롭고 어두웠나. 스무 해 넘게 살아온 이 도시가 느닷없이 낯설었다. 내 몫의 두 다리가 온전히 서 있을 만한 곳이 어디에도 자리하지 않는 기분. 유난히 밝은 달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걷다 보니 남산타워가 더 아득해 보이기 시작했다. 선선하던 밤의 온도가 차갑다 못해 서늘하다. 나와 그녀를 설명하던 모든 응축된 것들이 유독 생경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걷는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