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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준희 Apr 30. 2021

걷는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어느 곳에도 버려질 시선은 없다



면허도 없고 차도 없지만 그래서 걷는 건 아니다.

안정감이 사라진 매일, 규칙적으로 하던 일이 사라지니 하루라도 빠지면 서운했던 취미 역시 모신다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 그러한 탓에 늦은 밤마다 꼭 한 편씩은 봐야 살 것 같았던 영화와 짜릿한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줄을 쳐가며 읽어가던 책들조차 언젠가부터 미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몇 년을 지속해왔던 습관이지만 남의 취미를 따라나선 듯 괜스레 무겁고 버거웠다. 그래서 무작정 걸었다. 걷는 건 부담스럽지 않았고 숨이 차게 걷다 보면 외려 숨통이 트였다.



       종로구민이 된 지 햇수로 6년 차에 접어들다 보니, 광화문 거리가 새 단장을 준비하는 것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세종 문화 회관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그 근처를 서성이던 수많은 나와 우리가 지금의 나를 배회하는데, 올해 봄에는 완전히 뒤엎어져 발걸음을 자주 멈칫하게 되었다. 봄마다 꽃들이 종류별로 심어져 있던 곳에 흙먼지만이 가득하니 공원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자주 땅을 뒤엎었을지 잠시 그려보다 그 무게감에 짓눌렸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정신없이 움직이던 차들이 멈춰 섰고, 목적을 위해 정갈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목적 없이 우왕좌왕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습관처럼 교보 문고로 들어서는 출구에 멈춰 섰다. 그쪽을 향해 발을 떼려니 딱딱한 건물 외벽마저 두텁고 위압적으로 느껴져 멈추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출, 퇴근길, 교보 건물에 붙은 한 구절을 메모장에 새기며 걸음을 늦추던 것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내 시간은 멈춰있어도 세상의 시간은 촌각을 다투고 있었는지 벌써 5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부지런 떤다고 다급하게 나온 시간이 딱 점심시간쯤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짙은 색 정장을 입고 우르르 쏟아져 나와 광화문을 거니는 사람들 중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화장기 없는 피부로 모자를 눌러쓴 채 하염없이 걷는 내 모습이 난데없이 신경 쓰였다. 처음이었다.


       스케줄 근무기도 했고 매니저다 보니 주로 바쁜 주말에는 반드시 일해야 했던 나는, 직장인들이 편하게 즐길 수 없는 그 한적한 평일 오프를 남부러울 것 없이 즐기곤 했었는데. 그들 사이로 운동화를 신고 거니는 내 모습이 섞이지 못해 제법 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애당초 안정적이라는 말은 우리네 인생에 없을 것이라 그 단어에 몰두하며 살아오지 않았으나, 스스로에게 날이 선 채 의심을 거듭할 때면 내 눈에 정장은 곧 안정이라고 여기게 된다. 삶의 가장 기저에 깔린 불안에 정장을 입힘으로써 조금은 안정된 각이 잡히는 느낌이랄까. 본래 내 삶 내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만을 비교하며 살아가는 편이나, 그곳에 나가면 또각이는 하이힐 소리에 내 존재가 짓눌리는 느낌이 든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라고 몇 번을 되뇌어 보지만 낮은 운동화를 신고 허둥지둥 대는 나보다 높은 하이힐로 안정적이게 걷는 이들이 더 편안해 보인다. 어색해진 시선이 내 발을 향한다. 글쎄. 나는 여전히 편한 옷과 운동화가 좋은데.



       정처 없이 걷는 것을 목표로 두어도 내 발은 익숙한 길로 움직이게 되어있었다. 종각을 지나 조계사를 건너 안국역 쪽으로 걷는다. 덕성여고를 끼고 걷는 그 길목을 좋아한다. 돌아오는 계절과 떠나는 계절이 적당히 맞닿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슬로 모션 효과처럼 하늘하늘 내 앞으로 떨어지던 철쭉 꽃잎을 따라 걸었다. 활짝 핀 꽃 앞에 남은 운명이 시드는 것밖에 없다 한들 그렇다고 피어나길 주저하겠는가.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을 마음으로 읊으면서 걷다 보니 아직 원하는 대로 피어보지 못한 주제에 시들기를 두려워하는 내 꼴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났다. 세상에 어쩌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을 만들었을까. 두려움 따위는 접어두고 제 생을 떳떳하게 받아들임과 동시에 꿋꿋이 피고 지는 저 꽃이 나보다 더 아름다운 걸. 내려앉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만큼 대담한 게 또 있을까.



       한적한 곳으로 걷다 보니 처음 보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드립 커피 하면 습관처럼 제일 먼저 주문하는 케냐 원두도 그다음으로 좋아하던 과테말라 원두도 없다고 하시기에, 에티오피아 아이스를 한 잔 시키고 창가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사장님이 커피를 가져다주셨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넨 후 에어 팟을 귀에 꽂자, 가장 좋아하는 검정치마의 ‘Everything’ 전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다른 곡으로 넘어갈까 고민했으나 무던히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6년을 줄곧 붙어 다녔는데 적어도 6개월 이상은 밀어내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애플 뮤직으로 갈아탔는데, 주제가인 양 듣곤 했던 폴 킴 노래가 그곳에 없었어도 그밖에 노래는 많았다. 노래 역시 6년을 쌓아왔는데, 어리석게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창가에 앉아 있으니 제각기 다른 얼굴로 자신만의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풋풋한 새내기 느낌의 커플을 보며 그때의 그와 내 모습을 회상했고, 커플 옷을 입은 채 아이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를 보며 우리가 그렸던 미래를 생각했다. 손을 잡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며 서둘러 내가 떠올리곤 했던 내 부모의 미래를 다시금 그려 보았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낄낄 웃는 친구들을 보며 얼마 전까지 H와 울고 웃다 약속했던 다짐을 상기했다.



       걸음을 옮기며 바라보던 곳곳에 다른 얼굴을 한 내 모습이 있었다. 급하게 올라탔던 버스에 무언가를 놓고 내린 것처럼 잊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뒤밟아보았다. 지금 내 얼굴의 표정은 어떨까. 지금의 나를 만든 지난날의 시간을 정제하고 앞선 미래만을 걱정하다 보니, 누군가의 현재와 나의 현재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 속단하고 있었다. 잃었다는 생각만으로 채워간 내 시간은 결국 0에 가까이 수렴하고 만 것이다. 무참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 이곳까지 유영해왔을 뿐인데 잃어버린 시선으로 세상 모든 것들을 단정했다. 맺혀있던 눈물이 눈치 없이 흘러내렸다. 창피함을 무릎 쓰고 모자챙에 기대어 눈물을 훔쳤다. 흘려보낸 것으로 채워지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장 익숙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아주머니 몇 분과 할아버지 몇 분만이 자리해 계셨다. 떨어진 좌석 간의 거리만큼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이보다 여유로울 수가 없는데 당최 지금의 나는 어느 나이 즈음에서 나란 존재를 운행 중인 걸까,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재단하던 엠비티아이가 느닷없이 신경 쓰인다. 정신 연령이 8-90세 라니. 행동 연령은 이제 갓 대학생을 넘긴 즈음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기만 한데 나를 넘겨짚던 엠비티아이 자식이 너무 잘 맞아떨어져 기분이 나쁘다. 하필 내가 앉은자리까지 아주머니 그룹과 할아버지 그룹 중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이 오후 시간은 또 저분들의 것이었던가. 별안간 H가 이런 호소를 하는 내게 했던 대답이 기억났다. 그래도 행동 연령이 8-90세인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 그래. 몸은 아직 젊으니 두 다리로 어디든 못 걸어가겠어. 마음에 여유를 좀 더 불어넣어본다.



        조금  걷기 위해  내리던 정류장보다  정거장  버스에서 내렸다. 한결 여유로워진 걸음에 맞춰 시선 역시 늘어지다가 촘촘해지길 반복했다. 느려지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선했고 문득  주위에는 버려질 시선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숨을 들여 가만히 살펴보았다. 반려견 라떼만큼이나 헉헉 거리며 앞장서 빠르게 달리는 몰티즈를 비롯해 걸음마다 옅은 숨을 고르는 노령견에게 자신의  숨을 기울여 집중하는 주인. 발랄한  발로 냄새를 쫓아 옮겨다니는 아기 푸들과 그 곁에 모여 다정한 한 마디씩을 건네는 아이들. 그리고 고된 거리 생활에도 야옹거리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냥이들이 스포트 라이트를 받은 양 눈에 띄게 빛났다.



       무작정 걸었던 이유가 떠올랐다. 걷는 길목마다 나와 그들의 생이 지나쳐갔다. 나는 살아있음이 반가운, 그래서 결코 놓고 싶지는 않은 이 생의 아름다움을 이따금씩 걸음으로 채워갔다. 동네 사람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 이름 부자가 된 동네 냥이 오렌지에게 츄르를 건네면서 물었다.

너도 긴 어제를 잘 견뎌냈구나? 내일 또 살아서 만나자 우리.



      기억은 매번 오늘의 나를 과거 혹은 미래로 툭 던져 놓는다. 물론 아무런 허락도 없이. 적잖이 불편하고 시시때때로 피로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간다. 언젠가 낯선 미래에 당도할 지금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든 그 시간과 함께 맞물려 스며들듯 유영해나갈 것이라 굳게 믿으며.

유한해서 아름다운 이 시간을 나만의 시선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려면 그저 매일을 살아있을 수밖에. 그래서 나는 걷는다 별다를 것 없다고 느껴지는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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